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과 백악관, ‘금리 충돌’ 코스 들어섰다”

워시, 잭슨홀서 인플레 대응 기준 제시
9월 금리인상 확률 35%→57.5% 급등
중간선거 앞둔 트럼프와 충돌 가능성
“금리 올리면 충돌, 동결 땐 신뢰 잃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22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케빈 워시 신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취임식에서 워시 의장과 대화하고 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홍성원 기자]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잭슨홀 연설에서 물가 우려를 내세우며 취임 후 가장 선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인플레이션이 둔화하지 않으면 기준금리를 인상하겠다는 신호로 시장은 해석하고 있다. ‘조용한 연준’을 표방해온 그의 방향 선회는 곧바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충돌 가능성을 키울 것이라는 관측으로 이어졌다. ‘금리 인하’에만 관심을 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본인이 선택한 연준 의장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부담을 높이는 금리 인상을 하도록 놔둘 순 없다는 현실론이 작용한 것이다.

▶워시 “나의 기준은 이렇다”…‘침묵→설명’=29일(현지시간) 로이터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워시 의장은 전날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경제정책 심포지엄 연설에서 자신의 기준을 이전보다 선명히 드러냈다. 그는 “나의 기준은 이렇다. 기조적 물가상승률이 목표치를 향해 분명하고 충분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만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겐 할 일이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단기 금리는 연준의 양대 책무 달성을 위한 주된 수단”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세부적인 지표들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도 설명했다. 그는 연준이 선호하는 물가지표인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가 7월 전년 동월 대비 3.7% 상승한 점 등을 거론하며 “수치들이 더 우려스럽다”고 평가했다.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3.4%를 기록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모두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준다”며 “인플레이션이 우리 목표치인 2%를 웃돌고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자신의 판단 기준을 좀체 드러내지 않았던 워시 의장으로선 보폭을 달리한 것으로 읽힌다. 시장이 원하던 금리 경로에 대한 명시적 약속을 피하면서도, 어떤 조건에서 정책 대응에 나설지에 대한 ‘기준선’을 보다 분명히 그은 것으로 해석됐다.

WSJ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겠다는 결의를 가장 강력하게 표명했으며, 연준이 어떻게 그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명확한 설명을 내놓았다”고 평가했다.

▶시장, 9월 금리인상에 베팅…“워시의 행동 봐야”=시장 반응은 곧바로 나타났다.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에서 9월 금리 인상 확률은 발언 전 35% 안팎에서 57.5% 수준으로 뛰었다. 반면 동결 확률은 42.5%로 낮아졌다.

워시 의장의 이번 발언이 신뢰를 얻으려면 결국 행동을 봐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아디티야 바브 미국 경제조사 책임자는 “이제 8월 고용과 물가 지표가 매우 약하지 않은 한 9월 금리 인상을 단행해야 할 책임은 워시에게 있다”며 “그렇지 않으면 그는 오늘 얻은 신뢰를 아마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준은 다음 달 15∼16일 FOMC를 열어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워시 의장이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고 금리 인상을 시사하면서 금리 인하를 공개적으로 압박해온 트럼프 대통령과 부딪힐 가능성도 부각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워시 의장이 11월 중간선거를 불과 몇 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원하지 않는 금리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이 있다며 연준과 백악관이 ‘충돌 코스’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NYT)도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견해를 지지할 인물을 찾는 검증 과정을 거쳐 워시 의장을 낙점했다는 점을 짚었다.

워시 의장이 중간선거 직전 금리를 올릴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저금리 요구와 정면으로 배치되면서 백악관과 연준 간 긴장이 고조될 것이라는 취지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모리스 옵스펠드 선임연구원은 워시 의장이 금리를 올리면 트럼프 행정부와 충돌하고, 동결하면 물가 대응 의지에 대한 시장 신뢰를 잃을 수 있는 진퇴양난에 처한 것과 관련해 “그는 여러 표적을 등에 지고 있다. 이길 수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