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년 연기 인생서 본 적 없는 혁신”
![]() |
| 배우 톰 크루즈가 1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영화 ‘디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지난 46년간 하늘과 절벽을 맨몸으로 내달리며 ‘불사(不死)의 액션 스타-’로 군림해 온 배우 톰 크루즈(64)가 ‘완벽한 육체’를 내던졌다. 기름진 뱃살에 훅 벗겨진 이마, 주름진 피부로 궤변을 늘어놓는 탐욕스러운 석유 재벌.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신작 ‘디거’(3일 개봉) 속 그는 파격의 연속이다.
톰 크루즈는 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콘래드 서울 호텔에서 열린 내한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톰 크루즈는 “오스카와 같은 상이나 사람들의 생각, 평가와 관계없이 영화를 만든다. 영화 제작 자체가 내게는 특권”이라며 트로피보다 텍스트의 가치를 우선하는 영화인으로서의 소신을 들려줬다.
1981년 영화 ‘끝없는 사랑’에서 단역으로 출발한 그는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 동안 할리우드 최정상의 자리를 지켜왔다. 그는 “46년간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고 특권”이라며 연기를 향한 오랜 헌신을 꺼냈다.
올해로 벌써 13번째. 지난해 5월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이후 1년 5개월 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크루즈는 이번 방문으로 할리우드 배우 가운데 역대 최다 방한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날 이른 아침 전용기 편으로 입국한 그는 취재진을 향해 유창한 한국어로 인사를 건넨 뒤, “이 자리에 정말 오고 싶었다. 한국은 올 때마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어 “한국을 13번째 방문하게 돼 영광이며, 앞으로 30번은 더 방문하길 바란다. ‘디거’를 한국 관객들이 어떻게 바라볼지 무척 궁금하다”며 미소를 지었다.
당초 행사에 동반 참석할 예정이었던 멕시코 출신의 거장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개인 사정으로 내한이 불발됐다. 이냐리투 감독은 전날 배급사 워너브러더스 코리아를 통해 전달한 서한에서 “한국 관객 여러분이 보내주시는 놀라운 사랑과 열정에 늘 깊은 감동을 받아왔기에 함께할 소중한 기회를 놓쳐 진심으로 안타깝다”며 유감과 감사의 뜻을 전했다.
![]() |
| 배우 톰 크루즈가 1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영화 ‘디거’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 |
영화 ‘디거’는 미국 텍사스의 석유 재벌 록웰이 주도한 그린란드 빙하 시추 시설에서 균열이 발생하며 촉발되는 전 지구적 기후 재앙을 그린다. 빙하가 무너져 내리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도 록웰과 백악관 관료들은 사태를 수습하기보다 주가 방어와 정치적 손익 계산에 몰두하며 또 다른 서사를 조작해 진실을 은폐하려 한다. ‘버드맨-Birdman’(2014)과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5)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석권한 이냐리투 감독이 9년에 걸쳐 기획한 역작이다.
환경 재난 영화를 넘어선 이 작품의 도발은 파격적인 형식 실험에 있다. 영화 속 모든 위기와 권력자들의 암투는 사실 리허설 중인 한 편의 ‘연극 무대’라는 극중극 액자식 구성을 통해 펼쳐진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전복하며 관객이 누려온 관음증적 안전지대를 단숨에 무너뜨린다. 크루즈는 이를 두고 “영화의 구조와 스토리텔링의 문법을 완전히 바꾼 작품”이라고 했다.
2019년 ‘탑건: 매버릭’ 촬영 당시 이냐리투 감독으로부터 직접 협업을 제안받았다는 크루즈는 주연 배우이자 제작자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는 “‘디거’와 같은 장르는 이전에 읽어본 적이 없었고, 록웰 같은 인물 역시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며 “제안을 받은 날 밤 감독님의 사무실로 찾아가 밤을 새워 대화를 나눴는데, 감히 말하건대 모든 면에서 ‘전혀 다른 레벨’이었다”고 회고했다.
극 중 록웰은 인명보다 자본을 앞세우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꼰대’ 재벌다. 크루즈는 “내 이목을 끈 것은 인간의 본성이었다”며 “파격적인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기쁨을 넘어, 그 이면에 담긴 무수한 이야기로 관객들과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영화는 재난에 대한 우리 모두의 책임도 표현한다. 다양한 주제를 다층적으로 응시할 수 있는 렌즈를 제공하는 작품”이라고 했다.
![]() |
| 배우 톰 크루즈 [연합] |
트레일러에서 쪽잠 자며 준비…10분 롱테이크 하루 만에 완성
몸을 사리지 않는 스턴트 액션 대신 그가 이번에 택한 무기는 치밀한 신체 훈련과 고난도의 대사 소화력이었다. 크루즈는 디거 록웰이라는 인물을 체화하기 위해 현장 트레일러 세트에서 잠을 청하며 캐릭터 연구에 매달렸다고 털어놓았다.
치열한 고민의 정점은 영화 후반부 10분에 달하는 롱테이크 연설 장면에서 폭발한다. 전 지구적 재난의 주범으로 몰려 비난받는 와중에도 록웰은 “석유가 가져다준 편리함을 누려온 것은 결국 우리 모두”라는 서늘한 진실을 방패막이 삼아 대중을 압도한다.
크루즈는 “원래 4일 동안 촬영하도록 배정된 10분짜리 롱테이크 장면이었지만, 철저한 준비 끝에 단 하루 만에 3~4회 촬영만으로 끝냈다”며 “더 촬영하고 싶다고 했더니 이냐리투 감독이 ‘충분하다’며 안아주더라”고 전했다. 그는 현장 취재진 앞에서 극 중 대사인 “뱅뱅뱅”을 직접 외치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과거 ‘우주전쟁’(2005)의 스티븐 스필버그, ‘아이즈 와이드 셧’(1999)의 스탠리 큐브릭과 호흡을 맞췄던 크루즈는 이냐리투 감독을 거장들의 반열에 올렸다. 그는 “영화의 리듬을 자연스럽게 구현해내는 감독”이라며 “이냐리투는 역사적 거장이자 엄청난 예술가”라고 치켜세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