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장 25개’ 규모 빙하 사라지며 발생한 네팔 대홍수…더 강하게, 더 자주 온다

네팔·티베트 ‘2차 홍수’ 공포
사고후 빙하면적 18만5000㎡ 줄어
빙하 떠받치던 기반암도 붕괴 추측
“기후변화, 대규모 붕괴·연쇄 재해로”
이틀만에 사망 359명·실종 910명


네팔 라수와 지역에서 26일(현지시간) 갑작스럽게 발생한 홍수와 산사태로 인해 현지 트리슐리강에 건설 중인 수력발전댐이 무너지고 있다. [출처 X]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네팔 대홍수는 붕괴한 빙하에서 시작된 대규모 산사태가 시발점이 됐을 것이라는 지질학자들의 분석 결과가 나왔다. 학자들은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 같은 재해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경고도 내놨다.

워싱턴포스트(WP)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은 27일(현지시간) 이번 재난에 대해 지질학자들이 랑탕 리룽산 일대 해발 약 1만600피트(약 4900m) 지점에서 빙하 일부가 떨어져 나가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 빙하는 약 4000피트(약 1200m) 아래 계곡으로 추락했고, 그 충격으로 얼음이 산산이 부서지고 녹으면서 막대한 양의 물이 순식간에 쏟아져 대규모 홍수로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암석과 토사까지 뒤섞이면서 빙하·암석 눈사태의 파괴력은 한층 커진 것으로 보인다.

위성 모니터링업체 플래닛랩스가 촬영한 고해상도 영상을 보면 사고 전에는 좁은 계곡 위 약 4000피트(약 1200m) 지점에 거대한 빙하가 있었고, 계곡 아래로는 굽이치는 렌데강이 흐르고 있었다. 사고 후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빙하 면적이 약 200만제곱피트(약 18만5000㎡)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프로축구 경기장 약 25개에 해당하는 면적의 빙하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셈이다.

홍수 규모가 워낙 컸던 탓에 과학자들은 빙하 일부만이 아니라 빙하를 떠받치던 기반암 덩어리까지 함께 무너졌을 가능성도 들었다.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대에서 지구과학·지속가능성을 연구하는 우메시 하리타샤 교수는 이번 사고가 2021년 인도 차몰리에서 일어난 재난과 비슷한 유형인지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에도 암반과 빙하가 동시에 무너지면서 대규모 암석·빙하 눈사태가 발생한 바 있다. 하리타샤 교수는 “이 정도 규모의 홍수와 잔해가 하류까지 밀려오려면 엄청난 양의 땅이나 얼음이 한꺼번에 무너져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기후변화가 고산지대의 암반과 빙하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환경을 조성하면서, 이번과 같은 대규모 홍수 재해의 위험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뉴질랜드 지구과학연구소 마운틴스 투 시(Mountains to Sea) 프로그램의 사이먼 콕스 수석 과학자는 “기후변화는 고산지대의 암반과 빙하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조건을 만들어내고 있다”라며, 이런 변화가 이번과 같은 대규모 붕괴와 연쇄 재해를 더 자주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를 이번 붕괴의 유일하거나 직접적인 원인으로 단정해선 안 된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기온 상승과 빙하 융해가 이번 참사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크다고 보고 있다.

콕스는 온난화가 가파른 산비탈을 지탱하던 얼음의 지지력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빙하 융수를 늘리고, 결빙·해빙과 강우 패턴까지 바꿔놓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변화가 산사면을 약화시켜 일부 지역에서 대규모 붕괴가 일어날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이미 비슷한 재해가 반복적으로 일어나, 자연의 ‘경고’가 있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근 몇 년 사이 이 지역에서는 이번보다 규모는 작지만 비슷한 유형의 급류 재해가 잇따랐다.

지난해에는 티베트와 네팔 국경의 지룽 지역에서 홍수가 발생했고, 2024년에는 네팔 셰르파족 마을 타메에서 빙하호 붕괴로 인한 홍수가 일어났다. 앞서 2023년에는 인도 북동부 시킴주에서도 빙하호가 무너지며 대규모 홍수가 발생한 바 있다.

힌두쿠시 산악지대 전반에서는 홍수와 산사태, 눈사태, 가뭄이 점점 더 강하고 잦아지는 추세다. 네팔에 본부를 둔 국제통합산악개발센터(ICIMOD)는 물과 토지, 대기의 급격한 변화가 이 지역 주민들에게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ICIMOD의 파루크 아잠 수석 빙권 전문가는 산악지대 기온이 오르면서 지구 표면에서 얼음으로 덮인 영역인 ‘빙권’이 과거보다 훨씬 취약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강한 적설 융해와 지진 활동이 맞물리면서 첫 번째 암석·빙하 눈사태를 촉발했고, 이것이 다시 하류의 돌발 홍수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유엔은 앞서 2023년 지구 온난화로 네팔의 만년설 산악지대가 불과 30여 년 만에 얼음 면적의 약 3분의 1을 잃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유엔은 네팔 빙하가 녹는 속도가 직전 10년 동안 그 이전 10년보다 65% 빨라졌다고 설명했다. 이번 대홍수는 네팔 빙하 유실이 얼마나 큰 재해를 불러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직접적인 증거다.

벤저민 호턴 홍콩시립대 에너지·환경대학 학장은 이번 참사가 전형적인 ‘복합재해’ 사례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복합재해란 지진 같은 자연현상이 빙하 감소, 영구동토 융해, 산사면 불안정 등 기후변화에 따른 변화와 맞물리면서, 각 요인이 따로 발생했을 때보다 훨씬 복잡하고 큰 피해를 일으키는 현상을 뜻한다.

한편, 네팔 경찰의 집계에 따르면 이번 대홍수로 인한 사망자는 이날 현재 359명으로 급증했다. 전날 160명으로 집계됐던 것에서 하루 만에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실종자는 910명으로 이 중 510명 가량이 외국인인 것으로 전해졌다. 네팔 접경 지역인 중국 티베트자치구 르카쩌시 지룽현에서도 이번 홍수 원인과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 산사태가 발생, 이날까지 3명이 사망하고 558명이 실종됐다. 네팔과 중국 티베트자치구에서 발생한 실종자를 합하면 1400명이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