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등 100여점…국내 최대 규모
“아름다운 것 통해 우리의 취약성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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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셸 오토니엘 ‘황금 연꽃(Gold Lotus)’(2023). [김현경 기자] |
[헤럴드경제(부산)=김현경 기자] “시적인 세계에 들어간다는 생각을 하면서 전시장을 지나가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매달려 있는 유리 구슬에 주변의 모습들이 거꾸로 뒤집혀 비치는 모습을 살펴봐 주시면 좋겠어요.”
프랑스를 대표하는 현대미술가 장-미셸 오토니엘(62)이 오는 12월 31일까지 부산의 복합문화공간 F1963 에서 개인전 ‘사랑 안의 미로(In the Labyrinth of Love)’를 개최한다. 작가가 부산에서 처음 선보이는 개인전으로, 지난해 프랑스 아비뇽 전역에서 개최한 전시 ‘오토니엘 코스모스 혹은 사랑의 유령’을 바탕으로 F1963 공간에 맞춰 새롭게 구성한 장소특정적 전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최근 2년간 제작한 작품 100여 점을 소개한다. 15년 전부터 여러 차례 한국을 찾은 작가지만, 전시 규모로는 이번이 가장 크다.
‘사랑 안의 미로’라는 전시 제목처럼 전시 공간은 여러 개의 분리된 방이 이어진 미로처럼 구성돼 있다. 각 공간마다 서로 다른 작품이 나타나며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오토니엘은 지난 27일 F1963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로는 두려운 것을 마주하는 공간이다. 현대인들은 현실 혹은 진정한 감정을 마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사람들이 겪었으면 하는 것을 미로로 나타냈다”며 “미로는 물리적인 미로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미로이기도 하다. 감정과 헌신, 기쁨과 슬픔이 얽혀 있는 하나의 미로”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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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셸 오토니엘 개인전 ‘사랑 안의 미로(In the Labyrinth of Love)’ 전시 전경. [F1963 제공] |
작가는 사랑에서 출발해 자연과 우주로 확장되는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
전시는 야외 정원인 달빛가든에 놓인 ‘황금 연꽃(Gold Lotus)’(2023)으로 시작한다. 연꽃은 생명력과 재생, 치유를 상징하며 예술을 통한 회복의 의미를 함축한다. 작가가 오랫동안 탐구해 온 자연 속에 설치된 작품은 명상적인 순간을 선사한다.
석천홀에 들어서면 공중에 매달린 조각 ‘매달린 연인(Amant Suspendu)’과 ‘목걸이(Collier)’ 연작이 관람객을 맞는다. 바닥에는 약 2000개의 ‘원더블록(Wonder Block)’으로 만든 ‘푸른 강(Rivière Bleue)’(2026)이 흐른다.
오토니엘에게 유리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액체에서 고체로 굳어지는 과정 속에서 생긴 기포와 불순물, 미세한 흠집을 품어 상처와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재료이다. 이탈리아 무라노의 유리 장인들과 협업해 제작하는 과정 역시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회복하는 행위가 된다. 작가는 누구나 살면서 마주하는 상처가 예술로 치유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유리라는 매체를 통해 전달한다.
꽃을 주제로 한 석판화 연작은 오토니엘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어린 시절 머물렀던 미국 마이애미의 자생식물인 시계꽃, 아비뇽을 상징하는 꼭두서니, 일본 여행에서 영감을 받은 벚꽃이 작가의 시선을 거쳐 추상적인 형태로 변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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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셸 오토니엘이 27일 부산 F1963에서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김현경 기자] |
아비뇽 교황청 대예배당의 천장을 수놓았던 지름 4m 크기의 ‘코스모스(Cosmos)’와 열두 별자리를 형상화한 ‘황도 십이궁(Zodiac)’ 연작은 전시의 절정을 이룬다. 거대한 행성을 연상시키는 조각을 둘러싸고 궤도를 그리듯 배치된 별자리는 미시적 존재인 인간과 거시적 세계인 우주를 연결한다.
작가는 “저에게 우주는 모든 별이 평화롭게 배열된 상태를 뜻한다. 코스모스는 카오스의 반의어다.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의 세계가 지닌 취약성을 이해하도록 도와준다”며 “각각의 작업들이 마치 일종의 초상처럼 우리가 이것을 들여다볼 때 이것도 우리를 들여다본다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시의 마지막은 ‘원더블록(Wonder Block)’, ‘프레셔스 스톤월(Precious Stonewall)’, ‘오라클(Oracle)’ 연작 등이 장식한다. 오토니엘은 2010년 인도 피로자바드를 여행하던 중 언젠가 자신의 집을 짓기 위해 흙벽돌을 쌓아 둔 사람들을 만났다. 이후 벽돌을 단순한 건축 재료가 아니라 삶과 미래를 향한 희망의 기본 단위로 바라보게 됐고, 원더블록을 작업의 핵심 모듈로 발전시켰다.
전시장의 중앙에는 작가가 지금까지 선보인 것 중 가장 큰 규모의 ‘원더블록’이 설치된다. 높게 솟은 유리 벽돌들은 미로 속의 이정표처럼 자리하며 관람객을 그 안으로 이끈다. 벽면에 걸려 있는 소형 조각들은 사람의 자화상처럼 관람객을 지켜보며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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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셸 오토니엘 ‘원더블록(Wonder Block)’, ‘프레셔스 스톤월(Precious Stonewall)’, ‘오라클(Oracle)’. [김현경 기자] |
이번 전시는 부산이라는 도시와 F1963이라는 공간에서 열려 특별함을 더한다. 부산에선 오는 29일부터 11월 1일까지 부산비엔날레가 개최된다. F1963은 고려제강의 와이어 공장으로 출발한 곳이 기존 건축과 시간의 흔적을 간직한 채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단장한 곳이다.
작가는 “F1963은 미술뿐 아니라 음악, 퍼포먼스,책으로도 둘러싸인 도시이기 때문에 진정한 문화 공간이고, 전시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또한 부산비엔날레 기간과 동시에 전시가 열리기 때문에 보다 연령대가 어린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1964년 프랑스 생테티엔서 태어난 오토니엘은 현재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1988년 파리-세르지 고등미술학교를 졸업했고, 1992년 독일 카셀 ‘도큐멘타 IX’에서 유황 조각을 선보이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후 파리 팔레-루아얄–루브르박물관역 의 ‘야행자들의 키오스크(Le Kiosque des Noctambules)’(2000), 베르사유 궁전 정원의 ‘아름다운 춤(Les Belles Danses)’(2015), 루브르박물관의 의뢰로 제작한 ‘루브르의 장미(La Rose du Louvre)’(2019) 등 공공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파리 프티 팔레,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상하이 롱 뮤지엄 웨스트 번드 드에서 개인전을 했으며 지난해 아비뇽 교황청을 비롯한 10개 장소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가졌다. 그의 작품은 파리 퐁피두센터, 뉴욕 현대미술관, 서울 리움미술관, 베니스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등에 소장돼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