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관’ 논란 속 광주비엔날레 개막…“전시에 집중해 주길”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 주제
제주 화산암·오월어머니집 등 43인(팀) 참여
대만관 명칭 변경·중국관 철수로 시끌


제16회 광주비엔날레 전시 전경. [광주비엔날레 제공]


[헤럴드경제(전남광주)=김현경 기자] 제주의 화산암과 5·18광주민주화운동 피해 여성들의 그림. 지역도 역사도 다르지만 ‘변화’의 흔적을 간직했다는 공톰점을 가진 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국내 최대 국제 미술축제인 제16회 광주비엔날레가 5일 막을 올렸다.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You Must Change Your Life)’는 제목으로 열린 올해 비엔날레에는 43인(팀)이 참여해 개인부터 사회, 역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위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호추니엔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은 4일 광주비엔날레전시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전시 제목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고대 아폴로의 토르소’의 마지막 문장에서 떠올렸다”며 “광주는 빛의 도시, 민주주의의 도시이며 변화의 경험으로 형성된 도시다. 이곳에서는 내면적인 변화가 집단적인 차원으로 열린다”고 밝혔다.

이어 “나의 변화가 나에게만 그치지 않고 타인의 삶과 공동체, 도시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됐다”면서 “개인의 변화와 집단의 변화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연대와 역사, 공유된 경험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고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가가 이번 전시의 중요한 질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예년보다 참여 작가를 줄이고 한 전시장에 집중시켰다. 이는 규모의 축소라기보다 보다 집중도 있는 관람을 제공하기 위한 기획이다.

호추니엔 감독은 “1990~2000년대 비엔날레의 주요 추동력은 확장이었다. 유토피아적 욕망을 담은 인플레이션 모드였다. 반면 최근 몇 년간, 특히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지속 가능성을 생각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여기에는 관심과 주의력의 지속 가능성도 포함된다. 모든 전시를 다 볼 수 없다는 불안감이 있다”면서 “플랫폼을 다른 방식으로 제공하는 방안을 고민했다. 시간을 들여서 모든 작품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호추니엔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이 4일 광주비엔날레전시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전시를 소개하고 있다. [광주비엔날레 제공]


관람객은 ‘분자와 나’, ‘신체와 관계’, ‘풍경과 배움’, ‘우주와 변화’, ‘공기와 발화’ 등 다섯 개의 전시실을 통과하면서 나에서 사회, 우주로 경험을 확장하게 된다.

호추니엔 감독은 “전시는 서로 겹쳐지며 사회의 풍경을 만든다. 안과 밖, 한 몸과 다른 몸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서로 다른 위치에서 변화를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고 했다.

전시장 곳곳에 놓인 제주 화산암은 이러한 생각을 압축적으로 나타낸다. 순간적 분출과 냉각, 수천 년에 걸친 변화를 품고 있는 제주돌문화공원의 화산암들이 전시의 가장 오래된 ‘참여자’로 자리한다.

니나 카넬, 사사키 켄 등 한 작가의 작품이 여러 전시실에 반복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작가의 지속적 실천을 주목하면서 관람의 동반자처럼 위치시킨다.

니나 카넬의 ‘상동곡(40㎏)’은 초음파 장치의 진동이 물을 미세한 안개로 바꾸고, 안개는 옆에 놓인 시멘트 포대를 서서히 굳히는 작품이다. 작가는 형태를 가진 모든 것은 언젠가 형태를 잃기 마련이며, 완전히 정지해 있는 존재는 없다고 말한다.

제16회 광주비엔날레 전시 전경. [광주비엔날레 제공]


시몬 골딘과 야콥 세네비로 이뤄진 골딘+세네비의 ‘송진 연못’은 약 2톤에 달하는 송진으로 전시실 바닥을 채운 호박색 웅덩이다. 야콥 세네비가 자가면역질환인 다발성경화증을 앓은 뒤 이들은 나와 타자, 보호와 공격 사이의 불확실하고 흔들리는 경계를 탐구해 왔다. 송진은 본래 해충을 쫓고 상처를 치유하는 보호용 독소지만, 바이오 디젤 등 연료로 채취되기도 한다. 치유의 힘과 착취적 행위가 아슬아슬하게 만나는 지점이다.

‘오월어머니집’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국가 폭력으로 가족을 잃거나 부상한 여성들이 그린 그림 322점과 인터뷰 책을 선보인다. 화면에는 꽃과 과일, 가족과의 추억부터 1980년 5월의 기억, 촛불집회와 연대의 장면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 온 이들의 증언 같은 그림은 사적인 기억이 공동의 역사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전시 기간 중 한 차례 작품을 교체해 다양한 어머니들의 삶과 기억을 전달한다.

권병준·박찬경의 광주비엔날레(GB) 커미션 신작 ‘불림’은 광주·전남 시민들이 기부한 쇠붙이를 녹여 악기와 소리로 만든 설치 작업이다. 작품은 무당이 될 신애기가 마을을 돌며 쇠붙이를 모아 방울, 징, 꽹과리 등을 만드는 한국 무속 의례 ‘쇠걸립’에서 출발했다. 쓰임을 다한 쇠는 불과 소리를 거쳐 새로운 생명을 얻고, 공동체의 의례 도구로 돌아온다.

쇠걸립이 공동체가 한 사람을 무당으로 받아들이고 돌봄과 책임의 관계를 맺는 것처럼, ‘불림’은 시민들의 기증품을 매개로 예술가와 비엔날레, 지역사회를 잇는다.

두 작가는 작가노트에서 “시민이 내놓은 쇠붙이에 담긴 각자의 기원과 기억을 소리로 되돌려주며, 비엔날레를 예술가와 시민이 함께 만드는 공동체의 축제로 ‘불리고’ 싶다”고 말했다.

제16회 광주비엔날레 전시 전경. [광주비엔날레 제공]


작품 자체가 변주하며 관람하는 시간에 따라 다르게 경험할 수 있는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제2·3전시실을 잇는 다리 위에서는 안젤라 고의 퍼포먼스 ‘크래프트’가 하루 네 번 펼쳐진다. 무용수들의 미세하고 정교한 몸짓은 분리와 연결을 오가며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동시에 다리를 오가는 사람들과 도시의 풍경까지 공연 안으로 들어와 끊임없이 전환한다.

김선익의 ‘공장의 불빛’은 비엔날레 개막부터 폐막까지 매일 전시 시간 동안 재생되는 496시간 길이의 사운드 작품이다. 관람객은 방문 시간에 따라 서로 다른 부분을 듣게 돼 같은 작품이라도 각각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입장권 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도 있다.

제임스 T. 홍의 ‘사과’는 전 세계 정치인과 권력자들의 공식 사과를 모은 약 11시간 분량의 영상이다. 매일 오후 7~9시 전시관 외벽 삼면에 투사돼 책임과 반성의 언어를 밤의 광주와 공공 공간으로 확장한다.

광장에서 바로 진입할 수 있는 제5전시실에선 재클린 키요미 고크의 GB 커미션 신작 ‘어긋난 BPM(R로즈 변주곡)’을 만날 수 있다. 기계 장치와 송풍기, 피드백으로 만든 미로형 설치 작품이자 다채널 테크노 사운드 작업이다. 소리를 흡수하는 투명한 비닐 풍선 구조물은 호흡처럼 부풀었다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리드미컬한 파동과 조명은 클럽 같은 공간을 연출하지만, 흥분 대신 낯선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제16회 광주비엔날레 전시 전경. [광주비엔날레 제공]


이날 간담회에서는 최근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을 대만관 명칭과 중국관 전시 철수 논란에 따른 지적도 제기됐다.

2018년부터 시작된 파빌리온 프로젝트는 비엔날레 본전시와 별도로 국내외 미술·문화 기관들이 교류하는 특별관이다. 광주비엔날레는 파빌리온 참여 주체를 국가관과 기관관으로 구분해 운영해 왔다.

올해는 국립대만미술관(NTMoFA)을 포함해 11개 기관과 이탈리아, 스위스 등 16개 국가관이 참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대만 문화부는 비엔날레 측이 그동안 파빌리온의 명칭을 대만관(Taiwan Pavilion)으로 협의하다가 갑자기 NTMoFA로 변경했다며 항의했고, 광주비엔날레 재단은 최근 NTMoFA 파빌리온의 명칭을 대만관으로 변경 승인했다.

이에 다이빙 주한 중국대사가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에게 유감과 우려를 표명했고, 중국관 작가들도 작품 설치를 중단하고 철수하는 등 파행을 빚었다.

이날 비엔날레전시관 앞에서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하라’는 중국인 단체의 시위가 벌이지기도 했다.

윤범모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가 4일 광주비엔날레전시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광주비엔날레 제공]


윤범모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는 “파빌리온 사태까지 오게 돼 송구하고 안타깝다”며 “중국관도 끝까지 같이하길 원했는데 결국 전시 철수로 이어져 정말 아쉽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만 파빌리온과 관련, “처음에는 작은 규모의 기관이 신청했고, 이후 국립대만미술관으로 바뀌었다. 재단과 대만 측이 서명한 협약서가 유일한 효력을 갖는 문서이며, 국가관이 아닌 기관관이 맞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만관이란 이름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검열이란 주장이 나왔고, 지역 단체가 힘을 실어주면서 파장이 커져서 본전시까지 영향을 미칠까 우려해 명칭을 바꿨다. 중국과의 외교 문제로 비화하지 않기를 바랐지만, 불편한 상황을 겪게 돼 민망하고 안타깝다”고 했다.

4일 광주비엔날레전시관 앞에서 중국인 단체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하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현경 기자]


윤 대표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파빌리온 운영 방식 개편을 재검토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는 “파빌리온 문제는 근본적으로 제도를 바꿔야 할 것 같다”며 “국가관과 기관관을 나누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 신청하는 나라와 기관이 너무 많고 이번에도 40~50개가 신청해 광주 시내에 모두 수용할 공간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예술 기관이고 예술은 예술, 정치는 정치다. 이를 겹쳐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번 비엔날레 본전시 예술감독을 맡은 호추니엔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본전시와 파빌리온은 “완전히 별개로 운영되고 있다”며 선을 그었다.

그는 “인간의 관심은 늘 폭력적으로 일어나는 과격한 변화에만 끌리는 것 같다”며 “정치의 세계에서 예술은 약해 보일 수도 있지만 오랫동안 이어진다. 우리가 모인 이유는 예술의 본질을 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광주비엔날레는 오는 11월 15일까지 72일간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