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반 위의 청춘부터 전설의 작업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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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드라마 ‘포핸즈’ [tvN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가을은 ‘브람스의 계절’이다. 바람의 온도가 달라질 즈음이면, 음악계에선 어김없이 브람스를 찾는다. 계절이 바뀔 무렵엔 약속이나 한듯 쓸쓸한 고독의 선율을 찾아 헤매기 마련.
그럼에도 브람스의 우수에만 머물기엔 음악의 빛깔은 너무도 다채롭고 찬란하다. 흑백의 피아노 건반 위에서 부딪히는 청춘의 거친 숨결이 생동하고, 불꽃처럼 타올랐던 록스타의 굴곡진 생애도 펼쳐져 있다. 21세기 팝스타의 눈부신 스포트라이트 뒤편이 궁금하다면 백스테이지 다큐멘터리를 켜고, 시대를 뒤흔든 ‘불멸의 명곡’이 잉태되던 순간의 공기를 들이마시고 싶다면 전설적인 거장의 믹싱 콘솔 옆자리에 가만히 가 앉으면 그만이다. 국내에 상륙한 OTT 안에 이 모든 게 다 있다. 듣기는 기본, ‘보는 음악’의 세계로 빠질 시간이다.
예술고등학교의 연습실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콩쿠르, 서로의 등을 바라보며 질주하는 두 피아노 천재가 있다. 클래식을 전혀 모르는 이라도 청춘의 뜨거운 성장 서사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무장해제된다.
복용 콘텐츠 : tvN ‘포핸즈(Four Hands)’
약효 “한 대의 피아노를 두 사람이 네 손으로 연주하는 연탄곡(連彈曲). 혼자 건반을 장악하는 독주와 달리 상대의 호흡과 움직임까지 읽어야 한다. 상대의 미세한 들숨과 날숨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고, 건반 위에서 손이 엉키지 않도록 본능적으로 손을 물려야 하며, 때로는 내가 한 음 낮추어 물러서야만 비로소 하나의 완전한 화음이 완성된다.
음악을 두고 라이벌로 날을 세우던 두 청춘이 결국 서로에게 건반의 공간을 내어주며 하나의 곡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은, 경쟁에 지친 우리 삶에 뭉클한 전율과 깊은 정서적 정화를 선사한다. 건반을 두드리는 손끝의 미세한 떨림을 따라가다 보면, 각박한 세상살이에 굳어 있던 마음에 맑은 생기가 차오른다. 현실에선 보기 힘든 비주얼의 두 피아니스트(송강, 이준영)가 눈과 귀를 놀라게 한다.
복용 팁 선율의 해상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화면의 자막이나 인물의 대사만 좇지 말고, 배우들의 어깨너머로 들려오는 배경음악에 귀를 바짝 기울일 것. 특히 두 사람의 손이 교차할 때 흐르는 쇼팽과 라흐마니노프의 선율을 찾아 음원 플랫폼에서 검색한다면 드라마는 박제된 콘텐츠를 넘어 나만의 클래식 플레이리스트로 그 파폭(波幅)을 넓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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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SBS 제공] |
명절의 번잡한 소음이 잦아들고 사위가 고요해질 때, 쫓기듯 살아온 일상의 속도에서 한 걸음 물러나 오롯이 내 안의 결핍을 마주하고 싶다면 이보다 더 따뜻한 위안은 없다.
복용 콘텐츠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약효 스물아홉 경계에 선 클래식 음악도들의 흔들리는 꿈과 사랑, 재능의 한계와 열등감의 무게를 담담하게 응시한다.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슈만, 그 곁을 평생 묵묵히 지키며 음악적 헌신을 바쳤던 브람스의 뒤엉킨 관계는 극 중 채송아(박은빈 분)와 박준영(김민재 분)의 엇갈리는 시선 위로 거울처럼 겹쳐진다. 드라마의 제목은 프랑수아즈 사강의 책 제목과 같다. 넷플릭스에서 다시보기가 가능해 연휴 밤 언제든 꺼내볼 수 있다.
이 작품의 진정한 미덕은 안단테(Andante, 느리게 걷는 빠르기)의 템포에 있다. 조급하게 결론을 재촉하지 않고, 인물의 머뭇거림과 침묵, 말줄임표 사이의 망설임을 오래도록 지켜본다. 가을바람에 서늘해진 마음에 나직하게 스며드는 미온수 같은 치유제다.
복용 팁 늦은 밤, 거실의 불을 끄고 브람스의 피아노 소품 ‘인터메조(Intermezzo, 간주곡) Op. 118-2’를 조용한 스피커로 먼저 감상한 뒤 1화를 시작할 것. 따뜻한 차 한 잔을 곁에 두고 인물들의 쓸쓸한 눈빛을 응시하다 보면, 계절의 고독이 서글픔이 아닌 삶을 버텨내는 성숙한 힘으로 치환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대체 처방 : ‘노다메 칸타빌레’
클래식의 깊이는 탐나지만 침잠하는 우울은 버겁“면 단연 노다메다. 괴짜 천재 피아니스트 노다메와 완벽주의 지휘자 치아키가 빚어내는 소동극은 클래식의 엄숙주의를 통쾌하게 부숴버린다. 브람스가 씁쓸한 에스프레소라면, 노다메는 지친 영혼을 단숨에 깨우는 달콤한 초콜릿이다. 왓챠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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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탄소년단(BTS) [넷플릭스 제공] |
화려한 조명과 수만 관중의 환호성이 걷힌 뒤, 슈퍼스타는 어떤 얼굴로 허공을 응시할까. 정상의 자리에 오른 예술가가 다시 백지 앞에 앉아 첫 음을 두려워하는 순간은 그 어떤 픽션보다 극적이다.
복용 콘텐츠 :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BTS: 더 리턴’
약효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다시 모인 방탄소년단(BTS)이 정규 5집 ‘아리랑(ARIRANG)’을 준비하며 겪는 창작의 진통과 날것의 감정을 담아냈다. 화려한 슈퍼스타의 이미지를 걷어내고, 불확실성과 두려움 속에서 서로를 다독이며 하나의 화음을 찾아가는 그룹의 치열한 민낯을 비춘다. 한 장의 음반을 완성한다는 것이 결국 사람과 사람이 서로의 모난 구석을 깎아내고 맞추어가는 지난한 연대의 과정임을 잔잔하게 증명한다.
복용 팁 팬덤의 시선을 잠시 내려놓고 ‘한 곡의 멜로디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거치는 노동의 과정’에 초점을 집중할 것. 무수히 많은 고민과 혼란을 딛고 세상에 나온 바로 그 앨범이 약 6개월간 세계를 뒤흔든 결과를 만들었다. 이 시점에 일곱 청년의 이야기를 다시 보면, 그들의 음악도 달리 들릴지 모른다.
대체 처방 :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클래식 음악가의 삶이 궁금하다면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지휘자이자 작곡가였던 번스타인의 음악과 사랑, 인간적 나약함이 거대한 교향악 선율을 타고 가슴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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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럴드경제DB] |
매일 듣던 익숙한 노래가 하나씩 분리되어 들리는 순간, 음악을 향한 애정은 새로운 차원의 지적 경이로움으로 도약한다.
복용 콘텐츠 : 디즈니+ ‘매카트니 3,2,1’
약효 팝의 역사 그 자체인 폴 매카트니와 전설적 프로듀서 릭 루빈이 흑백의 공간에서 마주 앉았다. 비틀스(The Beatles) 시절의 마스터 테이프를 믹싱 콘솔에 올려두고 베이스 라인과 드럼 비트를 하나씩 솔로로 올려 듣는 순간, 반세기 동안 수억 명이 들어온 멜로디가 마법처럼 해체되고 재구성된다.
존 레논과의 음악적 스파크, 우연이 빚어낸 찬란한 불협화음의 비밀을 거장의 육성으로 듣는 경험은 귓가에 정밀한 현미경을 달아준다. 오래 알던 노래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입체적 공간감으로 다가오는 황홀경을 맛보게 된다.
복용 팁 6부작 전편을 한 번에 해치우려 하지 말 것. 내가 가장 사랑하는 비틀스의 명곡이 흘러나오는 에피소드부터 하나씩 골라 아껴 먹듯 음미할 때 그 약효가 극대화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