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오피셜 차트 클래식 1위 석권
60년 품은 선율, 두다멜 만나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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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앤서니 홉킨스가 88세의 나이에 자신의 자작곡 12개로 채운 생애 첫 관현악 앨범을 발매했다. [유니버설뮤직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상대를 꿰뚫어 보는 듯한 섬뜩한 눈빛의 ‘한니발 렉터’(‘양들의 침묵’), 기억의 미로 속에서 쇠락해 가는 노인(‘더 파더’), 지독한 억압 속에 감정을 숨긴 완벽한 영국 집사(‘남아있는 나날’), 신과 인간 사이에서 고뇌하는 교황 베네딕토 16세(‘두 교황’)….
서늘한 지성과 광기, 엄격한 절제와 격정적 분출을 오가며 반세기 넘게 전 세계 관객을 숨죽이게 했던 명배우가 신인 작곡가로 세상에 다시 섰다. 피아노 앞에서 홀로 직조해 온 관현악곡 12편을 담아 세계적인 클래식 음반사 데카를 통해 생애 첫 앨범 ‘라이프 이즈 어 드림(Life Is a Dream)’을 낸 것이다.
여든여덟, 벼를 심어 쌀을 수확하기까지 ‘농부의 손길’이 여든여덟 번을 닿아 ‘미수’라 불리는 나이에 내놓은 음반이다. 한평생의 정성과 노력을 다해 일군 음악을 낸 그는 앤서니 홉킨스(88)다. 세계적인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과 ‘클래식 본고장’ 영국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비르투오소 솔리스트들이 참여해 완성한 음반은 발매 직후 영국 오피셜 차트 클래식 부문 주간 1위에 올랐다.
앤서니 홉킨스는 헤럴드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배우의 이름 뒤의 ‘가려진 시간’엔 음악적 기록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는 연기를 알기 이전, 음악을 시작했다. 네 살 때 피아노를 만났고, 여섯 살에 즉흥 연주를 시작했던 소년 홉킨스의 가슴엔 음악은 언제나 무한한 꿈이었다. 그의 음악엔 어린 날들의 기억, 부모님과 함께 살던 고향 웨일스의 풍경이 스며 있다.
“전 숫자와 날짜에 매료돼요. 어린 시절, 부모님, 웨일스에 대한 기억은 놀랄 만큼 선명하죠. (그 시절은) 제 작품 중 일부에 영감을 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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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앤서니 홉킨스가 88세의 나이에 자신의 자작곡 12개로 채운 생애 첫 관현악 앨범을 구스타보 두다멜의 지휘로 발매했다. 그는 이 과정을 “평생의 영광이자, 진정한 특권”이라며 음반 수익금 일부는 세계적인 지휘자 두다멜의 고향인 베네수엘라 주민 구호를 위해 기부한다. [유니버설뮤직 제공] |
지나간 시간의 편린은 음표가 됐다. 기억은 늘 음악의 출발점이었다. 웨일스의 풍경을 담아낸 ‘브랙컨 로드’(Bracken Road)는 1963년 리버풀 플레이하우스(Liverpool Playhouse)의 무대 뒤 피아노에서 길어 올린 선율이었다. 아주 오랜 시간을 건너 지금에 다다라 장대한 관현악곡으로 완성된 것이다. 웨일스를 향한 헌사를 담은 ‘마이 파더랜드’(My Fatherland)엔 홉킨스가 오래 간직한 날들이 담겨있다. “제빵사의 아들인 나의 소박한 시작을 기리기 위한 곡”이 바로 이 곡이라는 설명이다.
작곡을 공부하지 않은 것은, 그의 음악 세계에 있어 ‘독창적인 날개’가 됐다. 정형화된 이론과 화성학의 문법에 얽매이지 않았기에, 그의 음표는 도식적인 틀을 벗어나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음악을 만드는 과정을 복잡하고 심오한 언어로 표현하지 않는다. 홉킨스는 “제 마음의 구조는 이미지로 생각하게 돼 있다”며 “종종 그 이미지들이 기억을 다시 불러온다. 그것이 영감의 근원”이라고 했다.
창작 과정은 “자세히 설명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그에겐 늘 ‘위대한 예술가’들이 뮤즈와 다름없었다. 젊은 날의 악상은 오랜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완성됐다. 그는 “제가 작곡한 대부분의 곡은 저의 영혼 깊은 곳에서 나온다. 그것들은 저의 일부이기 때문에 쉽게 다시 다가갈 수 있다”고 했다.
“음악을 작곡할 땐 에드워드 엘가와 같은 위대한 인물에게서, 그림을 그릴 땐 파블로 피카소에게서 영감을 받아요.”
서랍 속에 갇혀 있던 개인적인 선율들이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은 영화음악의 거장 조지 펜턴과의 인연이었다. 1996년 홉킨스가 연출한 영화 ‘어커스트’ 제작 당시였다. 그는 “직접 음악을 써보라고 격려해줬다”며 그때를 떠올렸다. 홉킨스의 펜턴의 응원에 ‘어거스트’를 비롯해 ‘슬립스트림’(2007), ‘엘리제’(2020)에 작곡가로 이름을 올렸다. 당시의 경험이 음반 제작이라는 결과로 쉬이 이어지진 않았다. 그의 음악이 세상에 나오기까진 더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모든 일은 알맞을 때 일어난다. 계획된 일은 아니었다”며 “여러 일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제 음악이 마에스트로 구스타보 두다멜의 관심을 받게 됐다. 모든 것이 예상치 못하게 하나로 모이게 됐다”고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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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홉킨스의 첫 음반을 녹음 현장. 구스타보 두다멜과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단원들 [유니버설뮤직 제공] |
방 안에서 홀로 건반을 누르며 스케치했던 악보들이 웅장한 교향악으로 환생하는 과정은 그에게도 각별한 경험이었다.
“제 삶 전체가 하나의 꿈이에요. 이 음악적 여정에서 예술성이 핵심적인 역할을 해준 마에스트로 구스타보 두다멜은 우아하고 정밀한 지휘봉으로 각각의 음에 깊고 지워지지 않는 의미를 부여했어요. 청자가 저마다 고유하고 개인적인 무언가를 느끼고 상상하도록 이끄는 회화적 풍경을 만들어냈어요.”
홉킨스는 하나의 음반을 내기 위해 만난 음악가들, 세계적인 음반사와의 인연을 두고 “평생의 영광이자 진정한 특권”이라고 했다. 음반 제작을 통해 빚은 ‘예술적 조응’은 사회적 연대로 확장됐다. 홉킨스는 음반 판매 수익금 일부를 두다멜의 고국인 베네수엘라 주민 구호를 위해 유엔개발계획(UNDP)에 기부하기로 뜻을 모았다. 예술적 연대가 인류애적 실천으로 이어진 것이다.
앨범 제목 ‘라이프 이즈 어 드림’은 스페인 극작가 칼데론 데 라 바르카의 희곡에서 따왔다. 홉킨스는 이 제목에 자신의 삶을 겹쳐 놓았다.
‘삶은 긴 작별’이라 했지만, 그의 손끝은 여전히 ‘청년의 심장’으로 뛰고 있다. 홉킨스는 “요즘 즉흥적으로 새 곡들을 만들고 있고, 그 곡들을 이제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발전시켜 보고 싶다”며 “(언젠가는) 영화음악을 작곡해 보고 싶다”는 또 다른 꿈을 들려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