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만에 사원서 CEO로 ‘샐러리맨 성공 신화’
유펜서 기계공학·심리 배운 ‘전형적 엔지니어’
수영대표 이색경력, 졸업후 VR 스타트업 입사
잡스 휘하 고속승진, 애플 주요제품 개발 지휘
14년만 스마트폰 1위 ‘아이폰 에어’ 흥행주역
“잡스-혁신, 쿡-관리…터너스는 제품 개발자”
AI·지정학 위기 우려 속 아이폰 20주년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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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의 차기 최고경영자(CEO·왼쪽)로 내정된 존 터너스 수석부사장이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아카데미 영화 박물관에서 열린 애플 TV ‘테드 래소’(Ted Lasso) 시즌4 시사회에 참석하고 있다. |
“회사를 이끌기에 존보다 더 나은 사람은 없습니다. 존이 애플의 다음 시대를 이끌게 돼 더없이 기대됩니다.”
애플의 수장인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7월 30일(현지시간) 애플의 2026회계연도 3분기 실적발표 콘퍼론스콜에서 차기 CEO로 예정된 존 터너스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CEO 자격으로는 마지막 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이기도 했던 이 자리에서 쿡은 “경영권 승계가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며 “존의 리더십에 전폭적인 확신을 갖고 있다”며 터너스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드러냈다.
2011년 애플의 상징과도 같은 스티브 잡스가 지병으로 사망하고 쿡이 애플을 이끈지 15년 만에 애플은 9월 새 사령탑을 맞게 된다. 쿡의 바통을 이어받는 터너스는 애플 수석부사장으로, 26년간 회사에 몸담아온 ‘애플맨’이다. 쿡이 51세에 애플 CEO가 된 것처럼 터너스 역시 같은 나이에 애플의 수장이 된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사실 터너스가 수많은 후보자를 제치고 차기 애플 수장으로 낙점된 것은 이미 예견된 결과였다. 차기 애플 CEO 후보자로는 소프트웨어 책임자 크레이그 페더리기, 서비스 책임자 에디 큐, 마케팅 총괄 그렉 조스위악, 리테일·인사 책임자 디어드리 오브라이언 등 쟁쟁한 실력자들이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미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외신은 쿡 CEO가 지난해부터 터너스를 중심으로 후계 구도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치열한 인공지능(AI) 경쟁 속에서 터너스가 잡스처럼 혁신형 리더가 될 지, 쿡 CEO처럼 안정형 리더가 될 지, 아니면 자신만의 철학으로 또 다른 애플의 혁신을 창조할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시가총액 4조5000억달러(약 6200조원)에 달하는 거대기업 애플이 기술 선도기업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려면 고객과 투자자들을 놀라게 할 혁신적인 기술과 아이디어를 내놔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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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운동 우수했던 육각형 학생…대학 수영팀 활동도
1975년 5월생인 터너스는 전형적인 공대생이다. 1993년 미국 아이비리그 명문인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부전공으론 심리학을 선택했다.
그가 애플 내부에서도 ‘전형적인 하드웨어 엔지니어 출신’으로 불리는 데에는 학창시절 졸업논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애플 인사이더에 따르면 터너스는 재학 당시 사지마비 환자가 머리 움직임으로 조작할 수 있는 기계식 팔을 졸업 프로젝트로 개발하는 등 공학적 재능을 일찌감치 드러냈다.
물론 터너스가 전공에서만 재능을 보인 것은 아니다. 그는 학업뿐만 아니라 운동에도 적극적인 선수였으며, 실력 또한 출중했다.
터너스는 펜실베이니아대로 입학한 신입생 때부터 대학 4년 내내 수영 대표팀 선수로 활동했다. 자유형과 개인혼영 종목에서 경쟁했던 그는 학교 기록에도 이름을 남길 정도의 실력자로 알려졌다. 오늘날까지 큰 키와 마른 체형을 유지하고 있어, 대학 수영선수였던 당시의 체격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터너스는 1997년 졸업 후 가상현실(VR) 스타트업인 버추얼리서치시스템즈에 4년간 엔지니어로 몸담았다. 이 무렵 그는 VR용 헤드셋을 개발했다. 이에 대해 애플 인사이더는 당시 경험으로 애플의 스마트홈 로봇과 스마트글라스가 나왔을 것으로 추정했다.
인생 절반을 애플에 헌신…디테일 강한 ‘HD’ 전문가
2001년 애플 디자인팀에 입사한 터너스는 이후 25년간 회사를 지켜온 ‘정통 애플맨’이다. 애플 창업자인 잡스나, 외부 영입으로 시작해 CEO가 된 쿡과는 다르다. 평범한 사원으로 입사해 실력을 인정받고 기업의 CEO까지 오른 ‘샐러리맨 성공신화’라는 점에서 돋보인다.
애플에서 터너스의 첫 프로젝트는 플라스틱 소재의 데스크톱 모니터 ‘시네마 디스플레이’였다. 그는 이 제품 개발 과정이 “크고 복잡한 투명 플라스틱 부품을 다루는 등 매우 디테일 중심 작업이었다”고 회고했다. 이후 애플은 알루미늄 소재로 전환했다.
터너스는 “이런 경험들은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는 능력을 키워줬다”며 “새로운 시도를 할 자신감과 해결책을 찾을 때까지 계속 나아가는 끈기를 길러줬다”고 말했다.
터너스는 당시 애플 지휘봉을 잡고 있던 잡스 밑에서 승진을 거듭하는 등 빠르게 성장해나갔다. 그는 입사 3년 만에 매니저가 됐고, 2005년에는 아이맥 하드웨어 엔지니어링을 총괄하며 요직을 도맡았다. 이 과정에서 터너스는 중국 등 아시아 공급망 확대에도 기여했다.
운영체제 전문가인 그는 애플 제품이 시장에서 잘 팔리도록 기능을 최적화해 탑재하는 역할을 했다. 터너스는 특히 아이맥 유리 화면을 자석으로 고정하는 혁신적 설계를 추진했다.
아이패드 첫 세대부터 모든 세대 제품 개발을 이끈 것도 바로 터너스다. 이외로 에어팟, 5G 아이폰 개발을 총괄했고, 맥의 인텔 칩을 애플 자체 설계 칩 ‘애플 실리콘’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도 핵심 역할을 했다. 애플 제품 전반에서 터너스의 손을 거치지 않은 제품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터너스는 2013년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부사장, 2021년 수석 부사장에 오르는 성공 가도를 달렸다. 25년간 애플의 거의 모든 제품 개발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놀랍지 않은 결과다. 터너스는 지난해 애플 최초의 슬림폰인 ‘아이폰 에어’를 직접 공개하기도 했다. 이는 쿡을 이어 ‘터너스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상징적인 일로 평가받는다. 그가 총괄한 아이폰 에어는 2017년 이후 최고의 혁신으로 평가받으며 아이폰 17 시리즈의 흥행을 이끌었고, 애플은 14년 만에 판매 대수 기준으로 스마트폰 시장 1위를 탈환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혁신가, 팀 쿡 CEO가 공급망 관리의 천재라면, 터너스는 실제 제품을 개발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터너스가 차기 애플 수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성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터너스와 함께 일했던 직원들 사이에선 그가 공급망 이해도가 뛰어나며, 세심하고 온화한 협업형 리더라는 평가가 나온다. 직원들에게 권한을 부여할 만큼 협업을 중시하는 스타일에선 쿡과 쏙 빼닮았기도 하다.
실제로 일터 바깥의 터너스는 취미를 즐기는 여느 직원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일이 끝난 뒤 동료들과 오프로드 레이싱을 하러 갈 정도로 직원들과 격의 없이 지내고 있다. 조직 내 신임이 두텁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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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6월과 2019년 6월 미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서 열린 애플 세계 개발자 회의(WWDC)에서 신제품을 설명하는 존 터너스 부사장. [로이터] |
AI 격랑 속 혁신 이끌까…터너스가 마주할 숙제들
터너스가 차기 애플 CEO로 지명될 것이란 점은 기정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그가 AI 격랑 속에 다시 한번 애플에 혁신의 시대를 가져올지는 미지수다. 애플은 현재 ▷생성형 AI의 존재감 약화 ▷시리(Siri) 경쟁력 후퇴 ▷오픈AI·구글·메타 추격 ▷혁신 기업 이미지 쇠퇴 등 AI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가장 시급한 숙제는 애플의 AI 혁신이다. 자체 기술을 고집하던 애플은 오픈AI의 챗GPT와 구글의 제미나이를 운영체제에 통합하면서 자존심을 구긴 상태다.
애플은 음성 인식 비서인 ‘시리’ 업그레이드를 매번 지연시키며 AI 경쟁에서 가장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AI폰 경쟁에선 삼성에 밀렸다는 게 업계 전반의 진단이다. 실제로 애플은 2024년 자체 AI 모델 ‘인텔리전스’를 내놨다가 부진한 성적을 거뒀으며, 삼성이 이미 출시한 폴더블폰도 다음달에나 처음 선보일 전망이다.
휴대전화 외에도 애플은 차세대 AI 기기 개발에도 뒤처질 위기에 처해있다. 경쟁사인 구글과 메타는 스마트글라스를 차세대 AI 기기로 낙점해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메타는 지난해 9월 렌즈에 디스플레이를 내장한 ‘메타 레이밴 디스플레이’를 내놓으며 상용화에 성공했고, 구글도 올해 자사 AI모델 제미나이를 적용한 스마트글라스를 출시할 계획이다.
이 때문에 AI 모델과 서비스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는 애플이 AI·소프트웨어 전문가 대신 하드웨어 중심 경력을 쌓아온 터너스를 차기 CEO로 낙점한 것에 대해 시장은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실제로 터너스는 애플 카, 비전프로 헤드셋, 가정용 스피커 등 애플이 새로운 도전을 추진할 때마다 반대표를 던진 바 있다.
애플 전문 기자인 블룸버그의 마크 거먼은 “터너스 임명에 가장 큰 반대 논리는 애플에 더 판을 흔들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는 점”이라며 “터너스는 완전히 새로운 제품 카테고리를 시장에 내놓거나 회사를 새로운 성장 국면으로 이끌 수 있을지 입증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CCS 인사이트의 수석 애널리스트 벤 우드는 “시장의 관심은 애플이 올해 초 AI 선도 기업인 구글과 협력해 시리를 보다 자연스럽고 다기능적으로 개선한 이후 어떤 방향을 취할지에 집중될 것”이라며 “애플이 자체 AI 플랫폼 구축에 얼마나 투자할지, 아니면 다른 기업의 모델과 플랫폼에 얼마나 의존할지가 핵심 전략적 질문”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애플은 지정학적 불확실성이라는 환경에도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다.
애플 아이폰의 약 80%는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다. 한때 중국은 애플 연간 매출의 4분의 1을 차지한 주요 시장이기도 했다. 애플이 인도, 베트남, 태국 등으로 생산을 일부 이전하며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디스플레이 등 핵심 부품은 여전히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애플의 중국산 메모리 반도체 도입에 반대 입장을 드러내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13일 텍사스 휴스턴에서 열린 애플 첨단제조센터 개소식에서 “훌륭한 미국 기업들이 중국산 메모리를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메모리 문제에는 다른 해결책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애플의 중국산 메모리 도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해석했다.
쿡의 경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관계를 구축하며 관세 위협 등 정책 리스크를 관리했을 정도로 최근 몇 년간 기술 업계의 대표적 ‘외교관’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실제로 쿡은 지난해 트럼프로부터 24캐럿 금 받침이 달린 유리 기념패를 선물받기도 했다. 트럼프 역시 “쿡이 종종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고, 자신도 가능한 한 도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NYT는 “터너스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하고,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과 반도체 공급 차질 리스크도 관리해야 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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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6월과 2019년 6월 미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서 열린 애플 세계 개발자 회의(WWDC)에서 신제품을 설명하는 존 터너스 부사장. [AP] |
‘존 터너스 체제’ 애플…내년 ‘아이폰 20주년’ 승부수
터너스는 조만간 자신의 성과를 입증할 제품들을 공개하며 입지를 공고히 할 것으로 보인다.
IT 전문 매체 폰아레나 및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애플은 내년 출시 예정인 ‘아이폰 20’에 4면 곡면 디스플레이를 전격 도입할 예정이다. 내년 아이폰 출시 20주년을 맞아 스마트폰 디자인의 패러다임을 바꿀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상하좌우 모든 테두리가 곡면으로 처리된 이른바 ‘워터폴(폭포) 디스플레이’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실패 혹은 성공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기존 아이폰의 정체성이었던 평면적인 전면 디자인에 대대적인 변화를 준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화면 끝을 살짝 구부리는 데 그쳤던 과거의 엣지 디스플레이와 달리 워터폴 디스플레이는 기기 측면 전체를 화면이 감싸는 형태다.
업계에서는 아이폰 20이 터너스 체제 아래 애플이 지향할 향후 10년의 하드웨어 방향성을 가늠할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애플이 터너스의 체제에서 AI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연구개발(R&D)과 인수합병(M&A) 등 자금 운용 전략에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도 제기됐다.
왐시 모한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터너스가 서비스 사업 확대와 제품 생태계 구축, 개인정보 보호 강화 등 핵심 전략은 쿡 체재 때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보유 현금과 부채를 일정 비율로 맞추는 재무 목표인 ‘순현금 중립’ 목표에선 벗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R&D, 설비투자(CAPEX), M&A 등에 대한 투자 확대 시기를 예고하는 신호일 수 있다 분석이다.
실제로 애플은 이미 AI 경쟁력 강화를 위해 R&D 투자 규모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다른 빅테크 기업들과 비교해선 여전히 작은 편이다. 애플의 회계연도 3분기 R&D 지출은 117억달러(약 16조20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32% 증가했지만, 아마존의 경우 2분기 설비투자 규모가 540억달러(약 74조8000억원)에 달했다.
이에 투자전문매체 배런스는 “터너스가 애플의 지갑을 지금보다 더 활짝 열기에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영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