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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조 소프라노 김청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유럽 오페라 무대의 프리마돈나였고, 아프리카 오지 아이들의 손을 잡아준 ‘루세케로(Lusekelo·행복을 가져다주는 여인)’로 불린 메조 소프라노 김청자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5일 오후 암 투병 중 세상을 떠났다. 향년 82.
1944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중학교 시절 음악 교사의 권유와 한 천주교 신부의 배려로 성당 피아노를 마주하며 처음 음악에 눈을 떴다. 서울 진명여고를 졸업한 이듬해인 1963년, 아일랜드 신부의 주선으로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고인의 삶은 불모지를 일군 한국 성악사의 첫 장이자, 예술적 자아를 온전히 비워낸 구도(求道)의 여정이었다. 혈혈단신 건너간 이역만리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며 고학(苦學)을 이어갔지만, 성악을 향한 갈망은 꺾이지 않았다.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레오폴트 모차르트 음악원에서 건반과 성악을 병행한 뒤, 명문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를 졸업하며 실력을 쌓았다.
결실은 눈부셨다. 1970년 한국인 성악가로는 최초로 유럽 정규 오페라 무대에 데뷔, 스위스 베른 오페라단과 전속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독일 카를스루에 국립오페라단, 뒤셀도르프 라인 국립오페라단의 주역으로 발탁되며 스위스·독일·이탈리아·스페인 등 유럽 전역을 사로잡았다.
1970년대 귀국한 뒤에는 중앙대와 연세대를 거쳐 1994년부터 2010년까지 한예종 음악원 성악과 교수로 재직하며 수많은 성악 재원을 길러냈다. 정년퇴임 즈음 고인의 발걸음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 2009년 방문한 아프리카 말라위 북부 카롱가에서 수천 명의 고아를 품은 ‘루스빌로(Lusubilo·툼부카어로 ’희망‘) 공동체’를 마주한 것이 생의 결정적 분기점이었다. 고인은 생전 “내가 평생 찾아 헤매던 곳이 바로 여기였다”고 회고했다.
2010년 퇴임 직후 전원주택을 매각해 마련한 사재 2억 원을 들고 말라위로 떠났다. 고인은 흙바닥 위 아이들에게 한국에서 공수해 온 건반과 드럼으로 노래를 가르치며 메마른 동심을 보듬었다. 현지 공동체는 그를 ‘뮤직 디렉터’라고 했고, 부족 추장은 ‘행복을 가져다주는 여인’이라는 뜻의 ‘루세케로’라는 아프리카 이름을 헌사했다. 국내 후원자들의 뜻을 모아 식수난에 시달리던 마을에 42개의 우물을 판 것도 그의 손을 거쳤다. 2022년 10월 유방암 2기 진단을 받고 귀국해 투병을 이어가면서도 그의 마음은 줄곧 말라위에 머물렀다.
유족으로는 독일에서 안드로메다 메가 익스프레스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아들 다니엘 글라첼이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21호실, 장례미사는 8일 서울 개포동성당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