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행사 연쇄 취소
2005년 ‘그때 그 사람들’ 블랙스크린
2026년엔 ‘자택 시위’까지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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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암살자들’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전방위 파열음’은 스크린 내부의 논쟁을 넘어섰다. 작품을 향해 겨둔 화살은 배우 개인과 제작진을 향한 비방과 신상 공개, 생업을 압박하는 움직임으로 번져 영화계의 우려가 깊은 상황이다.
역사적 사건을 극화한 작품이 거센 사회적 후폭풍을 마주한 것은 비단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다만 2026년 ‘암살자(들)’을 둘러싼 갈등에선 사회관계망서비스와 온라인 콘텐츠, 광고주, 영화제, 주연배우의 자택까지 논쟁의 무대가 확장되고 있다.
‘암살자(들)’의 논란이 과격하게 치닫는 대목은 ‘비판의 표적’이 배우들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인공 철구 역을 맡은 배우 유해진이 모델로 활동하는 버거킹과 키움증권 등을 향해 영화 논란과 관련한 항의가 이어졌다. 버거킹은 유해진이 등장하는 일부 광고 게시물의 댓글 기능을 차단했고, 키움증권은 유해진 광고 캠페인을 종료했다. 다만 키움증권 측은 계약 기간 만료에 따른 정상적인 종료라는 입장을 내놔, 온라인상의 항의와 광고 종료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논란은 급기야 배우의 주거 공간으로 번졌다. 보수 성향 시민단체 신자유연대 측은 앞서 유해진 자택 앞 집회를 예고했다. 이에 4일에는 실제로 서울 성북구 유해진 자택 앞 인도에서 규탄 집회를 열었다. 경찰은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현장에 기동대를 배치했고, 집회 참가자들은 영화 상영 중단과 제작진 및 배우의 사과를 요구했다. 집회가 배우 개인의 사적 거주 공간까지 침범한 것은 작품에 대한 논쟁이 창작자와 출연자의 일상으로 전이, 현재의 위태로운 상황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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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한 영화관에 걸린 ‘암살자(들)’ 홍보물 [연합] |
배우 개인을 향한 공세는 영화계 행사의 파행으로도 확산됐다. 제작사의 요청에 따라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 참석과 10월 7일 예정됐던 야외무대인사가 취소됐고, 이민호의 토크 프로그램 ‘액터스 하우스(Actors House)’ 역시 앞서 백지화됐다. 제작사는 최근 영화를 둘러싼 상황과 관객 및 참석자의 안전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3~5일까지 예정됐던 서울·경기·부산 지역 극장 무대인사 49회 차 역시 전면 취소됐다.
평론가들 역시 논쟁의 유탄을 맞았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출연한 ‘B 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의 ‘암살자(들)’ 리뷰 영상은 지난달 29일 비공개로 전환됐다. 이동진은 이후 제작진으로부터 “영화를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고 있어 영상을 내린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으며, 자신의 영화적 평가를 철회하거나 사과할 생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근현대사를 다룬 팩션 영화들은 끊임없이 충돌을 낳았다. 이는 ‘미완의 역사’와 집단 기억의 현재성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계에선 “한국 현대사는 생존 유족과 당대의 목격자, 역사적 평가를 둘러싼 정치·사회적 입장이 여전히 팽팽히 맞서는 영역”이라고 본다. 사료와 해석을 둘러싼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사건을 대중 매체가 극적으로 재구성할 때, 작품에 대한 평가는 역사관과 정체성을 둘러싼 진영 간 대결로 비화하기 쉽다는 것이다.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PGK)은 입장문을 통해 “영화에 대한 비판은 표현의 자유로서 존중돼야 마땅하지만, 참여자의 신상과 가족관계를 유포하거나 생업을 위협하는 행위는 정당한 비판의 범위를 명백히 벗어났다”고 지적했다. 한국영화촬영감독조합(CGK) 역시 “창작자를 향한 위협이 결국 문화계의 자기검열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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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그 때 그 사람들’ [MKB, MK픽처스 제공] |
기록되지 않은 ‘역사의 공백’을 상상력으로 채우려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법정과 광장을 오갔다.
가장 상징적인 선례는 1979년 10·26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을 블랙 코미디로 재구성한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2005)이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 씨가 상영금지가처분을 신청했다. 법원은 영화 전체 상영을 금지하지는 않았으나, 영화에 삽입된 부마항쟁 시위, 박 전 대통령 장례식, 김수환 추기경의 추모 장면 등 실제 다큐멘터리 영상 세 곳(약 3분 50초 분량)을 삭제하라고 결정했다. 해당 기록영상이 영화의 허구적 설정에 사실성을 부여해 관객이 실제 역사와 혼동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이에 제작사는 해당 분량을 소리와 화면이 없는 묵음의 ‘블랙스크린’으로 처리해 개봉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2006년 1심에서 1억 원 배상 판결이 내려졌던 이 사건은 2008년 서울고법에서 허구임을 밝히는 자막을 넣고 무삭제판을 상영하는 조건으로 조정 종결됐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사법적 판단 기준은 2006년 KBS 드라마(Drama) ‘서울 1945’와 영화 ‘실미도’(2003)를 거치며 한층 구체화됐다. ‘실미도’는 684부대원을 사형수로 묘사해 피소됐으나 대법원은 “제작 당시 진실을 알기 어려웠던 사정”을 인정해 기각했다. ‘서울 1945’ 역시 2010년 대법원에서 “가상 인물에 의한 허구가 더 많은 극화의 특성상 허위사실 적시로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확정했다. 반면 1998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고 김훈 중위 의문사를 다룬 ‘아버지의 전쟁’(2017)은 대법원이 “악의적 표출이 아닌 한 각색은 용인된다”며 가처분을 기각했으나, 유족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촬영이 중단되며 스크린에 걸리지 못했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2005년 ‘그때 그 사람들’ 당시에는 다큐멘터리 영상의 사실 오인성을 두고 법정에서 치열한 법리 공방과 타협이 이뤄졌다면, 2026년 ‘암살자(들)’은 법적 판단이 내려지기도 전에 배우 자택 시위와 행사 취소라는 사적 제재로 폭주하고 있다”며 “21년 전보다 공론장의 인내심과 관용이이 우려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