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도 기후변화 못 피했다”…올해 유독 ‘독해지는’ 이유[나우,어스]

프랑스 기록적 폭염에 포도 당도 높아져
알코올 도수 상한 13%→15% 이례적 완화
포도 수확도 역대 가장 이른 8월 초 시작
“10∼15년 뒤엔 이런 기후가 일상될 수도”


프랑스 생모르데포세에 위치한 토니코 인터카브(Tonyco Intercaves) 매장의 진열대에 프랑스산 와인 병들이 전시돼 있다.[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프랑스의 기록적인 폭염이 샴페인까지 ‘독하게’ 만들고 있다. 뜨겁고 건조한 날씨로 포도의 당도가 높아지면서 프랑스 당국이 올해 생산되는 샴페인의 알코올 도수를 최대 15%까지 허용하는 이례적인 조치에 나섰다. 기후변화가 포도 수확 시기뿐 아니라 수백년간 이어져 온 샴페인의 맛과 알코올 도수까지 바꾸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8일(현지시간) BBC에 따르면 프랑스 당국은 2026년산 샴페인에 한해 알코올 도수를 최대 15%까지 허용하기로 했다. 기존 샴페인의 알코올 도수 상한은 13%로, 이 기준이 완화된 것은 처음이다.

원인은 올여름 프랑스를 덮친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이다. 포도는 뜨겁고 건조한 환경에서 빠르게 익으면서 당도가 높아진다. 발효 과정에서 효모가 포도의 당분을 알코올로 바꾸기 때문에 당도가 높아질수록 완성된 와인의 알코올 도수도 올라간다.

AFP통신에 따르면 프랑스는 11일(현지시간) 파리를 비롯해 본토의 4분의 1 이상에 최고 수준의 폭염경보가 발령됐다. 프랑스 파리 에펠탑 인근 트로카데로 분수에서 시민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로이터]


다만 올해 생산되는 샴페인이 일제히 15%까지 독해지는 것은 아니다. 샴페인 업계 단체 코미테 샹파뉴는 이번 조치가 일부 생산자에게만 적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 2차 발효 이후 기존 13% 기준을 소폭 넘어서는 와인이 나올 가능성에 대비해 규제상 여유를 둔 성격이 강하다.

폭염은 수확 시기도 앞당겼다. 올해 샹파뉴 지역에서는 8월 초부터 포도 수확이 시작됐다. 역대 가장 이른 수확이다. 일반적으로 포도는 충분히 익을 때까지 기다려 수확하지만 올해는 고온으로 당도가 빠르게 높아지고 산도가 떨어지면서 생산자들이 예년보다 서둘러 포도를 따야 했다.

기후변화가 샴페인 생산 방식을 구조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샹파뉴 지역 생산자인 스테판 비뇽은 “지중해성 기후가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올해를 새로운 변화의 시작으로 평가했다. 막심 투바르 코미테 샹파뉴 공동회장도 올해와 같은 이례적인 수확 환경이 “10∼15년 뒤에는 일반적인 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소비자들의 취향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와인 시장에서는 건강 등을 이유로 알코올 도수가 낮은 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기후변화로 포도의 당도가 높아져 생산되는 술은 점점 독해지는 반면 소비자는 오히려 덜 독한 술을 찾는 엇박자가 생긴 셈이다.

생산자들은 여러 해에 수확한 와인을 섞는 샴페인 특유의 블렌딩 방식으로 알코올 도수를 조절할 수 있다. 예컨대 알코올 도수가 높은 올해 와인에 이전 연도의 도수가 낮은 와인을 섞어 기존 샴페인의 맛과 균형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소비자가 실제 변화를 확인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샴페인은 최소 15개월간 숙성해야 하기 때문에 올해 수확한 포도로 만든 제품이 시중에 등장하는 것은 이르면 2028년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후변화는 이미 프랑스 와인 지도를 흔들고 있다. 지난 50년간 프랑스의 포도 수확 시기는 평균 21일가량 빨라졌다. 반대로 과거에는 고품질 스파클링 와인 생산에 적합하지 않았던 영국 남부는 기온이 상승하면서 새로운 생산지로 떠오르고 있다. 프랑스 샴페인 업체들이 영국에 포도밭을 확보하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의 15% 허용은 2026년산에만 적용되는 예외 조치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폭염과 가뭄이 반복되면 이런 예외가 더 이상 예외로 남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백년간 서늘한 기후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샴페인의 공식 자체가 기후변화에 맞춰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