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유값 사상 최대로 올려놓은 트럼프, 수출금지도 감세도 할 수 없는 ‘진퇴양난’

수출금지부터 유류세 면제, 비축유 방출 등
검토하는 카드 모두 여의치 않아
유럽 압박해 비축 경유 방출 끌어냈지만
경유값 급등 근본 원인은 그대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AP]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미국의 압박에 못이긴 주요 7개국(G7) 국가들이 국제에너지기구(IEA)를 통해 4개월간 비축경유와 원유 등 1억배럴을 공동 방출하기로 했다. 유럽에 비축 경유 방출을 압박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G7의 성명 발표 이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유럽이 막대한 규모의 비축 디젤유를 방출하기로 합의했다. 절차는 즉시 시작될 것”이라며 환영을 표했다.

그러나 이 같은 조처에도 최근 급등하는 경유 가격을 잡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경윳값 급등의 근본 원인은 이란 전쟁으로 인한 공급 부족이고, 단기간에 이를 해결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미 행정부 내부에서는 수출금지부터 유류세 감면까지 다양한 대응이 검토됐으나 모두 한계가 뚜렷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유 6달러 돌파…“이란전쟁이 근본 원인”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의 트럭 정차장에 연료 가격이 표시돼 있다. 미국의 경유(디젤) 연료 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갤런당 6달러를 넘었다. [AFP]


트럼프 대통령은 ‘생활비 인하’를 공약으로 내걸고 백악관에 복귀했다. 그러나 두 번째 임기 시작 당시 갤런당 평균 3달러였던 휘발유 가격은 4달러를 넘어섰고, 캘리포니아 등 일부 주에서는 6달러에 육박한다고 전해졌다.

특히 경유 가격이 사상 처음 갤런당 6달러를 넘어서면서 부담이 더 커졌다. 경유는 트럭, 농기계, 열차, 건설장비 등에 폭넓게 쓰여, 가격이 오르면 각종 상품과 서비스 비용도 함께 뛰는 경우가 많다. 미국 내 경유 가격은 갤런당 6.38달러로 1년 전(3.70달러)보다 크게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유 가격 상승의 원인으로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을 지목했다. 그러나 블룸버그는 글로벌 연료시장의 더 큰 문제로 ‘이란 전쟁’을 꼽았다. 중동의 원유와 정제 석유제품의 수송이 수개월째 제약받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여는 합의를 끌어내지 못하는 한, 휘발유와 경유 가격을 낮출 수단은 제한적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전쟁 종식 합의가 중간선거 이후에나 가능할 수 있다는 취지로 언급한 바 있다. 고유가가 수주, 길게는 수개월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어서 정부가 다른 대책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도 커지고 있다.

경유 수출 제한·유류세 중단 모두 막혀…남은 카드는 ‘유럽 비축유’


지난달 30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설하는 동안 마이크 던리비 주지사(뒤 왼쪽), 하워드 러트닉 상무 장관,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이 참석해 있다. [EPA]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미국의 경유 수출 제한을 제안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처음에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이후 효과가 매우 제한적이라고 인정했다. 수출을 전면 또는 부분적으로 금지하면 단기적으로 가격 안정 효과가 있을 수 있으나, 결국 역효과를 낼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경유를 소비량보다 많이 생산하는데, 해외 판로가 막혀 정유업체들이 생산을 줄이면 글로벌 공급이 감소해 세계 가격을 오히려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유류세 감면 카드도 마찬가지다. 연방정부는 갤런당 휘발유에 18.4센트, 경유에 24.4센트의 세금을 부과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휘발유세를 “적절한 시점까지” 한시 중단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조치로 이어지지 않았다.

최근에는 석유업계 경영진이 경유 수출금지 대신 경유세 일시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세금 중단에는 의회 승인이 필요한데, 의회가 중간선거를 앞두고 휴회에 들어간터라 선거 전 처리는 사실상 어렵다. 세수 감소에 따른 재정적자 우려도 부담이다. 초당정책센터는 연방 휘발유세를 중단하면 매달 수십억달러의 세수 손실이 발생해 재정적자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비축유 방출·존스법 면제…이미 쓸 카드는 다 썼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텍사스주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AFP]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여러 조치를 동원했다. 지난 3월에는 전략비축유(SPR) 1억7200만배럴 방출을 지시했다. 국제 사회가 이란 전쟁발(發) 유가 급등을 억제하려 비상 비축유를 푼 공동 대응의 일환이었다. 계획된 방출이 끝나고 SPR 재고는 약 2억4400만배럴로 줄었다. 이는 전체 저장능력의 3분의 1이자 1980년대 이후 최저 수준이다.

같은 달 100년 넘게 유지된 존스법 적용도 한시 면제했다. 1920년 제정된 이 법은 미국 조선산업 보호를 위해 미국 내 항구 간 해상 운송에 미국 국적·건조·소유 선박만 쓰도록 규정한다. 면제로 비용이 저렴한 외국 유조선을 쓸 수 있게 되면서 국내 장거리 해상 운송이 늘었고,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올해 첫 7개월간 걸프 연안 공급업체가 서부 해안으로 운송한 원유와 석유제품은 지난 한 해 전체의 거의 두 배에 달했다.

미 환경보호청(EPA)도 겨울용 휘발유 판매를 예정보다 앞당겨 허용했다. 행정부는 이 조치로 휘발유 공급이 하루 수십만배럴 늘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생연료 의무혼합량은 농업계와 석유업계 등 핵심 지지층의 이해가 충돌하는 만큼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다.

라이트 장관은 “미국 정유소들은 가동률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있다”면서 정유능력을 더 늘리기 위해 국방물자생산법(DPA) 활용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국가안보를 위해 대통령이 국내 산업에 자원 우선 배분을 지시할 수 있는 비상권한으로, 발동하면 신규 정유시설 건설이나 노후 시설 재가동에 연방 자금을 투입할 수 있다. 그러나 추가 생산능력 확보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정유업체들도 수년간 투자 수익이 보장돼야 신규 투자에 나설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원유 매장량 650억배럴 이상에 대한 과반 통제권을 확보하는 협정으로 미국의 석유 공급이 늘고 “모든 미국인의 휘발유 가격이 상당히 낮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분석가들은 베네수엘라 생산량을 의미 있게 늘리려면 수년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란과의 전쟁을 끝내지 않는 한 미국 소비자의 연료비 부담을 단기간에 크게 낮출 해법은 거의 없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