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변방연극제 초청작 ‘영원한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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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변방연극제 초청작 ‘영원한 노동’을 만든 다원 예술 콜렉티브 올타의 장치 연출·메구닌자 작가 [서울변방연극제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인류는 식민주의를 반성할 수 있을까.” (‘영원한 노동’ 중)
객석 앞 무대를 가득 메운 T자형 구조물. 기울어진 경사면 끝으로 대형 시소를 연상케 하는 위태로운 구조물이 자리한다. 실험적 조형물 같은 소도구, ‘투쟁’이라는 한글과 한자가 병기된 포스터가 곳곳을 채운 무대 너머 스크린으로 알 수 없는 숫자가 흘러간다. 3XXX년…. 인류가 처음 석탄을 채굴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흘러간 시간을 헤아리는 숫자다. 암전 뒤에도 숫자는 멈추지 않고 초 단위를 바꾼다. 문명이 흘려보낸 ‘착취의 시간’이다.
한글과 일본어 자막으로 연극은 시작된다. ‘일본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 반도를 지배한다’며 질곡의 역사가 적힌다. 그 뒤로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여성이 올라선다. 오래된 기억 하나를 캐올리는 여자. 일본의 한 탄광에서 남녀가 상반신을 벗은 채 2인 1조로 석탄을 캐던 이야기다. 두 사람은 부부가 아닌 오로지 노동을 위해 짝을 이룬 파트너였다. 석탄을 캐내기 위해 서로의 육체에 의지해야 했던 공간. 여성의 몸은 노동의 주체인 동시에 타인의 시선과 욕망이 침범하는 표적이 됐다. 탄광촌 아이들은 여자의 벗은 몸을 조롱하며 낙서를 휘갈겼다.
”난 그 낙서로 몸에 문신을 새겼어요. 남성들의 성적 접촉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방패가 될 수 있다고도 생각했어요.“
한 사람의 몸 위로 노동과 성(性), 생존과 폭력이 뒤엉킨다. 지하 탄광의 기억에서 출발한 무대는 일본 제국주의의 은폐된 기억과 오늘날 사회의 완강한 침묵에 질문을 던진다. 매끄러운 일상 아래 묻힌 역사를 탐구해 온 일본의 다원 예술 콜렉티브 올타(OLTA)의 ‘영원한 노동(Eternal Labo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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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변방연극제 초청작 ‘영원한 노동’ [서울변방연극제 제공] |
서울변방연극제의 폐막작으로 무대에 오른 ‘영원한 노동’(20일까지, 서강대 메리홀)의 연출을 맡은 장치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사회적 구조, 지금의 우리를 떠받치는 하부구조에 착안해 그것을 무대언어로 전환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무사시노미술대학 동기들이 모인 올타(2009년 창단) 멤버들의 구성이 흥미롭다. 애초엔 시각예술을 전공한 11명의 아티스트 그룹으로 출발해, 현재는 5인의 공동 창작체가 됐다. 시각예술로 출발해 그들이 탐구해 온 이야기와 메시지를 심층적으로 담아내는 다원예술로 확장했다.
‘영원한 노동’의 씨앗이 뿌려진 건 2021년이었다. 장치 연출가는 “몇 년 전부터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교류를 이어오는 과정에서 싹튼 작업”이라며 “2021년 팬데믹 시기에 ‘생자의 나라(生者の国, Land of the Living)’라는 작품을 만들었는데, 당시 규슈와 일본 전역의 탄광 및 광산을 현장답사 했다”고 설명했다.
올타는 일찌감치 한일 양국의 역사과 관계성을 들여다보는 작품을 이어왔다. 올타의 경우 2014년 서울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와 전작 ‘일본 이데올로기’를 거치며 일상에 잔존하는 군국주의 이데올로기를 추적하며 리서치하는 과정에서 양국의 어두운 역사와 마주했다.
올타에서 작가와 배우로 활동하는 메구닌자는 “일본에서 일상에 머물다 보면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를 의식하며 살아가기가 대단히 어렵다”며 “공교육에서도 자세히 가르치지 않고, 민간에서도 과거의 역사를 언급하길 꺼리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의 시선은 역사의 한복판으로 직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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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변방연극제 초청작 ‘영원한 노동’을 만든 다원 예술 콜렉티브 올타의 장치 연출·메구닌자 작가 [서울변방연극제 제공] |
”과거 도쿄 스미다구를 조사할 때,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벌어진 조선인 학살 사건을 다룬 적이 있어요. 그런데 지역 주민들이 그 사실 자체를 입 밖으로 내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왜 사람들은 역사를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가, 왜 은폐하려 하는가”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 침묵의 원인을 찾고 답을 구하고자 창작으로 이어가게 됐어요.” (메구닌자 작가)
특히 장치 연출은 재일교포 3세인 아버지와 4세인 어머니를 둔 도쿄 출신 일본인이고, 다른 네 메버는 모두 관동 지역 출신이라는 점이 올타의 작업 방향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장치 연출가는 “간토 지역 출신이었기에 그 역사가 피부로 더 가깝게 와닿았던 면이 있다. 만약 간사이 등 다른 지역 출신이었다면 조금 더 멀게 느꼈을지도 모른다”라고 성찰했다.
‘영원한 노동’은 1920년대 일제강점기 시대 규수의 탄광에서 출발하나 탄광의 이야기만을 담진 않는다. 일본 열도에서 쓰시마 해협, 한반도까지 이어지는 리서치를 바탕으로 일본 제국 시대의 지배와 오늘날 사회의 연결된 맥락을 짚는다. 경제 발전 이면에서 벌어진 노동과 착취를 현대 여성의 몸과 겹쳐둔다.
작품에선 특정 지명을 지우고 익명성을 부여한다. 메구닌자 작가는 “어떤 특정한 장소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지금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문제로 받아들여지길 바랐다”고 말했다.
올타가 탄광을 파고든 것은 전작의 연장선이다. 2021년 ‘생자의 나라’를 제작하며 일본 전역의 광산을 조사하던 중, 이바라키현 히타치 광산 유적에서 조선인과 중국인 노동자들의 합장묘를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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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변방연극제 초청작 ‘영원한 노동’ [서울변방연극제 제공] |
장치 연출가는 “사고로 목숨을 잃은 강제동원 노동자들의 묘를 현장에서 직접 마주했을 때, 한일 관계 속 노동과 자원의 문제를 온몸으로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때의 경험은 식민지 조선 대구에서 태어나 패전 후 일본으로 인양된 작가 모리사키 가즈에의 르포르타주 ‘암흑’으로 창작진을 이끌었다. 탄광 갱부 출신 화가 야마모토 사쿠베의 기록화와 한나 아렌트, 버나드 맨더빌의 텍스트를 무대의 뼈대로 삼은 것 역시 두 사람이다.
장치 연출은 “모리사키 가즈에는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 종전 뒤 조선에 대한 깊은 죄의식을 품고 책을 썼다”라며 “식민 지배와의 관계성이라는 측면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저작이었다”고 봤다.
다만 올타는 ‘과거의 고통’을 무대 위로 안이하게 불러오지도, 탄광 노동을 사실적으로 재현하지도 않는다. 그는 “우리는 탄광에서 일했던 당사자가 아니다”라며 “그때 노동자들이 겪었던 괴로움과 고통을 우리가 흉내 내거나 대신 표현할 수는 없다”고 조용히 말했다. 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무리하게 등치 하는 함정도 경계했다.
“중요한 것은 노동이라는 구조가 인간에게 무엇을 강요해왔는가, 우리 세대가 점차 지워져 가는 역사를 어떻게 대면해야 하는가라고 생각했어요.” (메구닌자 작가)
무대가 ‘재현’ 대신 ‘불안정’을 택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배우들이 발을 디딘 가파른 경사면은 탄광 리서치 과정에서 확인한 피난 훈련용 모의 갱도의 각도에서 따왔다. 시소처럼 요동치는 바닥 위에서 배우들은 끊임없이 서로 무게를 나누며 균형을 잡아야만 바닥으로 미끄러져 떨어지지 않는다. 역사의 무게와 질문이 배우의 신체에 실제 물리적 하중으로 얹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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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변방연극제 초청작 ‘영원한 노동’ [서울변방연극제 제공] |
장치 연출은 “무대의 콘셉트는 ‘지면이 흔들리고 있다, 바닥을 흔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며 “사회적·정치적 모순과 맞닥뜨렸을 때 인간의 신체에 드리우는 긴장과 부담을 가시화하고 싶었다”고 했다. 허공에 매달린 인형뽑기 기계 ‘UFO 캐처’ 역시 마찬가지다. “낚아채려 하지만 끝내 손에 쥐어지지 않는 부조리한 게임”을 통해 자본주의 시스템 속 결핍과 노동의 모순을 비꼰다.
시공간은 매끄럽게 흐르지 않고 거칠게 충돌한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이 암흑 속에 멈춰 서는 순간 무대는 바다 건너 도쿄 메트로와 이어지고, 유튜브 채널 ‘영원한 노동’을 둘러싼 인플루언서 커플과 시위 현장의 소음이 교차한다. 2011년 2월 11일 일본 건국기념의 날에 태어난 일본인 소녀와, 같은 해 3월 1일 삼일절에 태어난 한국인 소녀의 엇갈린 삶도 한 공간에 겹친다. 국가의 기념일이 개인의 생일과 맞물리는 묘한 어긋남이다. 18세기 버나드 맨더빌의 꿀벌 우화와 에코 페미니즘적 시선이 더해지며 자연과 여성에게 전가된 무보수 노동의 침묵을 들춘다.
작품을 관통하는 가장 내밀한 축은 ‘여성의 몸’이다. “여성과 노동을 사유한다는 것은 곧 여성의 몸을 들여다보는 일”이라는 메구닌자 작가의 문제의식은 한국 철도 노동자들과의 인터뷰에서 한층 구체화했다.
“남성 중심으로 구축된 철도 현장이라 여성 화장실이 없어 물조차 참아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현장의 무거운 장비들 역시 애초에 남성의 체격과 근력에 맞춰져 있습니다. 여성들은 그 환경에 자기 몸을 억지로 갈아 넣으며 버텨내야 하죠. 여기에 임신과 출산으로 끊어지는 경력의 불연속성까지 겹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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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변방연극제 초청작 ‘영원한 노동’을 만든 다원 예술 콜렉티브 올타의 장치 연출·메구닌자 작가 [서울변방연극제 제공] |
과거 탄광에서 서로의 맨몸에 기대어 석탄을 캐던 여성과, 현대의 남성 중심 규격에 몸을 욱여넣어야 하는 여성의 현실이 한 무대 위에서 교차하는 순간이다. 메구닌자 작가는 ‘노동의 환경’은 ‘누구의 몸’을 기준으로 설계됐느냐는 질문으로 향한다.
100여 년 전 어두운 막장에 갇혔던 이들은 지금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존재’로 확장된다. 메구닌자 작가는 질문의 시선을 극장 바깥으로 돌렸다. 그는 “사실 티켓을 사서 극장으로 찾아오는 여유를 가진 관객은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 진짜 보이지 않는 존재들은 극장 바깥에 있다”라며 “극장에 와본 적도 없고 올 여유조차 없이, 당장 오늘 하루의 생계를 지켜내기 위해 온 힘을 쏟아야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지금 사회에서 철저히 지워진 이들”이라고 말했다.
2025년 국제예술제 ‘아이치 트리엔날레’ 초연 당시 이 작품은 일본 최고 권위의 ‘기시다 쿠니오 희곡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관동대지진에서 규슈 탄광과 쓰시마 해협, 한반도로 이어지는 공간 축을 따라 자원과 노동의 이동을 추적하는 시선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초연 이후 관객과 평단은 “어렵다”는 반응을 내놓기도 한다.
메구닌자 작가는 “일본 군국주의나 식민지 문제를 다룬 공연에 대해 관객들은 흔히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내용이 진짜 어려워서가 아니라 불편한 문제라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회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균열을 낸 채 객석을 흔드는 것이 지금까지 올타의 방식이다. 장치 연출가는 “노동이 세상에 공헌하는 수단이라는 통념이 있지만, 그 노동이 지금 나 자신과 인간에게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근본부터 다시 묻고 싶다”라며 화두를 던졌다. 메구닌자 작가 역시 “관객들이 세상의 일그러짐을 보며 자기의 실존으로 되돌아가길 바란다”라고 소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