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 그림부터 대표작까지 500여 점
‘한국적 맥락’에서 작가의 작품 세계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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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둥지_들’(2024). [서도호, 리만머핀, 빅토리아 미로 제공] |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한국에서 자랐고 이후 외국에서 오래 살았지만 뿌리는 한국입니다. 한국 관객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계속 쌓였었는데, 이번 전시는 작업의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최대한 나누는 자리입니다.”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서도호(64)의 대규모 개인전 ‘서도호’가 오는 27일부터 내년 2월 9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다. 지난 30여년간 국제 무대에서 독창적인 예술을 구축해 온 서도호의 작품 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전시다.
서도호 작가는 26일 국현 서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전시를 ‘회향’에 빗댔다. 불교에서 회향은 자기가 닦은 공덕을 대중과 나누는 것을 뜻한다. 작가는 “내 작품을 보고 본인들의 인생을 생각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공덕인지는 모르겠으나 긍정적인 부분을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대학 시절 초기작부터 대표작,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500여 점을 통해 서도호의 예술적 여정을 펼쳐 보인다. 작가를 대표하는 ‘집’ 설치 작품 외에도 드로잉, 조각, 영상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서도호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전시는 유년기의 그림 등 본격적인 작가 활동 이전의 기록을 한데 모은 대형 구조물로 시작한다. 작가의 예술적 출발점이 된 자료를 선보이는 ‘시드 뱅크(Seed Bank)’다. 어린 시절 나무를 깎아 만든 해양 동물 조각부터 대학 졸업 작품, 금속으로 만든 옷, 유재하 앨범 재킷 그림 등 작가가 일찍이 시도해 온 조형적 탐구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서구적 미학이 아닌 ‘한국적 맥락’에서 작업 세계를 조명한다. 작가는 “어린 시절 그림을 들여다보며 깜짝깜짝 놀랐다. 30년 동안 해 온 작품들의 씨앗이 거기 다 들어 있더라”며 “이미 한국에서 시작했던 시도들이 미국에서 발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드 뱅크’는 다른 작품들의 시원을 모아 놓은 작품이라 아주 특별하다는 게 그의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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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도호 작가가 26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서도호 개인전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
작가가 살았던 성북동 한옥의 대문을 재현한 ‘작은 문’(2017)을 지나면 200여 점의 드로잉이 나타난다. 특히 2009년부터 실을 젤라틴 티슈에 매립하는 새로운 제작 방식을 도입, 드로잉을 평면에서 물성을 지닌 공간으로 확장했다.
대표 연작 ‘러빙/러빙’은 작가가 장소를 기억, 재현하는 독창적인 방법론을 보여준다. ‘문지르다(rubbing)’와 ‘사랑하다(loving)’의 발음적 유사성에서 비롯한 제목으로, 그는 성북동 한옥 등 자신이 떠나왔거나 곧 사라질 장소에 한지를 밀착시키고 흑연과 색연필로 표면을 문지르는 행위를 통해 기억을 되짚는다.
작가가 아버지와 자신의 자화상이라 말하는 ‘러빙/러빙: 서울 집’이 개인과 가족의 기억을 담아낸다면, ‘러빙/러빙: 광주극장 사택’은 공동체의 기억과 역사로 확장한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개되는 ‘완벽한 집: 런던, 호셤, 뉴욕, 베를린, 프로비던스, 서울’(2024)은 작가가 살았던 여러 집을 하나의 공간에 집약시킨 작품이다. 문손잡이와 콘센트, 스위치 등 건축적 요소를 실제 높이로 중첩해 다른 시간과 여러 사람의 삶을 교차시킨다.
집 중에서도 특히 ‘한옥’이 작품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작가가 직접 살아 본 경험에서 비롯됐다. “아무도 한옥을 안 짓던 1960~1970년대에 한옥을 지어서 그 과정을 다 보고 살아볼 수 있게 된 것이 부모님이 주신 큰 선물 같다. 한국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건축적, 공간적으로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며 “이제 내 경험을 얘기할 수 있는 나이가 됐고, 다음 세대에 남겨야겠다는 책임감이 점점 커진다. 전통이 살아남는 것은 점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고 했다.
초기작 ‘Who Am We?’(2000)는 작가의 고등학교 졸업 앨범 전채를 스캐닝해 인물들을 식별 가능한 최소한의 크기로 축소, 벽지 형태로 구현한 작품이다. 하나의 패턴으로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수많은 얼굴이 드러난다.
이는 수많은 인물상이 투명한 판을 떠받치는 구조의 ‘바닥’(1997~2000)과 함께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작가의 초기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관람객은 작품 위를 걸으며 개인이 수많은 타인과 연결되고 상호 의존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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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기억(래코드 협업)’(2026). [서도호 제공] |
22m에 달하는 대형 설치 작품 ‘둥지/들’(2024)은 서울, 뉴욕, 런던, 베를린 등 여러 도시의 작가 거주 공간을 모티프로 한 10개 작품을 연결한 작품이다. 다른 장소의 구조와 형태를 연속적으로 이어 실존하지 않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고, 관람객은 내부를 걸으면서 자기 경험을 겹쳐보게 된다.
1999년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인 ‘다리 프로젝트’는 서울과 뉴욕을 잇는 상상의 다리에서 출발한 장기 프로젝트이다. 작가는 “서울, 뉴욕, 런던의 한가운데 집을 지으면 이동 시간이 줄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소개했다. 건축가, 철학자, 인류학자, 엔지니어 등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을 거친 프로젝트는 ‘집’에 대한 질문을 사회와 환경, 공존의 문제로 확장해 왔다.
‘부성애(Fatherhood)’를 주제로 아버지로서의 사적 경험을 담은 작품들도 주목된다. 이번 전시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사랑의 기억’(2026)은 작가의 코트 안쪽에 가족의 옷에서 떼어낸 주머니를 달고, 그 안에 추억의 사물들을 담아 가족과 함께한 기억을 포개어 놓은 작품이다. 옷은 집이 되고, 집은 세계를 경유해 다시 몸으로 돌아온다.
자녀들의 옷을 버리지 않고 모아 겹겹이 쌓은 작품들은 가족에 대한 작가의 사랑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서도호의 상징적인 작품인 ‘아파트 A, 복도와 계단, 미국 뉴욕 웨스트 22번가 348번지, NY 10011’(2012)은 12월 18일부터 2027년 3월 28일까지 공개된다. 전체 유닛이 한자리에 모여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다.
기억과 시간을 소환하는 전시는 국현을 시작으로 일본 도쿄도현대미술관(MOT)과 홍콩 M+ 순회전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서도호의 작업을 한국현대미술의 맥락에서 새롭게 조명하고, 그의 예술에 대한 연구와 논의를 한층 심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며 “서도호의 작품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인간의 삶을 다시금 성찰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