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급 하우스’ 직행한 김건·노민형·최영
월 3000유로 받으며 생계 걱정까지 덜어
대타 투입 ‘점프인’에서 전막 캐스팅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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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오페라스튜디오 출신으로 도이치오퍼 베를린의 교류 프로그램에 발탁돼 활약한 성악가 최영, 노민형, 김건. [국립오페라단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울타리 밖 현실은 냉혹했다. ‘무대의 기회’는 절실했지만,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한 계단 한 계단 밟고 올라설 ‘성장의 시간’은 더뎠다.
서울대 성악과를 다닌 바리톤 김건(30). 졸업 후 날이면 날마다 유학 경비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아무리 줄여도 쉽사리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가 쌓였다. 결국 붓을 꺾듯 성악을 내려놓았다. 월세, 통신비, 전기요금을 따질수록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돌아본다. 그 시기 그는 1년 6개월 넘게 대극장 뮤지컬 앙상블 오디션 장을 전전했다.
베이스 노민형(30)은 세상에 나오기도 전 거듭 고배를 마셨다. 성악가의 길을 가는 첫 관문인 대학 입시에서였다. 번번이 합격 문턱에서 미끄러졌다. 상근예비역으로 복무하던 시절, 다섯 번의 도전 끝에 한양대의 문턱을 넘었다. 학창 시절 내내 “노래를 못한다”는 열등감에 시달리던 베이스 최영(31)은 합창단원이 되는 것이 목표였다. 그는 지방 시립합창단의 객원 단원으로 회당 몇십만원의 일당을 받으며 가까스로 노래의 끈을 놓지 않았다.
성공한 성악가들에게 으레 따라붙는 ‘엘리트 서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세 사람은 “벼랑 끝에 섰을 때 기적 같은 기회가 왔다”고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각기 다른 좌절이 자리에 섰던 셋을 하나로 잇는 연결 고리는 국립오페라단의 청년 교육 프로그램 ‘국립오페라스튜디오’였다. 이곳을 발판 삼아 세 사람은 독일 3대 오페라 극장이자 유럽 음악계 메인스트림인 ‘도이치오퍼 베를린’의 무대로 직행했다. 2024~2025 시즌 김건을 시작으로 노민형에 이어 지난달 최영까지, 세 번째 교환 프로그램의 주역으로 ‘오페라 본토’ 무대에 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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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 국립오페라단 스튜디오 어린이와 마법 의자 역으로 출연한 최영 [국립오페라단 제공] |
최근 서울 서초동 국립오페라단 연습실에서 마주한 세 사람은 “국립오페라스튜디오는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국립오페라단 스튜디오에 지원했어요.” (김건)
김건은 국립오페라스튜디오와 도이치오퍼 베를린 교류 프로그램의 첫 결실이었다. 국내 성악 전공자들의 ‘유럽 진출’은 오랜 관행을 따랐다. 음대 졸업 후 독일이나 이탈리아로 건너가 석사·최고연주자과정을 밟는 것, 동시에 국제 콩쿠르에 입상해 중소 도시의 극장 오펀스튜디오에 들어가는 방식이다. 국립오페라단과 도이치오퍼 베를린의 파트너십은 이 사다리를 완전히 뒤집었다.
독일 현지 극장의 캐스팅 디렉터가 매년 직접 한국으로 날아와 국립오페라스튜디오 청년 교육단원들을 대상으로 비공개 오디션을 진행한다. 합격자는 유학이나 석사 학위 없이도 유럽 최상위 ‘A급 극장’의 솔리스트 앙상블 단원으로 직행. 게다가 국립오페라단과 도이치오퍼가 각각 절반씩 부담해 매달 지급하는 약 3000유로(한화 약 450만 원)의 급여는 청년 예술가들이 생계 위협 없이 예술에만 전념할 수 있는 든든한 안전망이었다.
김건은 당시를 떠올리며 “보통 독일 지방 B·C급 극장에서 시작하면 실력이 뛰어나도 인맥과 타이밍이 안 맞아 A급 극장으로 올라오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며 “첫 단추를 도이치오퍼 같은 메이저 하우스에서 끼운다는 건 상상조차 못 할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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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이치오퍼 베를린 2026 ‘돈카를로’ 주역(로드리고)으로 출연한 김건 [국립오페라단 제공] |
그의 이야기에 노민형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국립오페라스튜디오가 예기치 못한 도약대를 놓아준 것이다. 수상 이력과 화려한 타이틀을 앞세워야 기회를 얻는 기존 공식과 달리 이곳에선 ‘잠재력’이 가장 큰 무기였다. 노민형은 “그해 잘한다고 소문난 젊은 성악가들은 모두 도전하는 선망의 대상이었다“며 ”수상 경력뿐 아니라, 현장 라이브를 통해 미래 가능성까지 살펴주니 낯선 이름의 원석이 발굴되는 경우도 많았다”고 귀띔했다.
사실 이들에겐 ‘벼랑 끝’에서 찾아온 기회였다. 김건은 성악을 그만두려던 때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이곳을 찾았다. 우연히 인스타그램에 뜬 오디션 지원 공고에 무작장 지원했다 기회를 잡은 것이다. 노민형은 서너 차례 낙방한 끝에 4수 만에 스튜디오에 입성했다. 최영은 아산시립합창단 객원 단원으로 활동하던 시기, 동료가 지원한다는 말에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심정으로 시험이나 보자 싶어 지원했다”고 돌아봤다.
스튜디오는 단원들에게 1대 1 레슨과 마스터클래스, 언어와 연기 수업을 지원했다. 국립오페라단 정기공연에 조·단역으로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도 열린다. 김건은 “기존의 성악 마스터클래스는 발성과 소리에만 집중하기 쉬운데, 스튜디오에선 지휘자와 작업하며 음악의 흐름을 분석하고, 작품 속 인물을 설득혁있게 구현하는 방법을 배운다”며 스튜디오 커리큘럼의 강점을 꼽았다.
국립오페라단에 따르면 처음엔 한 기수에 성악 파트만 8명 정도 뽑을 만큼 규모가 작았다. 지금은 지휘·음악코치·연출·무대미술 분야까지 넓혀 연간 90명 안팎을 선발한다. 최영은 “출중한 동료들이 모여 서로를 독려하다 보니 짧은 기간에 실력이 많이 올랐다”고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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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이치오퍼 베를린 2026 ‘Violanta’ 프리미어 출연한 노민형 [Marcus Lieberenz 제공] |
꿈에 그리던 베를린에선 낭만을 즐길 틈은 없었다. 도이치오퍼 베를린은 빈 국립오페라극장, 바이에른 국립오페라극장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소화하는 ‘레퍼토리 극장의 심장’이다. 1859석 규모의 극장엔 일주일에 두세 편의 서로 다른 프로덕션이 쉼 없이 교차 상연된다.
김건은 “메인 무대엔 오늘 올라갈 공연 세트가 설치돼 있다면 그 왼쪽엔 내일 공연할 작품의 세트, 반대편 오른쪽엔 나흘 뒤 막 올리는 무대 세트가 대기 중”이라고 백스테이지 풍경을 들려줬다.
워낙 빽빽한 스케줄이 이어지다 보니, 극장의 사정은 늘 유동적이다. 혹독한 도이치오퍼 베를린의 생존기는 무용담과도 같았다. 노민형은 “하루는 3시간 자고 아침 리허설 두 개를 뛰고, 발음 코칭을 받은 뒤 대기실에서 잠깐 눈 붙이고 저녁에 4시간짜리 ‘피가로의 결혼’ 무대에 섰다”며 혀를 내둘렀다. 학교에선 오페라 한 편을 한 달간 준비해 두 번만 올려도 진이 빠진다는데, 그가 지난해 12월부터 올 1월까지, 고작 두 달 동안 베를린에서 소화한 무대만 해도 21회나 된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기회를 낚아채기 위해 ‘예스맨’도 자처했다. 노민형은 “복도에서 극장장을 마주치면 불썩 ‘새 배역 커버 하나 더 할 수 있겠냐’고 묻는데, 단 한 번도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가 한 시즌 동안 맡거나 대기한 배역은 무려 15~16개. ‘돈 카를로’의 플랑드르 사절, ‘라 보엠’의 세관 하사관,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신작 프로덕션도 커버 역이었다.
국립오페라단이 발굴한 원석은 독일 본토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다. 김건은 2024년 9월 입단과 동시에 푸치니 ‘라 보엠’의 주역 마르첼로와 야나체크의 오페라 주역을 꿰찼다. 동양인 청년 연수생에게 간판 프로덕션 주역을 맡긴 것은 현지에서도 전례를 찾기 힘든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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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 벨베데레 콩쿠르에서 우승한 김건 [국립오페라단 제공] |
“외국 극장 입장에선 위험 부담이 있는 캐스팅이잖아요. ‘내가 정말 주역이 맞냐’고 물었더니, ‘널 100% 믿는다’는 답이 왔어요. 가슴은 벅찼고 든든했지만, 첫 리허설에선 부담이 확 밀려오더라고요.” (김건)
긴장감 탓에 막이 오르기 직전까지 ‘헛기침’이 멈추질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무대가 시작되자 언제 그랬냐는듯 달라졌다. 김건은 “첫 소절이 들리자 마자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무대에서 놀고 있었다”며 수줍게 웃었다. 1년의 장학생 계약을 마친 이후에도 도이치오퍼에선 김건을 다시 불렀다. 지난 1월 베르디 오프레 ‘돈 카를로’에선 로드리고 역으로 대체 투입됐다. 당시 그를 지켜본 현지 연출가는 감탄하며 3월 공연까지 전막 캐스팅으로 김건을 낙점했다.
사실 한국인 성악가의 실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세계 주요 극장이 한국인 성악가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고 할 만큼 전 세계 곳곳에서 한국 성악가들이 활약 중이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앞서간 선배들이 쌓아온 신뢰를 안고 입성한 자리인 만큼 부담이 더 컸다.
최영은 “현지 음악 코치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며 “‘한국 성악가들의 소리와 테크닉은 이미 월드클래스다. 다만 아쉬운 건 무대 위에서 자유롭게 노는 법과 뉘앙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했다.
이러한 간극을 메우기 위해 피나는 노력이 따라왔다. 노민형은 바그너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출연을 앞두고 현지 코치로부터 “자음 하나, 모음 하나의 미세한 발음 차이까지 교정”받으며 혀에 쥐가 날 정도로 연습했다. 함께 일하는 다국적 동료들과 친해지기 위해 구글 번역기를 돌려가며 20여 개국의 인사말을 외워 인사를 건넸던 살가운 친화력 덕에 그는 백스테이지에서도 분위기 메이커였다.
국립오페라스튜디오에서의 수업은 실전에서 빛을 발했다. 자연스러운 연기와 표현력을 끌어내는 데에도 도움이 됐다고 세 사람은 입을 모은다. 최영은 “유럽에선 배역을 어떻게 해석하고 무대 위에서 어떻게 걷고 시선을 처리하는지를 훨씬 집요하게 보는데, 국립오페라스튜디오에서 받았던 발레, 현대무용, 연기 훈련이 현지에서 살아남는 데 자양분이 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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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 국립오페라단 스튜디오 ‘어린이와 마법’ 의자 역으로 출연한 최영 연습장면 [국립오페라단 제공] |
도이치오퍼 무대로 점프한 1년은 ‘눈부신 도약대였지만, 이들에게 ‘안주’는 허락되지 않았다.
김건은 도이치오퍼에서의 생활을 돌아보며 “6개월 차부터 ‘내년엔 뭘 하지’라는 걱정이 밀려왔다”고 돌아봤다. 결혼을 준비하던 시점이라 월세 걱정, 생계 걱정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러나 본토 극장에서 증명한 실력을 동력 삼아 벨베데레 국제성악콩쿠르(2025)에서 우승 타이틀을 안으며 그만의 길을 개척했다. 지금은 쾰른 음대에서 석사 과정을 밟으며 활동 중이다. 노민형 역시 베를린한스아이슬러 음대 석사를 이어가며 이탈리아 로마 오페라 극장 등 유럽 전역으로 무대를 넓히고 있다.
갓 출국한 최영은 모차르트 ‘마술피리’, 푸치니 ‘토스카’를 시작으로 도이치오퍼 베를린 무대에 본격 등판한다. 그는 2026-2027시즌 정규 공연에 조·단역으로 40회 이상 출연하며 본토 무대를 누빈다. 그는 독일의 오페라 명가에서 한국인의 깃발을 제대로 꽂고 돌아오는 것이 ‘지금의 목표’다. 그는 “도이치오퍼에 국립오페라단 장학생이 온다고 하면 ‘기대된다, 걔네 잘하잖아’ 소리가 계속 나오도록 잘하고 오겠다”며 “더 큰 무대에서 성장하고 싶다”고 했다.
도이치오퍼 졸업생이라는 커리어를 새긴 두 사람의 행로엔 ‘벼랑 끝 시련’을 통과한 사람들의 담담한 다짐이 새겨졌다.
노민형의 꿈은 연광철, 사무엘 윤을 잇는 독일어권 최고 가수인 ‘캄머쟁어’(독일어권 극장이 탁월한 가수에게 수여하는 명예 칭호)가 되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 꿈은 접지 않았다. 그는 하지만 “지금은 무대에 오래 서는 예술가가 되고 싶다. 관객들이 극장을 찾는다는 건, 자기 삶의 소중한 시간을 떼어내 우리에게 건네는 것”이라며 “그분들의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그 순간을 가치 있게 빛내드리는 성악가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김건에겐 노래가 삶이자 시간의 기록이었다. 그는 “지금의 전 삶의 겹을 쌓는 단계”라며 “언젠가 무르익어 그것을 덜어내, 제가 살아온 평범한 일상을 노래하고 싶다. ‘삶을 노래하는 아티스트’가 되는 것이 제 유일한 기도”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