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규모 개인전…35점 공개
초창기부터 30여 년 작업 세계 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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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정아 ‘리얼리티 업그레이드&엔드 얼론’. [구정아, 리움미술관 제공] |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전시를 보러 온 관람객도 지나치기 쉬운 미술관 밖의 검은 돌 옹벽. 얼핏 평범해 보이는 벽이지만, 사실은 작가가 직접 하나씩 틈에 숨겨둔 50개의 크리스털이 존재한다. 관람객의 위치와 날씨, 태양의 각도가 맞아떨어졌을 때 우연히 반짝이는 빛을 발견하는 순간, 벽은 이전과 다른 대상이 된다.
구정아 작가(59)의 국내 최대 규모 개인전 ‘구정아: 우스모스(KOO JEONG A: OUSSSMOS)’가 오는 5일 리움미술관에서 막을 올린다. 1990년대 초기작부터 리움미술관을 위해 제작한 신작까지 총 35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에서 ‘우스(OUSSS)’는 작가가 1990년대 중반에 고안한 단어이다. 소리이자 접두사이고 접미사인 이 언어는 하나의 뜻으로 고정되지 않고 다른 의미와 결합한다. 때로는 에너지와 물질의 이름이 되고,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면서 영토를 확장해 왔다. ‘우스’와 우주를 뜻하는 ‘코스모스(COSMOS)’가 결합한 ‘우스모스(OUSSSMOS)’는 서로 다른 사물과 힘, 기억과 시간이 만나고 흩어지며 끊임없이 관계를 만들어 가는 구정아의 작품 세계를 가리킨다.
구정아는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사물과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의 관계에 주목한다. 많은 현대미술 작가가 대상을 강조해서 보여주려 한다면, 그는 시선을 강요하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보도록 만든다. 옹벽에 설치한 ‘리얼리티 업그레이드&엔드 얼론’(2003/2026)처럼 발견할 수도 있고, 끝내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작품을 발견할 가능성 자체를 작품의 일부로 열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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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정아(오른쪽) 작가와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이 8월 31일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구정아 개인전 ‘구정아: 우스모스(KOO JEONG A: OUSSSMOS)’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
구정아는 최근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본다는 것은 이해하는 것, 아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대형 곡면 구조물 ‘그라비타’(2025)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스케이트 파크를 떼어낸 듯한 형태에 인광 안료가 입혀진 작품으로, 조명이 켜져 있는 동안 빛을 흡수했다가 어둠이 찾아오면 푸른빛을 발한다. 옆면의 더월에는 3D(차원) 영상 ‘우스(OUSSS)’(2014~2022)에서 파생된 영상 작품 ‘테라 인코그니타’(2026)가 흘러나온다.
신작 ‘모비우스(MOBIOUSSS)’(2026)는 1998년부터 구정아의 작업에 반복적으로 등장해 온 무한대의 모티프를 폭 8m의 대형 스테인리스 스틸 구조물로 옮긴 작품이다. 옆에서 보면 복잡하게 이어지는 터널처럼 보이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면 무한대 기호(∞) 모양을 하고 있다. 수학자 뫼비우스와 작가의 ‘우스’를 겹쳐 제목을 붙인 이 작품은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보이고, 관람객 자신이 비치거나 사라진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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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정아 ‘모비우스’. [구정아, 리움미술관 제공] |
‘마그넷 시티즈’ 연작(2018, 2025) 9점은 수천 개의 소형 자석이 접착제나 별도의 구조물 없이 오직 자력만으로 서로를 끌어당기며 벽면과 기둥의 형상으로 서 있는 작업이다. 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실제로 작용하는 힘을 드러낸다.
만화 캐릭터 같은 형상의 ‘강세 S’는 발뒤꿈치와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만으로 몸을 지탱하고 있다. 묵직한 청동으로 만들어졌음에도 마치 중력을 벗어난 듯 부유하며,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등에서 반복적으로 출현해 온 ‘우스’의 형상을 이어간다.
구정아는 초창기 나프탈렌, 각설탕 같은 일상의 사소한 사물들을 활용한 작업을 펼쳤다. 샤프심을 활용한 ‘무제’(1998) 역시 그러한 작품이다. 작은 큐브 안에 접착제 없이 세워둔 57개의 연필심은 주변에서 쿵쿵거리기만 해도 무너질 만큼 위태로워 보인다.
하지만 단순히 연약한 물질만은 아니라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그는 “물질적으로 연약하지만 강력한 산업 시스템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그저 나약하게만 봐서는 안 된다”며 “예술 재료로 익숙하지 않으면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공산품을 사용하고 싶어 선택한 재료들”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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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정아 ‘무제’. [구정아. 사진=김현경 기자] |
드로잉 작품들은 그동안 입체 작품으로 잘 알려진 작가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한다. 2005년부터 이어온 1001점의 드로잉을 77개의 나무 상자에 보관한 ‘R’(2005)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공개된다. 그러나 전체를 한번에 볼 수는 없다. 상자는 세 공간에 나뉘어 놓이며, 벽에 걸리는 3개의 드로잉은 작가의 선택에 따라 매달 바뀐다.
우스나 강세를 연상케 하는 캐릭터를 그린 회화 ‘기인상봉’은 당초 한 화면에 배치했던 두 캐릭터를 분리해 2점으로 만든 작품이다. 다른 작품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을 향하는 캐릭터를 왼편에, 왼쪽을 향하는 캐릭터를 오른편에 배치해 관람객이 두 점을 모두 본 후에야 연결할 수 있도록 만든다.
바닥에 펼쳐진 붉은색과 푸른색의 기하학적 패턴 ‘나&당신’(2026)은 약 15년 전 인광 스케이트 파크 내부에 적용하려 구상했지만 실현되지 못한 이미지를 이번에 구현했다. 곡선에 점을 찍으면 유령 ‘캐스퍼’ 같은 형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위트는 작가 본인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결과물이다. 구정아는 자신을 “좀 웃기는 작가”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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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정아 ‘덴시티, GITD’. [구정아. 사진=김현경 기자] |
작가의 독창적인 세계는 고미술 상설전시실에 전시된 세 점의 작품으로 이어진다. 수백 년 전 유물이 놓인 가운데 광물 조각들로 이뤄진 ‘디어리스트 모모’(2025)나 자기장으로 공중에 떠 있는 돌 ‘덴시티, GITD’(2025) 같은 작품들이 예고 없이 나타난다. 이들 작품은 과거와 현재가 한 장소에서 겹치는 순간을 만든다.
평소 건축과 철학에도 관심이 많다는 작가는 오랜 시간 왜 1초 전과 1초 후는 다 같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품고 작업해 왔다고 밝혔다.
각자의 시간과 방법으로 천천히 바라보다 보면 새로운 연결을 발견할 수 있는 이 전시는 12월 27일까지 이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