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역사상 최장기 집권 단독 1위 저력
나른한 중저음·날렵한 래핑 ‘레이지 쿨’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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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니의 일본 공연 모습. [온라인 커뮤니티]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제니가 그룹 방탄소년단(BTS)마저 넘어서며 이젠 명실상부 K-팝 최강자로 군림했다. 글로벌 팬덤의 ‘일시적’ 구매 화력으로 여겨지던 K-팝의 한계를 깨부수고, 미국 팝 음악의 심장부에서 16주간 승승장구하고 있다.
17일 미국 빌보드가 발표한 최신 차트에 따르면, 제니와 테임 임팔라가 협업한 ‘드라큘라(Dracula)’ 리믹스가 ‘핫 100’ 차트 6위를 기록하며 통산 16주째 최상위권을 수성했다.
2021년 방탄소년단이 메가 히트곡 ‘버터(Butter)’로 세운 15주 연속 톱 10 기록을 갈아치우며, K-팝 역사상 가장 오랜 시간 미국의 일상을 점령한 단독 1위 아티스트로 올라선 것이다.
역대 빌보드 ‘핫 100’ 톱 10은 소수의 글로벌 슈퍼스타를 중심으로 진입 장벽이 공고히 다져진 곳이었다.
2012년 싸이(PSY)가 ‘강남스타일(Gangnam Style)’로 12주간 톱 10(최고 2위)을 지키다 이후 방탄소년단이 ‘다이너마이트(Dynamite)’(13주), ‘버터(Butter)’(15주) 등으로 한국 대중음악의 영토를 넓혔다. 2024년 말 블랙핑크 로제가 브루노 마스와 함께 부른 ‘아파트(APT.)’도 13주간 머물며 여성 솔로 신기록을 썼다. 이번엔 제니가 ‘드라큘라’로 역대 최다인 전인미답의 수치로 주류 차트 체류사를 다시 썼다.
사실 이 곡은 테임 임팔라의 솔로곡의 리믹스 버전이다. 앞서 이 곡이 세상에 나왔을 당시 지금과 같은 성취를 거두진 않았다. 제니와의 협업을 통해 틱톡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되며 스포티파이, 빌보드까지 장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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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니. [OA엔터테인먼트] |
전례 없는 대기록의 일등 공신은 단연 제니만이 낼 수 있는 독보적인 ‘사운드의 결’에 있다. 제니는 K-팝사에서도 독특한 보컬리스트이자 래퍼다.
국내 대형기획사 A&R(아티스트&음반 기획·제작) 담당자는 “기존 K-팝이 고음의 폭발력이나 꽉 짜인 가창 도식에 매달릴 때, 제니는 숨소리를 머금은 관능적인 중저음 톤으로 정면 승부를 건다”며 “귀에 착 감기는 특유의 나른하고 세련된 ‘레이지 쿨(Lazy-cool)’ 무드는 북미 팝 리스너들이 가장 열광하는 얼터너티브 알앤비(R&B) 특유의 질감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제니의 보컬과 래핑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해체하는 감각은 단연 발군이다. 멜로디를 능수능란하게 타다가도 음절 끝을 날렵하게 밀어내는 래핑으로 전환할 때 인위적인 이음매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혀끝에서 또렷하게 튕겨 나가는 영어 딕션과 리듬을 밀고 당기는 유연한 싱코페이션(당김음)은 케빈 파커가 짠 몽환적인 신시사이저와 질주하는 베이스 라인 위에서 독보적인 탄성을 발휘한다.
이번 협업에서 제니는 단지 ‘피처링’으로만 함께 하지 않았다. 제니의 작가주의적 기획력도 빛났다. 제니는 인트로부터 프리코러스, 브릿지까지 직접 멜로디와 가사를 썼다.
특히 “런 프롬 더 선라이트, 드라큘라(Run from the sunlight, Dracula·햇빛을 피해 도망쳐, 드라큘라)”라는 치명적인 한 줄은 틱톡과 인스타그램 릴스를 타고 전 세계를 홀린 밈(Meme)이 됐다. 인디 신의 ‘마니아용 트랙’이 제니의 손을 거쳐 클럽 문화의 ‘시그니처 트랙’으로 완벽히 재탄생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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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그룹 블랙핑크. 제니 인스타그램 갈무리. |
‘드라큘라’의 흥행 공식 역시 기존 K-팝의 전형적 소비 패턴과는 완전히 다르다. 발매 첫 주 팬덤이 음원과 음반을 쓸어 담아 차트 1위에 올렸다가 2~3주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던 ‘프론트 로딩’은 없었다.
숏폼 챌린지에서 불붙은 인기가 스포티파이와 애플뮤직의 대중적 청취로 직결됐고,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미국 지상파 라디오 프로그래머들이 이 곡을 자발적으로 정규 로테이션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미국 내 주간 오디오 스트리밍 1200만 회 이상과 2300만 명이 넘는 라디오 청취자 수를 넉 달 넘게 꾸준히 유지했다는 사실은, 이 곡이 일부 팬덤의 재생 목록을 넘어 미국인들의 출퇴근길 차 안과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진짜 대중가요’로 뿌리내렸다는 증거다.
여기에 블랙핑크 멤버 전원의 독자 행보도 거대한 시너지를 내고 있다. 브루노 마스와 손잡고 빌보드 ‘핫100’ 3위에 오른 로제, ‘빌보드 200’ 7위에 오른 리사, 원디렉션 출신 제인(ZAYN)과 차트인(Chart-in)한 지수까지 4인 전원이 빌보드 양대 차트를 뚫었다.
현재 제니를 필두로 한 멤버들은 현재 동시 컴백으로 각자의 음악적 지향점을 선명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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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사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 제공] |
제니는 지난 7월 선공개 싱글(Single) ‘레스 댄 어 러버(Less than a Lover)’에 이어 8월 EP ‘폴른 에인절(Fallen Angel)’을 통해 로우파이(Lo-fi)한 소프트 록 사운드를 선보이며 싱어송라이이자 창작자로서의 역량을 각인시켰다.
제니의 화력은 지난 4일 나란히 신곡을 낸 리사와 지수로 이어졌다. 다음 달 23일 EP(미니앨범) ‘프레스 플레이(PRESS PLAY)’ 발표를 앞둔 리사는 선공개 싱글 ‘사와디카(SaWaDiKa)’로 공개 이틀 만에 유튜브 조회수 1억 회를 돌파하고 스포티파이 글로벌 일간 13위에 오르며 ‘월드 클래스 퍼포머’다운 파괴력을 보여줬다. 첫 솔로 정규 앨범을 준비 중인 지수는 선공개 싱글 ‘클릭(CLICK)’을 통해 순차적 서사를 구축하는 유기적 스토리텔링에 공을 들이고 있다.
글로벌 음원 시장의 정점에 섰던 로제도 가세한다. 로제는 오는 18일 애플의 ‘샷 온 아이폰(Shot on iPhone)’ 캠페인과 협업한 새 싱글 ‘뉴 트릭(new trick)’ 발표를 확정, 팝 펑크 에너지를 다시 한번 예고했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블랙핑크는 멤버들이 솔로 활동과 그룹 활동이 주고받는 시너지가 상당하다”며 “이들의 솔로 활동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각자 서구 주류 팝스타로 몸집을 불린 뒤 블랙핑크의 가치를 성층권으로 쏘아 올리는 강력한 ‘구심력’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