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조사처도 “위법 농지 색출·처분 수단에 그쳐선 안 돼”
국가 농지관리 기본방침 아직 미수립…임대차·농지은행 개편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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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난달 30일 남원시청에서 열린 ‘농지 전수조사 읍면동 이·통장 대표 대상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9.30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합뉴스> |
[헤럴드경제=김선국 기자] 농지 전수조사 후속 특별조치법 제정을 계기로 농지정책의 틀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투기 목적의 위반은 엄격하게 관리하되 고령화와 상속, 이농 등으로 소유자와 실제 경작자가 달라진 농촌 현실을 반영해 농지정책의 중심을 ‘소유 규제’에서 ‘이용·관리’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입법조사처도 농지 전수조사가 위법 농지를 찾아내 처분하는 데 그치지 않도록 국가 차원의 농지 관리 청사진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7일 농림축산식품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전날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농지 특별조치법 제정방향 토론회’에서는 농지 전수조사 이후 누적된 위반 문제를 어떻게 정리할지와 함께 특별조치 이후 농지제도를 어떻게 개편할지를 놓고 논의가 이어졌다.
정부는 상속이나 이농, 고령 등으로 발생한 관행적인 임대차와 휴경 등 일반적인 위반은 이번 전수조사를 이유로 처분하지 않고 정상화할 방침이다. 반면 투기 목적으로 농지를 보유하면서 무단 휴경하거나 불법 임대한 경우에는 법과 원칙에 따라 조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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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지 전수조사 이후 농지제도 개편 방향자료: 농림축산식품부·국회입법조사처·농지 특별조치법 제정방향 토론회 |
토론회에서는 특별조치법으로 과거 위반을 한 차례 정리하는 데 그쳐서는 같은 문제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채광석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수조사를 계기로 확인된 현장의 애로사항과 장기간 누적된 문제를 특별조치법으로 정리한 뒤 농지법을 개정하는 단계적 접근을 제안했다. 특별조치법으로 비투기성·관행적 사안을 정리하고 이후 농지법 개정을 통해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새로운 농지 이용·관리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농지 임대차 규제를 현실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남재작 식량과기후 대표는 농지제도 개편의 방향으로 ‘농지 진입의 문턱은 지키고 이용 문턱은 낮추는 것’을 제시했다. 투기성 농지 소유는 차단하면서 실제 농업인이 안정적으로 농지를 빌려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임차농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사동천 홍익대학교 교수는 현행 헌법상 경자유전 원칙을 폐기하기 어렵다는 점을 전제로 “지금까지 소유규제 방향으로 접근해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면 임대차의 이익을 없애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을 권장한다”고 밝혔다.
개인 간 농지 임대차를 일정한 요건 아래 허용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기존 임대차를 특별조치 기간에 신고하도록 해 정상화한 뒤 농업인끼리 농지를 서로 바꿔 경작하거나 세대를 달리한 부모·자녀가 농사를 짓는 경우 등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자는 것이다.
같은 날 국회입법조사처가 내놓은 분석도 이 같은 문제의식에 힘을 실었다. 입법조사처는 농지 전수조사가 충분한 준비와 정책적 숙고 없이 서둘러 추진되면서 현장의 불안과 사회적 혼란을 키운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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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숫자로 보는 농지 전수조사·농지 구조국회입법조사처 제공 |
실제 정부가 지난 5월 기본조사를 시작하기 직전 제시한 조사 대상은 115만ha였지만 두 달 뒤 136만ha로 21만ha, 18.3% 늘었다. 입법조사처는 조사 대상이 크게 늘었는데도 당초 계획대로 7월 말 기본조사를 끝낸 만큼 조사 품질과 정확도가 떨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농지 소유 구조가 이미 크게 달라진 만큼 기존 제도만으로 현실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내놨다. 입법조사처가 기존 연구를 종합한 결과 비농업인 소유 농지 비중은 현재 절반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됐다. 농업인이 소유한 농지 가운데서도 약 88%는 60세 이상 고령농이 보유하고 있다.
상속과 고령농의 은퇴가 본격화하면 소유자와 실제 경작자가 다른 농지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농지를 누가 소유했는지만 따지는 방식에서 벗어나 실제 누가 농사를 짓고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함께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입법조사처는 이에 따라 2024년 농지법 개정으로 도입됐지만 아직 수립되지 않은 ‘농지의 관리에 관한 기본방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가가 어떤 농지를 얼마나 보전하고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 장기적인 방향을 먼저 정하자는 것이다. 농지 소유·이용제도 전환을 위한 국가적 마스터플랜과 농지위원회·농업회의소를 연계한 지역 중심 농지관리 체계도 제안했다.
이관후 국회입법조사처장은 “전수조사를 단순하게 위법 농지의 색출이나 처분 수단으로만 활용해서는 안 된다”며 “국가가 파악하고 시장의 각 주체가 확인한 농지를 우리 사회 공동체가 추구하는 농업 구조와 생산 양식에 부합하는 공공질서 안에서 어떻게 관리해갈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도 토론회에서 “농지가 농업에 활용돼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각자의 다양한 사정을 충분히 살펴 농업인들이 안심하고 영농을 이어갈 수 있는 현실적인 해법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투기 목적의 위반은 법과 원칙에 따라 바로잡겠다”며 “상속, 이농, 고령 등의 사유로 발생한 관행적인 임대차와 휴경 등 일반적인 위반사항은 이번 전수조사를 이유로 처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농식품부는 특별조치법을 통해 누적된 농지 문제를 우선 정리한 뒤 농지법 개정과 농지은행 기능 강화 등 중장기 제도개편을 추진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