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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15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의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오른쪽)가 백악관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자신의 노벨 평화상 메달을 선물하고 있다. [백악관] |
[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 지난해 수상한 노벨 평화상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바쳤던 베네수엘라의 야권 운동가 마리아 코리아 마차도가 올해 세 번이나 미국으로부터 차기 대권주자로서 인정받는 데 실패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베네수엘라 민중들의 강력한 지지와 미국의 지원을 바탕으로 차기 대선에서 민주적으로 정권을 확보하려던 그의 계획에 큰 차질을 피할 수 없는 상황. 여기에는 마차도를 받치고 있는 베네수엘라 내 높은 지지율과 개인의 야심이 미국의 베네수엘라 내 이권 확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마차도 대신 스페인에서 8년간 망명 생활을 한 무명의 정치인을 택했다.
지난 4월 미 국무부의 서반구 담당 최고 관리인 마이클 코작은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스페인에서 망명 중이었던 베네수엘라 정치인 디노라 피게라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안정적이고 질서 정연하며 지속 가능한 민주적 전환을 향한 경로”에 대해 논의했다고 게시했다.
이를 두고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의 민주적 전환을 이끌 인물로 마차도 대신 피게라를 지명한다는 첫 공개 신호라고 해석했다.
이후 마차도는 지난 5월 파나마에서 베네수엘라의 여러 야권 인사들과 모여 미국의 ‘촉진’ 하에 델시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이 이끄는 베네수엘라 임시 정부와 민주화를 위해 “진지하고 결연하며 책임 있는 협상”을 추구하기로 합의한다는 내용의 ‘파나마 선언문’을 발표했다.
그러자 한 달 후인 지난 6월 스페인에서 망명 중이던 피게라가 미 국무부의 초청이라는 명목으로 베네수엘라 카라카스를 방문했다. 피게라는 카라카스에 도착하 마자 미국 대사관으로 향해 존 배럿 대사대리와 면담했고,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의 오빠이자 마두로 전 정권의 충성파 인사였던 호르헤 로드리게스 국회의장과 회담했다. 이후 피게라는 지난 6일 야권 대표 자격으로 로드리게스 국회의장이 이끄는 임시정부 대표단과 민주주의 회복과 차기 선거 실시를 위한 회담을 시작했다.
이는 미국이 야권 대표의 자격을 보여주려 파나마 선언 등의 ‘퍼포먼스’를 한 마차도에게 이를 인정할 수 없고, 마차도 대신 피게라를 택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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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노라 피게라 베네수엘라 전 국회의원(왼쪽)과 호르헤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국회 의장이 지난 6일 카라카스의 한 컨벤션센터에서 만나 베네수엘라의 민주적 전환을 위한 야권과 임시 정부 간 협상을 시작했다. [AFP] |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는 임시 정부와 유전 개발에 협력하기로 계약하면서 마차도 뿐 아니라 베네수엘라 야권 전체의 열망을 더 멀어지게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와의 유전 개발 합의를 발표했다.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과 가까운 현지 사업가 알레한드로 베탕쿠르의 회사 ‘노스 아메리칸 블루 에너지 파트너스’(NABEP)가 100년간 베네수엘라의 미개발 유전 개발권을 얻어 유전 17개를 개발하고, 미국은 생산량의 55%를 확보한다는 게 골자다.
이는 베네수엘라에서 마두로 정권을 지지했던 강경파를 비롯해 야권까지 한목소리로 비난하고 있는 내용이다. 야권에서는 마두로 정권에서 요직을 누렸던 이들이 고스란히 임기를 연장하고 있는 현 임시 정권에 정당성이 없다고 지적하며, 국가의 이권을 미국에 넘겨줬다는 점을 비판했다. 마두로 정권의 주축이었던 강경파들도 이번 합의를 비판하고 있다.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이 국유화하며 되찾았던 자원 주권을 미국에 내줬다는 이유에서다.
무엇보다 베네수엘라 야권에서는 이번 합의로 인해 민주적으로 치러지는 대선이라는 열망이 더 멀어질 상황에 처했다는 데에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와 로드리게스 임시 정부가 유전 개발 합의를 체결한 이상, 미국이 충분한 이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현 임시 정부가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해 합의 내용이 실현되는 게 유리하다.
미국이 이런 상황에서 조기 대선을 촉발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미 싱크탱크 유라시아그룹의 중남미 담당 이사인 리사 그레이스 타르고는 “(이번 협정은) 트럼프 대통령과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이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하는 효과가 있다”며 “새로운 선거를 서둘러 치러야 할 유인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고, 이 때문에 야권이 반발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차기 대선을 노리고 있던 마차도 입장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로드리게스 임시 정부의 손을 잡은 셈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의에게 베네수엘라와의 석유 거래를 설명하다가 “베네수엘라는 아직 선거를 치를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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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델시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미국과 베네수엘라가 대규모 유전 개발 협정을 체결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AFP] |
공식적으로 확인이 된 것은 아니지만, 외교가에서는 미 행정부가 마차도의 도움 요청을 거절한 사례가 한 번 더 있다고 전해진다.
지난 6월 두 차례의 지진이 베네수엘라를 강타해 많은 이재민이 발생하자 마차도가 사후 수습을 돕기 위해 베네수엘라로 가겠다고 지지자들에게 약속했지만, 이 과정에서 미국의 마차도의 도움 요청을 외면했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핍박을 받았던 마차도는 지난해까지 베네수엘라 내 모처에서 은신하다 노벨상 수상을 위해 노르웨이로 가면서 은밀하게 베네수엘라를 빠져나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에게 유효한 베네수엘라 여권이 없고, 베네수엘라로 돌아가려는 절차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마차도는 피게라가 미 국무부의 초청으로 카라카스 땅을 밟았던 것처럼 미국이 중간에서 역할을 해줄 것을 바랐지만, 미국은 마차도의 계획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전해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백악관을 방문한 마차도로부터 노벨상을 전달받았을 당시에도 “매우 친절한 여성”이라 칭찬했지만, 정치 지도자로서의 능력에 대해서는 신뢰를 보내지 않았다. 마두로 축출 작전 이후 마차도에 대해 “국내에서 지지나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그녀가 지도자가 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 지적하기도 했다. 마차도가 줄곧 바라는, 차기 대권 주자에 대한 지지는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것이다.
트럼프가 마차도 대신 낙점한 피게라는 베네수엘라는 물론 미 정가도 깜짝 놀란 인사라고 전해진다. 베네수엘라 야권 투쟁의 상징이자 현지에서 높은 지지를 받는 마차도와 달리, 피게라는 존재감이 미약한 무명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의사 출신인 피게라는 2010년과 2015년 중도 우파 성향의 정의우선당(Primero Justicia) 소속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정치 활동을 하다 2018년 국가 비밀경찰의 체포를 피해 스페인으로 망명했다. 이후 8년간 스페인에서 간병인으로 일하면서 생계를 이어왔다.
2023년 1월 민주 선거로 선출됐던 ‘2015년 국회’의 정당성을 잇는 ‘평행 국회’에서 국회의장으로 선출되며 야권의 구심점 역할을 맡았지만, 이는 망명 중인 베네수엘라 정치인들의 선언적 활동이었을 뿐 베네수엘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미국이 피게라를 택한 것을 두고 트럼프 1기 때 베네수엘라 주재 미국 특사였던 엘리엇 에이브럼스는 “베네수엘라 야당 내에서 피게라를 야당 대표로 선택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심지어 주베네수엘라 미국 대사관의 부대사를 지냈던 브라이언 나란조는 피게라에 대해 “결코 A급이나 B급 정치인조차 아니었다”라며 미국이 피게라를 택했다는 소식에 너무 놀라 “의자에서 굴러떨어질 뻔 했다”고 전했다.
미국이 마차도를 버리고 피게라를 발탁한 데에는 마차도의 야심과 현지의 높은 인기가 향후 베네수엘라 내 미국의 입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행정부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폴리티코에 마차도가 파나마에서 야권 지도자들과 논의한 일 등을 두고 “(야당 내) 내전을 조장하고 있다”면서 마차도에게 “메시아 콤플렉스”가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마차도는 차비스타(우고 차베스가 주창한 포퓰리즘적인 좌파 이념을 따르는 사람)보다 더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고 비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