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넘 총리 “단일시장부터 완전 복귀까지 검토”
英 국민 73% “EU와 더 가까워져야”
마크롱 “웰컴 백”…스페인도 “두 팔 벌려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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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3월 영국 런던의 의회 의사당 밖에서 영국 국기와 EU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 [연합] |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그대로 남을 수도 있고, 끝까지 갈 수도 있다.”
유럽연합(EU)을 떠난 지 10년 만에 영국에서 ‘EU 재가입’이 다시 정치권의 선택지로 떠올랐다. 앤디 버넘 영국 총리가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이후 처음으로 EU에 완전히 복귀하는 방안까지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다.
당장 EU에 재가입하겠다는 선언은 아니다. 하지만 2016년 국민투표 이후 영국 정치권에서 사실상 금기처럼 여겨졌던 ‘EU 복귀’를 현직 총리가 직접 테이블 위에 올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브렉시트 이후 10년 동안 달라진 영국의 여론과 정치 지형이 과거에는 꺼내기 어려웠던 카드를 버넘 총리에게 쥐여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블룸버그와 가디언 등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버넘 총리가 다가오는 영국-EU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측의 장기적인 관계를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면서 ①현상 유지 ②EU 관세동맹 가입 ③EU 단일시장 가입 ④완전한 EU 복귀 등 네 가지 시나리오를 조명했다.
버넘 총리는 브렉시트가 영국에 “이익보다 해를 더 많이 끼쳤다”고 평가하면서 각 선택지를 놓고 “무엇이 실행 가능한지, 각각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완전한 EU 재가입에 대해서도 “끝까지 가는(go all the way)” 방안이라고 표현하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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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디 버넘 신임 영국 총리가 20일(현지시간) 총리관저인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앞에서 취임 일성을 밝히고 있다. [EPA] |
버넘 총리가 줄곧 ‘브렉시트 반대론’을 펼쳤던 것은 아니다. 맨체스터 시장 시절에는 재가입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올해 초 브렉시트 찬성세가 강한 메이커필드 보궐선거에 출마했을 때는 이를 일축했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EU 재가입론과 거리를 뒀던 것이다.
브렉시트 언급은 집권당인 노동당이 불과 2년 전 총선에서 내걸었던 노선과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2024년 노동당은 EU 재가입은 물론 단일시장과 관세동맹 복귀, 이동의 자유 복원까지 배제하며 EU 복귀와는 거리를 뒀다.
영국 정가에서 다시 EU 복귀 가능성이 언급된 배경에는 달라진 민심이 있다.
여론조사 기관 유고브가 지난달 24~25일 실시해 30일에 공개한 조사에서 영국인의 73%는 EU나 단일시장·관세동맹에 재가입하지 않더라도 EU와 지금보다 가까운 관계를 맺는 데 찬성했다. 반대는 15%에 그쳤다.
특히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EU 탈퇴에 표를 던졌던 유권자 가운데서도 64%가 이 같은 관계 개선에 찬성했다. 브렉시트를 되돌리는 데 대한 의견은 여전히 엇갈리지만 적어도 EU와 거리를 둬야 한다는 과거의 정치적 공식은 상당 부분 약화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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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이 브렉시트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한 지 10주년이 된 지난 6월 20일에 런던에서 유럽연합(EU)에 재가입할 것을 요구하는 시위대가 집회를 열고 있다. [게티이미지] |
버넘 총리에게는 이런 변화가 새로운 정치적 공간을 만들어주고 있다.
블룸버그는 버넘 총리의 EU 발언을 최근 그가 추진하는 ‘좌파 블록 결집’ 전략의 연장선으로 분석했다. 영국 우파 진영이 분열된 틈을 이용해 노동당뿐 아니라 자유민주당과 녹색당 등에 흩어진 중도·좌파 유권자를 끌어들이려 한다는 것이다.
버넘 총리가 EU 관계 재설정과 함께 선거제도 개혁과 전국 단위 사회복지 서비스 도입 등을 잇달아 내놓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모두 자유민주당과 녹색당 지지자들이 호응할 가능성이 큰 정책이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상황은 정반대다.
2016년 브렉시트는 보수당과 우파를 결집시키는 동시에 노동당을 갈라놓았다. 노동당은 친EU 성향이 강한 도시·젊은 유권자와 브렉시트에 찬성한 전통적인 노동자 지지층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했다. EU 복귀를 주장하면 노동자층을 잃고, 브렉시트를 받아들이면 친EU 유권자가 이탈할 수 있는 구조였다.
버넘 총리는 이제 EU와의 관계 복원을 노동당의 약점이 아니라 자유민주당과 녹색당 지지층까지 묶을 수 있는 공통분모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그의 발언이 노동당이 차기 총선에서 EU 재가입을 공약으로 내걸 가능성까지 열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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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게티이미지닷컴] |
유럽에서도 예상보다 빠르게 화답이 나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버넘 총리의 발언에 영어로 “웰컴 백(Welcome back)”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국이 돌아오기를 원하고 총리가 그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영국과 유럽 모두에 매우 좋은 소식”이라고 했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 역시 브렉시트를 영국과 유럽 모두에 “엄청난 손실”이라고 평가하면서 영국이 복귀한다면 스페인이 “두 팔을 벌려 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EU 재가입까지 가는 길은 간단하지 않다. 마크롱 대통령도 영국이 EU의 혜택만 골라 취할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단일시장에 복귀하려면 상품·서비스·자본뿐 아니라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 등 EU의 기본 원칙을 다시 받아들이는 문제가 뒤따른다. 완전한 재가입이라면 기존 회원국들의 동의도 필요하다.
과거 영국이 누렸던 예외도 그대로 되살아난다는 보장이 없다. 영국은 EU 회원국 시절 유로화 도입과 솅겐조약(EU 회원국 간 무비자 통행을 규정한 국경 개방 조약)에서 빠져 있었고 EU 예산에서도 특별한 환급 혜택을 받았다. 재가입한다면 조건부터 다시 협상해야 한다.
버넘 총리 역시 현 의회 임기 동안 당장 브렉시트를 뒤집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노동당이 총선에서 약속했던 기존 방침을 이번 임기에는 지키되 장기적인 대(對)EU 관계의 선택지를 검토해 차기 총선에서 유권자의 판단을 받겠다는 구상이다.
브렉시트 10년을 맞은 영국에서 당장 가장 지지가 높은 선택지는 ‘EU 재가입’ 그 자체보다 EU와 다시 가까워지는 것이다. 10년 전에는 EU와 얼마나 멀어질지가 영국 정치의 핵심 질문이었다면 이제는 얼마나 다시 가까워질 것인지가 새로운 정치적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