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이 있어야 비로소 완성된다”…김택상 ‘As It Is’

개인전 조현화랑 서울·부산서 개최
대형 회화·영상 작업 등 30여 점 전시
‘아이스 블라섬’ 연작…사계절 순환 완성


김택상 개인전 ‘그대로 As It Is’ 전시 전경. [조현화랑 제공]


[헤럴드경제(부산)=김현경 기자] “물감마다 성분이 달라서 물에서 침전되는 속도가 다 다릅니다. 어떤 것은 3일이 걸리고 어떤 것은 4일, 5일이 걸려요. 정해진 시간은 없고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될 때 마무리합니다.”

김택상(68)의 개인전 ‘그대로 As It Is’가 오는 11월 8일까지 조현화랑 서울과 부산 달맞이점·해운대점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회화 신작 ‘아이스 블러섬(Ice Blossom)’과 대형 회화, 영상 작업 등 30여 점을 선보인다.

김택상은 1990년대 초부터 30여년간 물과 물감을 매개로 회화적 탐구를 이어 왔다. ‘브리딩(Breathing)’, ‘플로스(Flows)’, ‘레조넌스(Resonance)’ 연작은 각각 봄, 여름, 가을을 표상했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된 ‘아이스 블러섬’ 연작은 그동안 환경적 제약이 있었던 겨울을 캠버스 안으로 끌어들인 작업이다. 영하의 기온에서 물감과 물이 얼고 녹기를 반복하면서 캔버스 위에 눈꽃 같은 형상이 맺힌 결과물이다. 이로써 작가는 사계절의 순환을 완성하게 됐다.

김택상 ‘Ice blossom 26-53, 2026’. [김택상. 조현화랑 제공]


부산 전시장에서 만난 김택상은 “그동안 물이 얼지 않도록 노력했는데, 우연히 겨울 작업이 탄생하게 됐다”며 “내 모든 작업은 시절 인연”이라고 말했다.

‘플로스 애즈 잇 이즈(Flows As It Is)’를 비롯해 10m가 넘는 대형 작품들도 소개된다. 틀 안에 캔버스를 깔고 물을 부은 뒤 물감을 옅게 희석해 물이 고인 캔버스 위에 부어서 만든 작품이다. 작가는 안료 입자가 가라앉아 캔버스에 충분히 스며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물을 빼고 캔버스를 말린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물과 안료, 중력과 시간, 습도와 온도가 만든 색이 남는다.

작가는 “그동안 서울의 협소한 장소에서 더 작은 작품을 봐 온 관람객들에게 신선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며 “공간과의 관계 속에서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해 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부산에서 넓은 공간을 만나 시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택상 ‘Flows As It Is 26-2’. [김택상. 조현화랑 제공]


기존과 다른 새로운 조형 언어를 제시하는 작품들도 내놨다. ‘데어(There)’는 김택상의 회화 표면을 초미세현미경으로 촬영해 적층된 물감층 사이를 부유하는 세밀한 입자의 움직임을 무빙 이미지로 구현한 작품이다. ‘논-리니어리티(Non-linearity)’는 낮은 기온이 발생시킨 유기적인 흰색 결정의 선을 강조했다.

“저는 작품이 되어 간다고 말합니다. 물이 스스로 무늬도 만들고 섞이기도 하면서 형성되는 거죠. 제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되어 가는 작업입니다.”

인공지능(AI)이 순식간에 그림을 그려주는 시대에 김택상의 ‘기다림’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김택상은 중앙대학교 회화과, 홍익대학교 서양화과 대학원을 졸업한 후 청주대학교에서 오랜 시간 후학을 양성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금호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