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구스타보 히메노와 협연
148년 전 브람스와 나누는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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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올리니스트 마리에 두에냐스 [빈체로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음악은 살아 있어야 하고, 관객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다면 그저 소음에 불과해요.”
빈틈없는 기교의 완벽주의 연주가 늘고, 예쁜 소리로 매만진 유려함이 두드러지는 시대. 스물네 살의 ‘젠지 바이올리니스트’ 마리아 두에냐스는 ‘소리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때론 거칠 수도, 때론 섬세할 수도 있는 음악의 생명력을 기어이 청중의 심장 한가운데로 꽂아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당돌한 비르투오소(Virtuoso, 명인 연주자)다.
오는 11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첫 내한 무대를 갖는 마리아 두에냐스는 “음악을 통해 새로운 장소를 알아가는 일은 굉장히 매력적”이라며 “한국을 처음 방문하게 돼 무척 설렌다”고 말했다.
스페인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마리아 두에냐스는 일찌감치 ‘신동 연주자’로 이름을 알렸다. 다섯 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해 2021년 예후디 메뉴힌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를 석권했고, 19세에 ‘클래식 명가 도이치 그라모폰과 전속 계약을 맺은 데다 동시대 현대음악 초연 음반으로 그래미 어워즈 트로피까지 안은 주인공이다. 심지어 20세기 초 캐나다의 바이올리니스트 캐슬린 팔로의 삶과 음악을 다룬 영화에도 출연한 배우이기도 하다.
두에냐스가 바이올린을 처음 잡은 것은 우연이었다. 그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돼야겠다는 뚜렷한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고 돌아본다. 소녀에게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는 언어였고, 세상과 맞닿은 통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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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올리니스트 마리에 두에냐스 [빈체로 제공] |
“어릴 때 무척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어요. 바이올린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저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 됐어요. 전 늘 거장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연주에 매료됐어요. 특히 두 연주자가 똑같은 음을 연주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 정말 흥미로웠어요.”
두에냐스는 바이올린을 잡은 그때부터 이 악기를 통해 음악과 자신을 탐색해 나갔다. 기술과 기교 못잖게 그가 천작하는 것은 자기 안의 다양한 소리를 찾는 일이다. 두에냐스는 “테크닉은 연주자에게 자유를 주기에 꼭 필요하지만, 그것이 목적지는 아니다”며 “연습의 목적은 테크닉을 온전히 몸에 익혀 무대에서 어떻게 연주해야 할지 고민하기보다 오롯이 음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에 있다”고 말한다.
그가 바이올린을 통해 만들어가고 싶은 것도 “다채로운 음색과 뉘앙스”다. 두에냐스는 “바이올린이 하나의 아름다운 소리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기를 바란다”며 “요즘은 나만의 개성과 작품 안에서 진실한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에 더 많이 고민한다”고 했다.
최근 발매한 새 음반 ‘오마주 투 하이페츠(Homage to Heifetz)’는 두에냐스의 음악 인생에 깊은 영향을 준 하이페츠를 향한 헌사다. 두에냐스는 “압도적인 테크닉과 음악을 바라보는 사고의 명료함, 분명한 의도를 가진 모습에 매료됐다”며 “음반도 오랫동안 그의 음반을 들으며 쌓아온 음악적 경험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음반에선 하이페츠가 실제로 연주한 스트라디바리우스로 그의 편곡 작품의 일부를 함께 녹음했다. 현재 두에냐스는 1779년산 잠바티스타 과다니니와 1718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미켈란젤로(Michelangelo)’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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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올리니스트 마리에 두에냐스 [빈체로 제공] |
두에냐스는 “녹음 전 일부러 그 바이올린을 많이 연습하지 않았다”며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버리면, 악기가 지닌 역사와 고유한 정체성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오히려 악기가 스스로 말하도록 두고 싶었다”며 “그 순간은 영원히 내 마음속에 남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모든 과정이 두에냐스가 ‘자기만의 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훗날 누군가 제 음반을 듣고 ‘이건 마리아 두에냐스의 소리야!’라고 알아채는 날을 꿈꿔요. ‘나만의 소리’를 말로 설명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위대한 거장들의 연주를 들을 때면 하던 일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게 돼요. 음악이 저에게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죠. 정말 아름다운 감각이에요.”
한국 무대에선 구스타보 히메노가 지휘하는 룩셈부르크 필하모닉과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를 들려준다. 수많은 거장이 각자의 해석을 남긴 작품이다. 두에냐스가 이 작품에서 주목하는 것은 “브람스가 이 곡을 완성하기까지 거쳤던 변화의 과정”이다. 브람스는 애초 이 작품을 4악장으로 구상했고 스케르초 악장까지 썼지만 결국 폐기했다. 그는 “아무리 위대한 걸작이라도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로 갑자기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하고 변화시키고 때로는 무언가를 내려놓는 과정을 거친다”고 말했다.
두에냐스가 주목하는 것도 브람스가 걸어온 ‘탐구의 과정’이다. 그는 “관객 역시 이 협주곡을 이미 완성된, 변하지 않는 하나의 걸작으로 듣기보다는 지금도 나와 끊임없는 대화를 주고받는 음악으로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48년을 뛰어넘은 브람스와 두에냐스의 사이에 젠지 바이올리니스트가 말을 보태는 순간이 있다. 바로 카덴차(cadenza, 화려하고 기교적인 자유 연주)다. 두에냐스는 모차르트와 베토벤 협주곡에 이어 이번 브람스에서도 직접 카덴차를 썼다. 그는 “카덴차를 쓰는 것은 협주곡과 완전히 별개의 부분을 끼워 넣는 일이 아니다”라며 “카덴차 역시 작품 자체의 음악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져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에냐스에게 카덴차는 특별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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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올리니스트 마리에 두에냐스 [빈체로 제공] |
“어떤 의미에선 작곡가와 단둘이 마주하게 되는 때예요. 그 순간에는 진정한 자유가 있고, 저는 언제나 그 공간을 저만의 것으로 만들어갈 기회를 즐겨요.”
사실 두에냐스는 연주자이면서 작곡가이기도 하다. 그는 “작곡을 시작하며 음악을 바라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며 “직접 무언가를 써보면 아주 작은 선택 하나하나에도 훨씬 예리하게 의식하게 되는데 그런 경험 덕분에 작곡가들이 작품 안에서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를 더 세심하게 바라보게 됐다”고 말한다.
창작자로의 영감은 모든 곳에서 온다. 음악뿐 아니라 “이미지와 풍경, 기억, 책의 한 구절, 특정한 분위기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가 음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그는 말한다. 실내악 작품을 주로 쓰지만, 언젠간 바이올린 협주곡도 꼭 써보고 싶다. 다만 그는 “커리어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면서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정말 표현하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자연스럽게 작곡하고 싶다“고 말했다.
두에냐스는 이번 내한을 통해 온전히 한국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는 “한국 음식도 맛보고, 공연장 밖의 모습도 직접 경험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그저 천천히 걸어 다니며 한국을 알아가고 싶어요. 평소 책을 무척 좋아하는데, 특히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작품을 좋아해요. 한국의 음악계에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뛰어난 연주자들이 정말 많다고 들었어요. 최근엔 제가 깊이 존경하는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을 만날 기회가 있었어요. 언젠가는 지휘자 정명훈 선생님과도 꼭 함께 작업해 보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