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억명 인구 중 1500만명 K-팝 소비
K-팝 360도 아티스트 엄청난 강점
“젠지만 봐선 안 돼, 현지화는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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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자 싱 구즈랄 티시리즈 부사장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인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해외 가수요?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BLACKPINK)죠. 하지만….”
‘집집마다 뮤지션이 한 명씩 존재한다’는 거대 대륙. 이 미지의 땅으로 K-팝의 영토 확장이 시작되고 있다. 인도 최대 엔터테인먼트 기업 티시리즈(T-Series)의 푸자 싱 구즈랄 부사장은 이에 대해 “잘하고 있지만, (인도에선)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지난 몇 년 사이 K-팝 시장에 인도는 새로운 먹거리가 됐다. 인도 출신 K-팝 그룹 멤버(블랙스완 스리야)가 등장하고, K-팝 시스템을 통해 인도에서 아이돌 육성(하이브 인디아)을 시작했다. 한미 합작 걸그룹에도 인도계 멤버(캣츠아이)가 속해있다.
최근 한국콘텐츠진흥원 ‘뮤콘’ 행사 참여차 한국을 찾은 푸자 싱 구즈랄 부사장은 헤럴드경제와 만나 “인도에서 K-팝, K-콘텐츠를 소비하는 인구는 1500만 명가량이지만, 인도는 인구나 14억 명 대륙”이라고 짚었다. K-팝을 즐기는 층이 상당수 존재하나, 전체 시장 규모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수치라는 것. K-팝이 아직 인도 안으로 깊이 침투하지도, 널리 알려지지도 못했다는 진단이다.
인도는 급변하는 시장이다. 발리우드(Bollywood) 영화와 음악 부문 크리에이티브 개발 및 콘텐츠 제작을 총괄하며 18년 넘게 인도 미디어 산업의 최전선을 지켜온 구즈랄 부사장은 “지난 몇 년 새 인도 음악 시장은 거대한 구조적 지각변동을 맞고 있다”고 짚었다.
과거 라디오, 텔레비전, 빌보드, 인쇄매체 등 전통적 채널에 갇혀 있던 시장은 모바일 인프라의 확산과 디지털 스트리밍 플랫폼이 정착되며 소비층의 규모와 취향 면에서 비약적인 분화가 이뤄지고 있다. 현재 인도 인구의 96%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80%가 매일 최소 1시간 이상 음악을 소비할 정도로 모바일 침투율이 높다.
구즈랄 부사장은 “20년 전 전과 비교하면 음악의 도달 범위와 침투력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과거에는 물리적인 한계로 전 세계 몇몇 지역에만 전달되던 음악이 이제는 지구 반대편의 단 한 사람에게도 실시간으로 닿는다”며 “시장이 커지고 소비자가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청중의 소비 방식 역시 고도화됐다”고 말했다.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은 인도 안에서도 ‘지역의 장벽’을 허물었다. 과거엔 힌디어 음악이 가장 널리 확산했지만, 현재는 지역 음악이 기술 발전의 흐름을 타고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구즈랄 부사장은 “인도에는 22개 언어가 있다. 힌두어를 제외하고 가장 파급력이 큰 언어는 펀자비(Punjabi·펀자브어)인데, 딜짓 도산즈와 같은 아티스트가 펀자비 음악으로 주류 시장을 흔들고 있다”며 “그 뒤를 타밀(Tamil·타밀어), 텔루구(Telugu·텔루구어)가 잇는다. 최근엔 하리아나어나 보즈푸리어 기반의 독립음악들이 스트리밍 바이럴 차트에서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티시리즈에 따르면 인도 음악 소비의 57%는 발리우드 음악에서 나온다. 나머지 43%는 인디 음악과 지역 음악, 타언어권 음악이다. 구즈랄 부사장은 “발리우드 음악은 여전히 독립음악보다 크지만, 동시에 전체의 상당 부분은 영화 밖에서 만들어지고 소비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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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영화 ‘바후발리2:더 컨클루전’ 포스터 |
현재의 인도 음악 시장에선 엄청난 인구만큼 다양한 음악이 존재한다. 소비자가 원하는 음악도 점점 세밀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공통 분모는 있다. 인도에서 소위 ‘주류’ 반열에 오른 음악은 노랫말의 정서와 상황의 맥락을 통해서 하는 교감이 좌우한다.
구즈랄 부사장은 “과거에는 음악을 크게 멜로디와 댄스로 나눠 생각했다면 지금은 하트브레이크(Heartbreak·이별), 로맨틱(Romantic·사랑), 셀러브레이션(Celebration·축하) 등 감정과 상황에 따라 음악이 세분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생일이나 결혼처럼 구체적인 상황에 맞는 음악까지 대중음악 시장에 나온다. 디지털이 음악의 유통 방식뿐 아니라 음악을 찾고 소비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놓았다는 것이다.
특히 노랫말이 갖는 힘은 상당하다. 구즈랄 부사장은 “가사의 의미가 매우 중요하다”며 “인도는 문화와 전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인 만큼 가사엔 사람과 문화를 존중하는 메시지가 담겨야 한다. 여성 비하나 문화적 가치를 훼손하는 내용은 용인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현지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르는 ‘이별 노래’다. 그는 “댄스곡은 한동안 인기를 끌다 소비주기가 빠르게 끝나 파티 때나 소환되지만, ‘이별 노래(Heartbreak songs)’는 몇 년이 흘러도 끊임없이 재생되며 차트를 지킨다”며 “가장 인기 있고 지속력이 강한 부동의 1위는 애절한 이별 노래이고, 2위는 멜로디 중심의 로맨틱한 사랑 노래”라고 했다.
히트곡이 되는 과정은 한국과 다르지 않다. 구즈랄 부사장은 “정해진 공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다만 정교한 마케팅 전략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재발견’과 우연이 만들어낸 ‘트렌드’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분석이다.
“하룻밤 사이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 곡이 있는가 하면, 3~4년 전 발매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던 곡이 뒤늦게 붐을 일으키기도 해요. 발리우드 배우 등 유명인들이 인스타그램 릴스나 유튜브 쇼츠의 배경음악으로 활용하면서 재유행하는 경우가 흔하죠. 결국 트렌드와 알고리즘, 우연과 운이라는 변수가 맞물려 작동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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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BTS 월드투어 ‘아리랑’ 모습. [빅히트뮤직 제공] |
이토록 복잡다단한 시장에서도 K-팝은 선택받은 장르다. K-팝은 인도 대중이 매력적이라고 볼 만한 요소를 갖췄기 때문이다.
구즈랄 부사장은 K-팝의 가장 큰 강점으로 아티스트의 면면을 꼽았다. 그는 ”K-팝 아티스트는 360도 아티스트”라며 “패션, 외모, 춤, 창의성, 재능까지 모두 이야기할 수 있는 360도 아티스트라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우리식 표현으로 치면 ‘육각형 아티스트’, ‘멀티테이너’의 또 다른 표현이다.
“인도엔 노래를 잘하는 가수, 외모가 뛰어난 가수, 춤을 잘 추는 가수는 많아요. 하지만 이 모든 요소를 한 사람에게 결합한 아티스트는 상대적으로 드물죠. 특히 인도 뮤직비디오 가운데는 이야기 중심의 작품이 많아 연기력까지 요구되는 경우가 많은데 노래와 퍼포먼스, 패션, 비주얼, 연기와 창의성 등을 하나의 스타에게 집약시키는 K-팝 아티스트는 경쟁력이 있어요.”
패션 역시 엄청난 기회다. K-팝 그룹 멤버들의 상당수는 글로벌 하이엔드 브랜드의 앰배서더로 활동하고 있고, 공항 패션 사복 패션이 시시각각 SNS에 노출된다. 구즈랄 부사장은 “인도는 패션에 굶주린 나라”라며 “K-팝 아티스트의 패션과 스타일도 인도 소비자에게 강하게 어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르로서의 강점은 ‘새로운 사운드’에 있다. 인도 음악과는 다른 ‘K-팝의 새로운 사운드’가 인도의 다양한 음악과 결합하면 또 다른 가능성이 생길 수 있어서다.
하지만 현재 K-팝이 넘어야 할 가장 큰 벽은 K-팝 자신이다. 구즈랄 부사장은 K-팝은 현재도 ‘공급 과잉’ 상태라고 꼬집는다. 그는 “BTS와 블랙핑크가 처음 인도에 소개됐을 때 이들은 완전히 새로운 존재였다”며 “하지만 지금은 한국 콘텐츠가 너무 많아졌다. 화장품 매장의 선크림 브랜드가 세 개라면 고르기 쉽지만, 200개라면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한국 음악이 다섯 곡 들어오던 때와 500곡이 들어오는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어요. 인도인에겐 자신이 듣고 자라온 고유의 음악이 내 핏속에 남아있어요. 새로운 음악이 새롭다는 이유로 오래 남지는 않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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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핑크 도쿄돔 콘서트. [연합] |
‘꿈의 숫자’와도 같은 14억7000만 명의 인구 대국이라는 강력한 무기는 인도 시장에 대한 갖은 선입견을 만든다. 구즈랄 부사장은 한국 유수 엔터테인먼트사들이 인식하는 인도 시장의 ‘세대적’, ‘지리적’ 편향성을 꼬집는다.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흔히 하는 착각이 바로 인도에서 음악을 듣는 사람은 젊은 세대뿐이라는 생각이에요. 현재 K-팝의 팬덤과 젠지(Gen Z·Z세대)에 집중돼 있어요. 하지만 인도에서 Z세대는 생각만큼 큰 부분이 아니에요. 실질적 경제력과 문화 소비력을 갖춘 24~40세 중반까지의 밀레니얼 세대가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어요.”
타깃 연령대가 Z세대로 축소된 탓에 K-팝은 더 많은 연령대에 소구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구즈랄 부사장은 “밀레니얼 세대만 해도 K-팝이라는 존재를 인지할 뿐 일상적으로 즐겨 듣지 않는다”며 “타깃을 넓히지 못하면 외연 확장은 불가능하다”고 꼬집었다.
지역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해외 기획사들이 인도에 진출하며 뭄바이와 델리 같은 1선 대도시의 화려함을 보지만, 구즈랄 부사장은 “진정한 소비 잠재력은 지방 도시에서 나온다. 대도시를 넘어 지역 사회로 파고들어야 한다”고 귀띔했다.
이 복잡다단한 시장에서 ‘선택’받기 위해선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구즈랄 부사장은 ▷협업 ▷팬들과의 교감 ▷현지화 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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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자 싱 구즈랄 티시리즈 부사장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
현지 시장으로 가장 안전하면서도 ‘확실한’ 침투 방법은 굳건한 팬덤을 가진 인도 아티스트와의 협업이다. 구즈랄 부사장은 “인도 아티스트와 K-팝 아티스트의 협업은 자신의 팬덤과 파트너의 팬덤을 동시에 얻는 ‘원플러스원’(1+1)의 효과를 낸다”며 “인도 음악과 한국 음악의 유기적 결혼을 통해 양쪽 시장에서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지 크리에이터와 스타와의 접점을 만드는 방법도 좋은 전략이다. 인도에서 큰 팬덤을 확보한 크리에이터나 배우가 K-팝에 대한 호감을 공개하면 그 팬들이 K-팝을 찾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팬덤의 신뢰를 이용해 새로운 음악의 발견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개인뿐 아니라, 산업과 산업의 협업도 틈새 전략이다. 그는 “발리우드는 굉장히 큰 산업이다. 과거 해외 아티스트가 발리우드 대형 영화에 곡을 줘 메가 히트를 쳤던 것처럼, 지금 K-콘텐츠 팬덤과 실력을 고려할 때 발리우드와 TV 영역으로 진출할 적기”라고 귀띔했다.
최근 국내 대형 기획사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K-팝 시스템의 해외 이식이나 인도 현지 아이돌 제작에 대해선 회의적 입장이다. 구즈랄 부사장은 “현지인을 선발해 트레이닝하는 방식은 기획사의 전략일 뿐 인도 대중이 원하는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고 봤다.
“한국인이 만든 정통 한식이 가장 깊은 맛을 내고 성공하는 것과 같은 이치예요. 인도인이 직접 한식을 만들어본다 한들 정통성과 오리지널리티 면에서 원조를 따라가기 어렵죠. 소비자 입장에서도 진짜 원조를 선택하고 싶어 할 거예요. 인도 인재가 K-팝 시스템에서 육성된다면 관심이 모이고 잘될 수는 있겠지만,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진짜 한국 아티스트와 협업하는 편이 시장에서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내리라 봅니다.”
현지 팬들과 접촉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 콘서트와 팬미팅, 밋앤그릿(Meet & Greet·팬과의 만남)을 통해 팬을 직접 만나고, 아티스트가 실제로 인도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구즈랄 부사장은 “세계적으로 거대한 팬덤을 가진 방탄소년단은 아직 인도에서 콘서트를 열지 않았다. 월드투어 발표 때마다 인도가 빠지는 경우가 있으면 현지 팬들은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며 “이토록 큰 사랑을 주는 나라라면 다르게 대접해야 한다. 인도 대중은 감정적 유대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고 강조했다.
인도는 ‘거대한 규모’, ‘막대한 자본’으로 상징되는 인도 시장은 문만 열었다고 들어갈 자리가 마련되는 것은 아니다. 구즈랄 부사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현지화’라고 강조한다. 현지화가 바탕해야 ‘시장의 수용’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구즈랄 부사장의 판단이다.
“인도의 모습은 SNS에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에요. ‘나마스테’를 인도의 보편적 인사라고 하지만, 실제 인구의 절반도 그 말을 쓰지 않아요. 28개 주마다 언어와 문화, 전통 신발의 형태까지 완전히 다르죠. 북부 중심의 획일화된 고정관념을 답습해서는 안 됩니다. 무엇보다 ‘왜 인도에 진출하고 싶은가’에 대한 깊은 관찰과 진정성이 바탕에 있어야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