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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를 낮추고, 전쟁을 끝내고, 국경을 봉쇄하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 2기 내건 약속들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물가는 뛰었고, 없던 전쟁이 생겼으며,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 정치권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부시는 2006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하원 30석을 잃으며 참패했다. 2007년 초 부시의 국정 지지율은 37%, 이라크전쟁 지지율은 28%였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33%, 이란전쟁 지지는 31%에 그친다.
경제 성적표는 초라하다. ‘미국의 황금기’를 장담했지만 성장둔화, 재정적자, 국가부채, 고물가에 신음하고 있다. 미국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연율 1.5%까지 떨어졌다. 조 바이든 전임 대통령이 물려준 2.75%를 훨씬 밑돈다. 재정적자는 대규모 감세정책으로 GDP의 6%까지 불어났다. 나랏빚은 사상 처음으로 40조달러(약 5경5645조원)을 넘어서며 ‘2차 세계대전’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연초 갤런당 2달러였던 휘발유 가격은 이란전쟁 탓에 4달러까지 올랐다. 인플레이션은 2% 목표치를 훌쩍 넘어 3%를 웃돌고 있다.
그나마 새로운 것은 관세였다. 관세를 거둬 적자를 메우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이마저도 법원 판단으로 흔들렸다. 올해 관세 예상 환급액은 1660억달러에 이른다. 관세 수입 전망 1210억달러보다 많다.
외교·안보 분야는 참사수준이다. 대통령 취임 전부터 하루 만에 끝내겠다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느덧 5년째다. 장기전만큼은 피하겠다고 공언한 이란전쟁은 6개월을 넘기고 있다.
그런 트럼프의 시선이 이제 한반도로 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싶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동시에 한미연합훈련 규모를 돌연 축소했다. 이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유화제스처에 북한은 보란듯 단거리 탄도미사일 10발을 발사하며 도발했다.
문제는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 자체가 아니다. 무엇을 전제로, 무엇을 주고받기 위해 만나는가이다. 만일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되면 2019년 베트남에서처럼 노딜 회담으로 끝날 것으로 보기 어렵다.
가장 우려되는 시나리오는 북한의 핵보유를 사실상 용인하는 대신 미국이 다른 대가를 얻는 거래다. 그 과정에서 한미연합훈련 축소, 주한미군 역할 조정 등이 협상 카드로 등장한다면 한반도의 안보질서는 근본부터 흔들릴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서울이 협상 테이블의 객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북한이 정상 간 거래를 서두르는 순간, 한국의 안보 이해와 북한의 요구가 충돌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 여파는 한반도는 물론 중국과 러시아, 일본까지 얽힌 동북아 전략구도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트럼프의 실패가 미국에만 머문다면 미국의 문제다. 그러나 그가 국내 정치의 돌파구를 외교에서 찾고, 그 과정에서 한반도 안보를 거래 대상으로 삼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국 정부는 김정은을 만나려는 트럼프의 다음 행보가 단순한 평화 이벤트인지, 아니면 한미동맹과 동북아 안보질서를 바꾸는 거대한 거래의 시작인지 냉정하게 대비해야 한다. 한국은 북미 대화가 한미동맹과 비핵화 원칙을 훼손하지 않도록 분명한 기준과 전략을 세워야 한다.
트럼프에게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은 정치적 이벤트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엔 국가안보의 문제다.
천예선 국제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