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제본업계 젊은 견습생 유입…“사람이 만든 것에 가치”
금속공예 견습 2명 뽑는데 160명 몰려…극장 한 자리엔 728명
美서도 용접·정비 등 인기…AI 노출 청년층 고용 격차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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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지능(AI)이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빠르게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영국 젊은층 사이에서 제본·금속공예 등 사람의 손기술이 필요한 전통 수공업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게티이미지] |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인공지능(AI)이 회계사부터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변호사까지 신입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파고들면서 젊은층이 수백년 된 ‘손기술’로 눈을 돌리고 있다. 대학을 졸업해 컴퓨터 앞에 앉는 대신 책을 손으로 묶고 금속을 두드리거나 배를 만드는 길을 택하는 것이다. AI가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이른바 ‘AI 프루프(AI-proof·AI에 안전한)’ 직업을 찾으려는 움직임이다.
29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최근 영국 젊은층 사이에서 제본과 금속공예, 보트 제작 등 전통 수공업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정치학을 전공한 27세 에린 롤리는 영국 슈롭셔의 러들로 북바인더스에서 2년차 제본 견습생으로 일하고 있다. 그가 배우는 기술의 핵심은 수백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빅토리아 시대에 만들어진 압착기와 금박 기계, 풀칠용 붓 등을 이용해 대부분의 공정을 손으로 작업한다.
롤리는 자신의 경력을 미래에도 지키기 위해 오히려 디지털 세계를 떠나는 길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오랫동안 화면을 바라보는 생활에서 벗어나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이 직접 만든 물건에는 그 자체로 더 큰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AI 시대를 맞아 오히려 사라질 위기에 놓였던 전통 기술이 다시 주목받는 역설적인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러들로 북바인더스 최고경영자(CEO)이자 4대째 제본업에 종사하는 폴 키드슨은 현재 영국에서 수작업 방식으로 운영되는 제본업체가 50곳도 남지 않은 것으로 추산했다. 1950~1970년대를 거치면서 관련 교육이 급격히 줄었고 1980년대 초에는 정식 견습 과정마저 대부분 사라졌다.
하지만 최근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데 만족감을 느끼려는 젊은층이 유입되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한때 후계자를 찾지 못해 사라질 것을 걱정했던 기술이 AI 시대에 새로운 생존 직업으로 부상한 셈이다.
젊은층의 관심은 제본에 그치지 않는다. 예술 금속공예를 전문으로 하는 영국 디자인업체 콕스 런던은 지난해 견습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올해 단 2명의 견습생을 뽑는 자리에 16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 경쟁률이 80대 1을 넘어선 것이다.
콕스 런던에서 견습생으로 일하는 러키 에머슨은 AI가 창작 분야까지 빠르게 침투하는 상황에 불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사람이 직접 재료를 만지고 물건을 만들어내는 작업은 AI가 쉽게 대신할 수 없다고 봤다. 독창성을 원하는 소비자에게 사람이 직접 만든 작품의 가치는 계속 남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영국 내셔널시어터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이곳은 정보기술(IT)뿐 아니라 전통 가발 제작과 의상, 무대 소품, 금속공예 등을 가르치는 견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일부 기술은 숙련 인력의 고령화로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내셔널시어터에서 일하는 금속공예 기술자들은 모두 50세 이상이며 전통 가발 제작 기술 역시 숙련자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극장 측이 젊은 견습생을 직접 육성하는 이유다.
지원 경쟁은 치열하다. 과거에는 견습직 한 자리에 100명이 지원해도 인기가 높은 편으로 여겨졌지만 최근 채용에서는 한 자리에 무려 728명이 지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AI를 피해 수공업 일자리를 찾는 과정에는 다시 AI가 등장하고 있다. 내셔널시어터 측은 견습직에 AI로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지원서가 대거 들어오면서 수백개의 지원서를 일일이 검토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젊은층의 ‘손기술 회귀’는 영국만의 현상도 아니다. 미국에서도 AI가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용접과 항공기 정비, 배관·냉난방 설비 등 숙련 기능직을 선택하는 젊은층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AI 충격이 이제 막 노동시장에 진입한 젊은층에 집중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미국 스탠퍼드대 디지털경제연구소가 이달 공개한 연구에 따르면 AI 노출도가 높은 직종에 종사하는 22~25세 근로자의 고용은 AI 노출도가 낮은 직종의 같은 연령대와 같은 속도로 증가했다고 가정했을 때보다 약 19%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 격차는 지난해 7월 분석 당시 15%에서 올해 6월 19%로 확대됐다.
연구진은 특히 변화가 젊은 직원을 대거 해고하는 방식보다 신규 채용을 줄이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현장에서 반복적인 경험과 숙련을 통해 얻는 ‘암묵적 지식’의 중요성이 큰 직업에서는 숙련 근로자의 고용이 상대적으로 견조했다.
다만 연구진은 이 같은 고용 격차가 AI 때문에 발생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금리와 교육 수준, 재택근무 등 노동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도 있는 만큼 AI와 청년 고용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가로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