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재정불안에 피드백 루프까지…미 국채시장 ‘최악의 한 달’[디브리핑]

10년물 5.30%, 2002년 이후 최고
금리 오르면 일부 펀드 강제 매도
매도가 다시 금리 끌어올리는 ‘악순환’
재정적자 국채에 AI 회사채까지…기간 프리미엄 확대
3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시의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트레이더들이 일을 하고 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정목희·서지연 기자] 물가 상승률이 시장 예상을 밑도는 와중에도 미국 장기 국채금리는 오히려 상승세를 이어갔다. 미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1일(현지시간) 이날 장중 5.34%까지 치솟아 200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시장에서는 미 국채 매도가 또 다른 매도를 부르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경고가 나온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발표된 8월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4% 상승해 시장 예상치 3.7%를 밑돌았다.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PCE 상승률도 3.0%로 7월 3.3%보다 낮아졌다. 물가 압력이 예상보다 빠르게 완화하면서 채권시장도 처음에는 물가 둔화에 반응했다.

PCE 발표 직후 국채금리는 하락했지만 흐름은 오래가지 않았다. 장기채 매도세가 다시 강해지면서 10년물 금리는 방향을 틀어 5.3%를 넘어섰다. 예상보다 강한 미국 경제와 장기채의 수급 부담이 더 큰 변수로 작용한 것이다.

같은 날 발표된 미국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기존 연율 1.5%에서 2.2%로 크게 상향 조정됐다. 소비와 기업투자가 애초 집계보다 강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8월 소비지출도 전월 대비 0.9% 증가했다. 고금리에도 미국 경제가 견조하게 버티면서 연준이 당장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서지 않더라도 높은 기준금리를 예상보다 오래 유지할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렸다.

장기금리를 밀어 올리는 또 다른 축은 채권시장 자체의 수급이다. 미 정부가 막대한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대규모 국채 발행을 이어가는 동시에 기업들도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전력망 등에 필요한 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회사채 발행을 늘리고 있다. 정부와 기업이 동시에 채권시장에서 자금을 끌어가면서 한정된 투자자 자금을 놓고 경쟁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재정적자에 따른 대규모 국채 공급과 AI 인프라 투자를 뒷받침하기 위한 막대한 회사채 발행이 장기채의 기간 프리미엄을 확대해 국채금리에 지속적인 상승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전했다. 패트릭 머넬리 틱밀그룹 시장전략가는 재정적자와 국채 공급, AI 인프라 관련 회사채 발행 등에 따른 기간 프리미엄 확대가 금리를 다시 끌어올릴 수 있는 근본적인 위험으로 남아 있다고 분석했다.

채권 공급이 늘어나면 투자자들이 이를 소화하도록 하기 위해 더 높은 수익률을 제시해야 한다. 특히 미 정부의 국채뿐 아니라 AI 투자를 위한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까지 동시에 증가하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국채보다 높은 금리를 주는 회사채를 선택할 수 있어 미 국채 역시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수익률 상승 압력을 받게 된다.

이에 따라 미국 장기금리를 결정하는 힘이 연준의 통화정책을 넘어 ‘강한 성장+정부부채+민간 자본수요’로 확산되는 모습이다. 통화정책 전망에 민감한 단기물과 달리 10년물과 30년물에는 경제성장률과 재정적자, 국채·회사채 공급에 따른 기간 프리미엄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한 식료품점에서 고객들이 쇼핑을 하고 있다. [AFP]


문제는 이런 불안이 시장 내부의 기계적인 매도로 증폭되고 있다는 점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30일 대형 투자자들과 트레이더들의 말을 인용해, 미국의 막대한 공공부채와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에서 시작된 국채 매도세가 이제 각종 펀드의 추가 매도를 촉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채 금리가 특정 수준까지 오르자 일부 펀드가 의무적으로 미 국채를 매도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고, 이 매도가 다시 국채 가격을 끌어내리면서 금리를 더 높이는 추가 매도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미 국채 금리 상승은 가격 하락을 뜻한다. 일부 펀드, 특히 레버리지를 쓰거나 위험관리 규칙이 엄격한 펀드는 국채 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 떨어지면 그냥 버틸 수 없다. 손실 한도, 증거금, 변동성 제한, 위험가치(VaR) 규정 등을 맞추기 위해 보유 국채를 의무적으로 줄여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압박을 받는 여러 펀드가 동시에 국채를 팔면 국채 가격이 더 떨어지고 금리는 더 오른다.

국채금리 상승 → 국채가격 하락 → 펀드 손실·변동성 증가 → 위험 한도 초과→ 국채 강제 매도 → 국채가격 추가 하락 → 금리 추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피드백 루프(feedback loop)’가 형성되는 것이다.

JP모건자산운용의 프리야 미스라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지금은 이런 악순환이 형성돼 있다”며 “도대체 무엇이 이를 끊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상황은 한동안 계속될 수 있다”며 “아무도 달려오는 화물열차 앞에 서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암루트 나시카르 바클레이스 애널리스트는 “미 국채 선물시장에 대규모 포지션을 보유하고 있는 레버리지 펀드들이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에 나서면서 추가 매도를 촉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니얼 고틀랜더 씨티 북미 스와프 트레이딩 책임자도 “이처럼 시장이 급락할 때는 포트폴리오의 다른 부분에서도 위험을 줄여야 한다”며 “이 떄문에 모든 매도가 동시에 일어난다. 다른 시장으로 번지는 파급효과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통상 채권 가격이 충분이 내려가면 이를 매수하려는 투자자가 등장하면서 시장이 안정을 되찾지만, 이번에는 그런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고틀랜더는 “아직 한계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물가가 안정되고 연준의 추가 금리 인상 전망이 약해지더라도 장기금리가 과거의 저금리 수준으로 쉽게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시장의 관심도 ‘연준이 금리를 얼마나 더 올릴 것인가’에서 ‘미 정부와 기업이 쏟아내는 채권을 투자자에게 사게 하려면 어느 정도의 수익률을 줘야 하는가’로 넓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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