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 시위’ 등에 업고 당선된 래퍼 총리, 리더십 시험대 된 네팔 대홍수

발렌드라 샤(가운데 선글라스 쓴 인물) 네팔 총리가 지난해 9월 카트만두 두르바르 광장에서 열린 인드라 자트라 축제에 참석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 지난해 Z세대의 반정부 시위에 힘입어 세계 최연소 국가 정상(올해 기준 26세)이 된 네팔의 발렌드라 샤 총리가 이번 대홍수와 산사태로 리더십 시험대를 맞았다.

발렌드라 샤 총리는 구조공학 석사학위를 가진 엔지니어이자, 2012년부터 네팔 언더그라운드 힙합 신에서 활동했던 래퍼라는 이색 이력이 있다. 빈부격차와 정부의 무능, 부패를 비판하는 랩으로 청년들의 대변자가 된 그는 2022년 수도인 카트만두 시장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기성 정당 후보들을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다. 이후 지난해 네팔 청년들이 주도한 대규모 반부패 시위(Z세대 시위)에 힘입어 국가 정상에 올랐다. 네팔의 Z세대 시위는 의회를 해산시킬 정도로 커졌고, 조기 총선이 결정된 국면에서 샤 총리는 신생 정당인 국민독립당에 입당했다. 이후 그는 지난 3월 치러진 총선에서 K.P.샤르마 올리 전 총리를 지역구에서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그가 이끄는 국민독립당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다수당이 됐고, 그는 네팔 47대 총리로 취임했다.

샤 총리는 취임 첫날부터 공직자 불법 재산 조사, 정부 부처 대폭 축소 등 개혁 정치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5년 안에 국내총생산(GDP)을 1000억달러로, 현재의 2배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게 그의 야심 찬 목표다.

그러나 취임 6개월여 만에 대규모 산사태 및 대홍수라는 악재를 맞았다. 지난 3일(현지시간) 기준 네팔 재난관리청이 집계한 대홍수 사망자는 최소 1259명으로 늘었다. 실종자도 5083명으로 집계됐다. 이날까지 3700여 가구·1만4000여명이 도로와 교량 유실 등으로 인해 고립됐고, 물살에 완전히 유실되거나 진흙에 파묻힌 가옥은 7500여채로 추정된다. 남아 있기는 하지만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상태의 집까지 더하면 가옥 약 2만채를 새로 지어야 한다.

샤 총리는 재해 발생 직후 현장에 2만1000명의 보안 인력 파견해 생존자 1만2000명을 헬기 등으로 구조했다. 이를 두고 카트만두의 싱크탱크인 폴리시 안트러프러너스의 아누라그 아차리아는 “정부가 즉각적으로 동원됐고, 네팔의 제한된 역량을 고려할 때 대응이 매우 훌륭했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구조와 구호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며 샤 총리의 “가장 큰 과제는 지역 사회 재건과 복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네팔 누와코트의 한 군 기지에서 구조대가 4일(현지시간) 어퍼 트리슐리 3A 수력발전소 터널에서 구조된 생존자를 카트만두로 이송하고 있다. [로이터]


샤 총리는 대홍수 발생 초기에는 외국의 도움을 받는 것을 자제했다. 우선 원조와 기부금만 받고 외국의 구조팀 파견에는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다. 이는 2015년 네팔 지진 당시 외국 구조대와의 조율이 미흡해, 구조 과정에서 헬기 추락 사고 등이 발생했던 것을 감안한 조치였다는 게 네팔 싱크탱크의 설명이다.

지난달 30일께부터는 입장을 다소 바꿔 인도와 중국의 구조팀을 받았다. 이를 두고 카트만두 소재 국제위기그룹의 선임 고문인 아시쉬 프라단은 “그들(내각)은 일종의 실시간 학습을 하고 있다. 적어도 그들은 자신들의 방식에만 얽매여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샤 총리는 산사태 다음날인 지난달 27일 피해 지역을 잠시 방문한 것 외에는 구호 현장을 들르거나 이재민들을 찾는 일을 하지 않았다. 대국민 연설도 자제하면서 페이스북에 재해와 관련한 당부 사항을 게시하는 것으로 대중들과 소통하고 있다.

샤 총리와 그 내각의 장관들은 현재 4100만달러 이상을 모금한 재난구호 기금에 한 달 치 급여를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는 네팔 재건에 비춰보면 없이 부족하다. 이번 피해를 복구하고 재건에 드는 비용은 최대 50억달러로 추산된다.

이는 2015년 지진 당시 피해 복구 비용인 70억달러에 비하면 작은 규모다. 하지만 네팔 경제가 3%의 성장률로 이미 고전하고 있던 것을 감안하면, 경제에 미치는 손실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샤 행정부는 구조 작업을 서두르면서도, 경제에 미치는 타격을 줄이기 위해 네팔의 관광업은 계속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번 홍수는 히말라야 트래킹에 나서는 관광객들과 힌두교 성지를 찾는 순례객들이 자주 찾는 경로에서 발생한터라, 네팔의 관광업이 더 위축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네팔에 관광업은 GDP의 7%를 차지하는 주요 산업이다.

카닥 라즈 파우델 네팔 관광부 장관은 지난 2일(현지시간) 페이스북 비디오 메시지를 통해 “우리의 공항은 아직 운영 중이다. 우리의 산, 트레일, 트래킹 코스는 여전히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면서 네팔 관광을 취소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이번에 여러분이 네팔에 오는 것은 단순한 휴가가 아니다. 그것은 이 파멸적인 비극과 싸우고 있는 국가에 대한 큰 지원이다”라고 호소했다.

대형 재해를 맞은 순간이지만, 샤 총리에 대한 지지는 굳건하다는 게 현지의 전언이다. 히말 사우스아시안 매거진의 편집장 로만 가우탐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나는 그를 향한 어떤 분노도 감지하지 못했다. 그는 굳건한 팬덤을 가지고 있어서 여전히 일종의 테플론 효과(정치적 비판에 타격을 입지 않고, 부정적인 이미지가 들러붙지 않는 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전했다.

오는 8일은 네팔 Z세대 시위가 발발한 지 1주년이 되는 날이다.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촉발했던 저력을 바탕으로 샤 총리가 국가적 재난 극복을 무사히 이끌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