2026 노벨문학상에 앤 카슨…“고전과 대화하며 새로운 형식 창조”

캐나다 시인 겸 번역가…어원 연구와 고전의 재해석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빨강의 자서전’·‘녹스’ 등
2026 노벨문학상 수상자 앤 카슨. [AP]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올해 노벨문학상의 영예는 캐나다의 시인 앤 카슨(76)에게 돌아갔다.

노벨문학상 심사위원회는 8일 오후 8시(한국시간) ‘2026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앤 카슨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그의 대담하고 창의적인 작품 세계는 고전 전통과 유쾌하게 대화하며 현대 문학에 새로운 형식을 창조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1950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난 앤 카슨은 1981년 고전학 박사 학위 논문인 ‘나는 증오하고 사랑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Odi et Amo Ergo Sum)’을 출간한 뒤 시 창작과 번역, 대학 강의 활동을 꾸준히 병행해 왔다. 그의 문학 작품은 대부분 언어학자의 단어에 대한 집착과 시인의 새로운 의미에 대한 열망이 교차하는 지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카슨은 단어의 어원을 연구하는 것을 자신의 모든 작업의 ​​출발점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가 고대 그리스 작품을 번역한 작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사포의 시 단편들을 새롭게 해석한 ‘그렇지 않으면, 겨울인가(If Not, Winter)’(2002)와 소포클레스의 비극 ‘엘렉트라’(2001), ‘안티고네’(2015),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바카이’(2015) 등이 대표적이다.

칼슨은 1986년 장편 산문 ‘에로스, 달콤씁쓸한(Eros the Bittersweet)’을 출간하며 작품 활동의 토대를 마련했다. 에로스가 시의 본질이자 원동력이라는 점을 탁월하게 고찰한 이 산문은 에로스를 고통과 달콤함이 결합된 감정으로 정의한 사포의 복합 형용사에서 중요한 영감을 얻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 사이의 간극, 바로 그 거리가 에로스에 힘을 부여하고 시를 움직이게 한다.

카슨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끊임없이 등장시키고 충돌하게 함으로써 긴장을 구현한다. ‘에로스, 달콤씁쓸한’에서 그는 ‘입체적 시각(stereoscopic vision)’을 통해 두 가지 관점을 동시에 균형 있게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에세이 ‘잃어버리지 않은 것의 경제학’(1999)에서는 기원전 6세기 그리스 시인 시모니데스와 현대 독일어권 시인 파울 첼란을 나란히 놓고, ‘쉬는 시간의 사람들’(2000)에선 역사가 투키디데스와 작가 버지니아 울프를 비교한다. 카슨은 이처럼 종종 예상치 못한 문학적 조합을 통해 서술적 자아에 얽매인 서정시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현대 문학을 개척했다. 이러한 글쓰기 방식은 고전시와 현대시 사이뿐 아니라 다양한 문학 장르와 예술 형식을 넘나드는, 유희적이고 아이러니한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1990년대에 카슨은 주목할 만한 작품들을 발표했다. 그중에서도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1995)에 수록된 ‘유리 에세이’는 장르의 경계가 모호한 장편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운문 형식으로 쓰였지만 슬픔과 이뤄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장편 소설이기도 하다.

1인칭 화자인 남편에게 버림받은 한 여성은 황량한 황무지에 있는 외로운 어머니를 찾아간다.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에밀리 브론테의 작품들을 가져가는데, 브론테의 작품에 등장하는 황무지와 내면 세계가 카슨의 작품 속에 정교하게 얽혀 있다. 부엌 식탁에 앉은 세 명의 외로운 여성을 중심으로 구성된 이 장편시는 브론테의 작품을 읽는 글이면서 동시에 버림받음에 대한 에세이로 변모한다. 시는 이야기를 필요로 하고, 이야기는 시의 도약과 장면 전환에 의존한다.

같은 시기에 발표된 또 다른 작품은 카슨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빨강의 자서전: 운문 소설(Autobiography of Red: A Novel in Verse)’(1998)이다. 이 작품은 고전 문학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그의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현대적인 감각과 시대적 분위기를 정확하게 포착한 그는 기원전 6세기 그리스 시인 스테시코로스가 쓴 날개 달린 붉은 괴물 게리온에 관한 시 구절들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신화에서는 헤라클레스가 과업 중 하나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게리온을 죽이고 그의 소떼를 빼앗지만, 카슨은 이 무시무시한 거인을 어머니에게 헌신적인 다정한 ‘영웅’으로 재해석해 현대적인 성장소설을 만들어낸다. 어린 시절 형에게 성폭력을 당한 게리온은 거만하고 무례한 헤라클레스와 사랑에 빠진다. 결국 자신을 파멸로 이끌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 서정적인 서사시는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질문을 던진다.

한때 권태를 자신의 최대의 적이라고 표현한 카슨은 과감한 유머와 재치로 권태에 대항한다. 2001년 출간된 ‘남편의 아름다움: 29개의 탱고로 이루어진 허구 에세이’는 기만적인 남편과의 날카롭고 냉소적인 다툼을 그린 작품으로, 29개의 에피소드가 각각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의 시 구절로 시작한다. 아름다움이란 진리라는 키츠의 숭고한 시구는 잔혹하면서도 유쾌한 방식으로 지친 부부 관계의 드라마와 병치된다.

카슨의 또 다른 대표작 ‘녹스(Nox)’(2010)는 2000년 덴마크에서 사망한 오빠 마이클을 추모하며 쓴 글이다. 깊은 상실감은 사진, 편지, 오빠에게 바치는 글들이 담긴 묘비명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로마 시인 카툴루스가 세상을 떠난 자신의 형을 그리며 쓴 애가 ‘101’이 더해져 깊이를 더한다.

카슨은 작품 활동 전반에 걸쳐 가벼운 터치로 글쓰기의 가능성을 탐구해 왔으며, 특히 ‘문학적 스케치’ 방식을 통해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 ‘플로트(Float)’(2016)로, 어떤 순서로 읽어도 무방한 22편의 소책자로 구성돼 있다.

강렬한 퍼포먼스적 성격을 지닌 ‘잘못된 규범(Wrong Norma)’(2024)는 카슨이 다양한 예술 및 학문 분야를 넘나드는 시도를 보여준다. 시각예술가, 안무가, 오페라 및 연극 감독과의 협업은 그녀가 문학적 기대와 규범 체계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웠는지를 드러낸다.

안데르스 올슨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장은 “바로 이러한 자유로움이 1990년대 이후 그의 작품이 국제 예술 및 문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근본적인 이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