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일의 징검다리”…취업 시장 키우는 ‘예술 일자리 박람회’

‘예술로 일하다’ 취업·창작·협업 한자리에
문화예술 성장 속 참가사·방문자 수 증가
김장호 예경 대표 “예술산업 성장 기반 마련”


10일 서울 종로구 홍익대학교 대학로아트센터에서 열린 ‘2026 예술 일자리 박람회’에서 참석자들이 취업 상담을 받고 있다. [윤창빈 기자]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예약 조기 마감과 현장 좌석 눈치 게임, 입장 대기까지….

유명 공연을 방불케 하는 이 풍경은 다름 아닌 ‘2026 예술 일자리 박람회’ 현장의 모습이었다. 지난 9~10일 서울 종로구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열린 박람회는 예술 산업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들의 발걸음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흔히들 ‘일자리를 찾는다’고 하면 기업에 취업하는 것을 먼저 떠올리지만, 문화예술계에서는 답이 훨씬 다양하다. 누군가는 문화예술 기업이나 기관에 입사해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하고, 누군가는 창작자로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만들어 창업하는 것도, 다른 기업·기관과 협업해 새로운 일거리를 만드는 것도 포함된다.

지난 2018년 시작된 이래 올해로 7회를 맞은 ‘예술 일자리 박람회’는 ‘예술로 일하다’라는 주제 아래 이처럼 다채로운 커리어 경로를 탐색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취업은 물론 창작 활동, 협업, 창업까지 서로 다른 모습의 ‘예술로 일하는 방식’을 한 공간에 펼쳐놨다.

박람회장 한쪽에서는 문화예술 기업·기관의 채용 상담이 이뤄지고, 다른 편에서는 예술인과 기업이 새로운 협업 기회를 모색했다. 현직자와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자기소개서 작성 관련 조언을 받는 방문자도 있었다. 예술 활동을 이어가고 싶은 방문자는 오디션을 통해 새로운 작품에 참여할 기회를 찾고, 창업을 꿈꾸는 이들은 가능성을 살폈다.

서로 다른 일을 찾는 사람들은 각자의 상황에 맞게 박람회 부스를 찾아다니며 여러 정보를 얻었다. 아직 진로를 구체적으로 정하지 못한 경우 커리어 상담과 현직자 커피챗, 특강 등을 오가며 자신에게 맞는 방향을 탐색했다.

박람회를 주관한 예술경영지원센터의 김장호 대표는 “예전에는 기업에 들어가 근무하는 것을 일자리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개인 사업이나 프로젝트 활동 등 일의 형태가 굉장히 다양해졌다”며 “특히 예술 분야는 이런 형태가 적합한 영역”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단순히 기업 취업뿐 아니라 커리어 개발, 창업, 예술 프로젝트 협업, 인턴 사업에 이르기까지 일자리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박람회에서 얻고 갈 수 있게 해 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방문자들은 한자리에서 다양한 예술 커리어 선택지를 알아볼 수 있다는 데 만족감을 표했다.

올해 처음 박람회를 찾은 여다은(27) 씨는 “미술을 전공한 후 진로를 확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보를 알아보고 싶어서 왔다.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돼서 이틀 연속 오게 됐다”며 “사회 초년생으로서 현업에 있는 예술인들의 활동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특강에서는 한 직업에 머물지 않고 내가 어떤 활동을 하느냐에 따라 분야를 넓힐 수 있다는 점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예술 전공에만 몰두하다 보면 실무나 취업에 대한 현실적 여건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 상담을 하면서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 알게 됐다”며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시야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10일 서울 종로구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열린 ‘2026 예술 일자리 박람회’에서 참석자들이 전문가 특강을 듣고 있다. [윤창빈 기자]


취업부터 협업·창업까지…‘예술 일자리’의 확장


올해 박람회는 예술경영지원센터(이하 예경)의 입직·취업과 예술인복지재단(이하 예복)의 예술 활동·일거리를 하나의 박람회 안에서 연결해 ‘예술 일자리’의 범위를 확장했다. ‘예술 산업에 어떻게 들어갈 것인가’라는 질문뿐 아니라 ‘예술로 어떻게 계속 일할 것인가’까지 다루는 구조다.

김 대표가 2024년 8월 취임한 후 처음 접한 박람회는 예경이 단독으로 주관하다 보니 소개할 수 있는 일자리가 한정적이었다. 그는 일자리 문제가 예술의 산업적 영역과 떼어놓기 어렵다는 점에 주목했고, 관계 기관들이 하는 일을 함께 묶으면 판을 더 크게 키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지난해에는 예복과 손을 잡고 코엑스 E홀로 무대를 넓혔고, 올해는 더 넓고 쾌적한 홍대 아트센터로 자리를 옮겼다.

참가사 규모도 커졌다. 올해 예경 측 참여 기업·기관은 36곳이며, 예복 측 참가사까지 더하면 총 64개나 된다. 이는 지난해(참여 기업 46개)보다 39% 늘어난 수준이다.

박람회가 실질적 채용 가능성을 높이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신경을 쓰기도 했다. 예경 측 참여 기업·기관 중 20곳은 실제 채용 계획을 갖고 박람회에 참여했다. 공정 채용 문제로 현장에서 곧바로 채용하기는 어렵지만, 박람회 이후 별도의 면접을 거쳐 취업하는 사례도 생겼다. 예경은 올해는 더 많은 기업과 예술인의 매칭을 지원하는 한편, 박람회 후에도 신경을 쓸 계획이다.

김 대표는 “올해는 매칭 성사를 유도하기 위해서 10개 기업 및 기관에 매칭 성사 지원금을 제공할 예정”이라며 “실제로 몇몇 기업에서는 이번에 만난 사람들을 대상으로 추가적인 면접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장호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가 10일 서울 종로구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창빈 기자]


문화예술 시장 확대…구직·구인 수요 증가


예술 분야의 일자리 구직 및 구인 수요는 꾸준하다. 지난해 박람회에 1900여 명이 방문한 데 이어 올해는 2000명가량으로 방문자가 늘어났다.

예경이 운영하는 문화예술 일자리 플랫폼 ‘아트모아’에도 지난해 약 3400건의 채용 공고가 등록됐다. 김 대표는 “채용을 원하는 기업이나 단체가 누구나 공고를 올릴 수 있는데, 공고 수가 매년 5~6%씩 증가해 왔다”며 “올해는 8월 말까지 약 3200개가 올라와 연간 기준 4000대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8월 고용 동향에 따르면, 예술·스포츠업 분야의 고용이 전년 동월 대비 13.3% 증가해 전 업종 중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났다. 공연 시장 규모는 2024년 1조5000억원에서 2025년 1조7000억원으로 커지고, 올해 상반기에도 7~8% 증가했다. 미술 시장의 경우 2022년 정점을 찍은 후 하락했다가 올해 다소 회복 조짐을 보인다.

김 대표는 “분야마다 차이는 있지만 시장 자체가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시장이 커진다는 것은 플레이어가 많아진다는 의미”라며 “기업이 하나 더 생기면 사람도 더 채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구직자뿐 아니라 기업과 기관 입장에서도 박람회는 유용한 기회가 될 수 있다. 기관 홍보와 더불어 예술계 구직자들이 어떤 회사와 직무에 관심을 갖는지 직접 확인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조아 화성시문화관광재단 경영지원팀 대리는 “재단을 소개하고 취업을 희망하는 분들의 궁금증을 현장에서 알려드리고자 참여하게 됐다”며 “채용을 바꿔야 할 부분이 있는지 알아보고 싶기도 했다”고 말했다.

화성시문화관광재단은 현장에서 30분 단위로 하루 14명씩 상담 예약을 받았는데, 현장에서 신청한 사람도 많아 실제 상담 인원은 더 많았다. 그는 “채용을 진행하면 원하는 방향과 안 맞는 지원자가 오기도 하는데, 박람회에 와 보니 실제로 어떤 업무를 하는지 잘 모르는 분들도 있었다”면서 “채용 공고를 더 구체적으로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10일 서울 종로구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열린 ‘2026 예술 일자리 박람회’에서 참석자들이 예술 현직자 일자리 커피챗을 하고 있다. [윤창빈 기자‘


예술경영지원센터, 작품 유통·기술 융합·성장 지원


김 대표가 바라보는 예경의 역할 역시 이번 박람회의 방향과 맞닿아 있다. 예술가의 창작을 직접 지원하는 것을 넘어 이미 만들어진 좋은 작품과 예술인의 활동이 시장에서 유통되고, 사업화되고, 다시 새로운 창작으로 이어지도록 정책·금융·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역할이다.

그는 “예술 분야는 돈과 결부시키는 것을 다소 금기시하는 시선이 있지만, 경제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는 없다”며 “작품이 한 번 만들어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고, 해외로 진출해 수익을 만들고, 그 수익이 다시 창작에 들어갈 수 있도록 중간 단계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예경은 작품 유통과 해외 진출, 예술과 기술의 융합, 예술 기업의 성장 지원 등을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공연의 경우 국내에서 검증된 작품이 해외 주요 공연예술 마켓과 축제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만날 수 있도록 연결하고 있다. 올해 아비뇽 축제에서는 ‘코리아 스페셜’ 프로그램을 통해 9개 작품을 선보였다. 시각예술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아트페어 프리즈와의 협력 관계를 지속하는 한편, 아트바젤과도 협력해 한국 작가의 해외 진출을 돕고 있다. 오는 10월에는 미국 브로드웨이 뮤지컬 마켓에 한국의 뮤지컬을 출품시킬 계획이다.

예술과 기술의 융합 역시 주요 과제로 삼고 있다. 2023년 문을 연 아트코리아랩을 중심으로 예술가가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기술을 창작과 사업에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과 기술 자문 등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올해부터 금융 지원에도 본격적으로 나섰다. 영세한 예술 기업이 기존 금융시장의 높은 문턱 때문에 성장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예술산업 융자·예술산업 보증 등을 시행하고 있다. 단순히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예술 기업이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다.

김장호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가 10일 서울 종로구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창빈 기자]


내년 ‘문화예술 청년 인턴십’…“예경, 징검다리 될 것”


내년부터 추진되는 ‘문화예술 청년 인턴십’은 박람회와 더불어 실제 일자리로의 연결고리를 한층 강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청년 352명을 문화예술 기관 및 단체에 매칭시켜 현장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지금까지는 스펙을 쌓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알아보러 박람회에 왔다면, 이제는 인턴십을 통해 사전 탐색을 한 후 졸업하면 바로 원하는 곳에 가는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며 “일을 경험하고, 채용 시 필요한 스펙을 쌓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람회든, 인턴십이든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일자리가 만들어지려면 결국 예술 시장 전체가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김 대표는 “예술 작품과 예술인의 활동이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고 산업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는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