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 실증 전 제도 공백 ‘혼란’

헥토 등 디지털자산 新서비스 추진
USDC 원화정산 외환법 해석 난항
외국인 결제·정산도 교환구조 따져야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 지연에 혼선



전통 금융회사가 규제 불확실성에 발이 묶인 사이 핀테크 기업들이 제도 공백 속에서 스테이블코인 실증 사례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과거 핀테크 산업 초기처럼 제도 정비에 앞서 서비스를 먼저 쏟아낸 뒤 사후 규율을 논의하는 흐름이 되풀이되는 형국이다.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이 늦어질수록 입법 공백에 따른 혼선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4일 디지털자산업계에 따르면 헥토는 달러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서클과 해외에서 받은 USDC를 달러와 원화로 차례로 전환해 국내 가맹점에 정산하는 모델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스테이블코인 수취와 법정화폐 전환, 외국환 송금·국내 정산까지 서로 다른 인허가가 필요한 업무가 하나의 서비스로 연결되면서 현행법상 허용 범위를 둘러싼 해석이 필요한 상황이다.

헥토월렛원은 가상자산사업자(VASP) 신고를 마쳤지만 외국환 업무 관련 라이선스는 없기 때문이다. 반면 기타전문외국환업 등록과 소액해외송금업 라이선스는 헥토파이낸셜이 보유하고 있다. 계열사 간 이 같은 역할 분담이 현행 제도상 허용되는지는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게 관련 당국의 판단이다. 12월부터 시행되는 개정 외국환거래법도 디지털자산의 국경 간 이동 보고에 초점을 맞춰져 스테이블코인 송금·정산 모델을 직접 규율하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재정경제부 측은 헥토의 스테이블코인 해외 송금·정산 구조에 대한 질의에 “외환법상 관련 부분은 입법 공백에 있는 상황”이라며 “달러와 디지털자산을 반복적으로 교환하는 구조는 현행 프로세스상 애매한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서클을 통해 오프램프(법정화폐 전환)를 하더라도 결국 외국환이 관여되는 구조”라며 “향후 디지털자산기본법 2단계법 입법 이후 외환법 차원에서 스테이블코인을 어떤 식으로 규율할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야 해결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에 헥토월렛원은 개정 외환법 시행 시기에 맞춰 일단 가상자산이전업 등록도 함께 준비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헥토는 자금 입고 과정에서의 슬리피지(체결 가격 오차) 최소화 등 업무상 제약사항 또는 사업 가능 범위를 금융사들과 협의하는 단계로 파악된다.

다만 디지털자산기본법이 아직 발의되지 않은 데다 연내 국회 통과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스테이블코인의 법적 지위와 외국환 거래 과정에서의 취급 기준 역시 여전히 명확치 않다. 관련 사업모델이 외환법뿐 아니라 전자금융거래법 등 여러 법률과 맞물릴 수 있는 만큼, 제도 공백 속에서 사업 모델이 먼저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최근에는 원화 담보형 스테이블코인을 실제 오프라인 결제와 가맹점 정산에 적용하는 서비스까지 거론되고 있다. 비댁스는 디지털자산 결제 솔루션 기업 젝토, 인생네컷 운영사 엘케이벤처스와 함께 원화 스테이블코인 ‘KRW1’을 국내 인생네컷 매장의 결제·정산 시스템에 시범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3사는 국내 인생네컷 매장을 찾는 해외 여행객이 현금 환전이나 카드 결제 없이 KRW1으로 결제할 수 있는 환경을 구현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역시 업계에선 실제 서비스로 이어질 경우 규제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고 본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사업자가 이용자의 자산을 반복적으로 교환하고 그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구조라면 사실상 환전업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사업자마다 자체 법률 검토를 거치겠지만 당국의 명확한 해석이나 제재가 없다는 점이 향후 사업 추진의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실제 사후 제재로 영업을 중단하고 소송에 나서는 경우도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이 보유한 비트코인·테더 등 가상자산을 원화 현금으로 바꿔주는 ATM 서비스를 운영해 온 다윈KS는 지난해 FIU의 거래 중단 요청 이후 서비스를 전면 중단했다. 다윈KS는 규제샌드박스 승인을 받아 기술적 중개·정산 시스템만 제공했다며 처분 취소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7월 해당 서비스를 특정금융정보법상 신고 대상인 VASP 영업으로 판단해 FIU의 손을 들어줬다.

일각에선 제도 공백 속에서 잇따르는 실증 사업이 실제 상용화를 전제로 한 것인지, 혹은 사업성을 부각하기 위한 일회성 프로젝트인지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기존 금융회사나 결제 사업자들도 규제 불확실성 탓에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직접 발행·결제 사업에 쉽사리 나서지 못하는 상황에서 실증 사례를 쌓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디지털자산 업계 관계자는 “기존 사업자들 조차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인데 스테이블코인 실증 발표가 진행되는 건 통상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사업 관련 주체와 자산의 신뢰성까지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는 의미다.

경예은·유혜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