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티 치면 휴전 깨지고 안 치면 사우디와 균열…트럼프의 딜레마
“이란戰 이어 또다른 전선 열릴라”…참모진들도 반대
호르무즈 이어 바브엘만데브까지 흔들리면 시장 충격 감당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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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지난해 11월 미국 백악관 집무실에서 회담을 하고 있다. [로이터] |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주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 반군을 공격해달라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요청을 받아들일지를 놓고서다. 사우디는 미국의 핵심 동맹이자 이란과의 전쟁에서 협조가 절실한 파트너지만, 그 요청을 들어주는 순간 트럼프는 이란과의 전쟁에 더해 새로운 전선을 하나 더 떠안게 된다. 안 그래도 이란전(戰)의 여파가 세계 경제에 충격을 주고 있는 마당에, 사우디의 요구를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다.
2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예멘의 친(親)이란 후티 반군은 중동 정세가 어수선한 틈을 타 사우디와의 전쟁을 재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의 군사 지원 요청을 놓고 수주간 갈팡질팡하고 있다.
미 행정부 당국자들에 따르면 지난 17일 사우디의 실권자이자 이란전쟁에서 미국의 핵심 동맹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는 후티를 저지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미국이 개입해달라고 요청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과 하루 전 참모들과의 회의에서 후티 공습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빈 살만 왕세자와 통화한 뒤 입장을 뒤집어 국방부에 후티 공습 준비를 지시했다. 하지만 20일 정오 무렵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결정을 뒤집은 것으로 전해졌다. 행정부 당국자들에 따르면 적어도 당분간은 후티를 겨냥한 미군 공습을 하지 않기로 했다.
한 고위 행정부 관계자는 NYT에 “미국은 사우디와 방위협정을 맺고 있으며 우리는 언제나 동맹국을 방어할 것”이라고만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참모진 대부분도 사우디의 후티전쟁에 미국이 가세하는 데 상당히 회의적이거나 노골적으로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이란과의 전쟁으로 미군의 부담이 커진 상황이라는 점이 특히 우려 오인으로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후티 공격을 철회하거나 최소한 연기하기로 결정했을 당시, 실제 공습 준비는 거의 마무리 단계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관계자 2명에 따르면 미군 지휘관들은 이미 공격 대상 목록을 승인했고, 병력은 작전에 투입될 미군 전투기에 폭탄을 싣고 있었다. 사실상 공습 직전까지 갔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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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일 사우디아라비이 리야드의 국제공항 연료 저장고에서 후티 공격으로 연기가 치솟고 있다. [로이터] |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폭스뉴스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이란과의 더 큰 전쟁을 어떻게 끌고 갈지에 대해 자신이 “결정 단계”에 있다고 말했다. 후티 문제와 관련해서는 미국이 후티 측과 계속 소통하고 있으며, 후티가 현재까지는 미국과 싸우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고 해당 기자는 전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잇따른 입장 변화가 현재 그가 처한 딜레마를 보여준다고 전했다. 후티는 미국 함정을 공격하지는 않은 대신 사우디를 공격했다. 바로 이 점이 트럼프에게 난제가 되고 있다. 이란과의 전쟁에서 사우디의 협조를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사우디의 공습 지원 요청을 무시하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직접 공격을 당한 것도 아닌데 새 전선에 뛰어들기도 부담스러운 처지인 셈이다.
사우디 역시 지난 5월, 미국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자신들이 가진 지렛대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바 있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는 미군을 동원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민간 유조선을 호위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사우디가 영공과 자국 내 미군기지 사용을 거부하면서 이 계획은 사실상 무산됐다.
당국자들에 따르면 미국이 실제로 사우디의 후티전쟁에 가세할 경우, 사우디 지원을 받는 예멘 정부군의 새로운 지상공격과 맞물려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후티는 교전 과정에서 홍해의 핵심 길목인 바브엘만데브 해협 인근의 주요 지역까지 장악했다. 이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전쟁으로 이미 충격을 받고 있는 글로벌 에너지 시장을 더욱 흔들 수 있다는 우려를 키우고 있다.
중동에서 근무한 전·현직 미국 외교관과 군 지휘관들은 제한적인 미군 폭격만으로 후티가 협상에 나서거나 강경한 요구를 철회할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후티는 지난해에도 약 8주간 이어진 미군의 대규모 폭격을 버텨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습이 시작된 지 두달도 되지 않아 돌연 후티와 휴전에 합의했다고 밝혔으며 후티가 “더 이상 선박을 향해 공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우리는 그 약속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후 후티는 미국 함정을 공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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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티 지지자들이 지난 18일 예멘 사나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 |
최근 후티와 처음 본격적으로 충돌하자 무너져내린 예멘 정부군을 미군이 지원하는 방식이 실제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에도 의문을 제기되고 있다.
워싱턴 아랍걸프국가연구소의 그레고리 존슨 연구원은 미군의 공습 지원 대상인 예멘 지상군에 대해 “반(反)후티 연합은 사실상 예멘에서 후티가 아닌 세력들을 닥치는 대로 이어 붙인 프랑켄슈타인과 같다”고 평가하며 “예멘 내 각 세력은 자신들이 원하는 국가의 미래상이 크게 다르고, 어떤 경우에는 목표가 정반대”라며 “후티와 싸우는 것보다 서로 싸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과의 전쟁 이후 호르무즈 해협의 불안이 여전히 이어지는 상황에서 바브엘만데브 해협까지 흔들릴 경우 세계가 석유와 가스 수송로의 추가 차질에 직면할 수 있다고 당국자는 경고했다. 아울러 사우디에 미군이 가세하더라도 후티를 완전히 제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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