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슈퍼사이클의 역설…가격 치솟자 빅테크 ‘메모리 다이어트’ [비즈360]

트렌드포스 “내년 HBM 계약가격 최대 140% 상승”
삼전닉스, 내년 영업이익 총합 1000조원 바라봐
복수의 빅테크들 HBM 탑재량 줄이기 나서
수요 파괴 전 생산능력 확충이 최대 과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열린 GTC 2026 전시관을 찾아 삼성전자의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에 사인을 남겼다. 김현일 기자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HBM(고대역폭메모리) 가격 상승세가 내년에도 가파르게 이어질 전망이다. 장기공급계약(LTA)에 가격 상한 조항이 포함되고 있지만 내년 HBM 계약가격은 올해보다 최대 140% 오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천정부지로 치솟는 HBM 가격에 부담을 느낀 빅테크들이 AI 가속기에 탑재하는 HBM 용량을 줄이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26일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2026년 2분기 이후 체결된 일부 LTA에는 가격 상한제가 포함돼 추가적인 가격 인상을 제한할 수 있다”면서도 “HBM 계약가격은 2027년 70~140% 상승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도 내년 HBM 평균판매가격(ASP)이 올해보다 44% 오른 GB(기가바이트)당 17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가격 상승의 배경에는 극심한 공급 부족이 있다. 내년에도 HBM을 비롯한 메모리 수급이 빠듯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2027년이 공급 측면에서 “최악의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 때문에 향후 3~5년치 HBM 공급을 묶는 LTA 물량도 올해 상반기 상당 부분 배분이 끝난 것으로 알려졌다.

공급 증가 속도를 크게 웃도는 수요가 몰리면서 메모리 가격도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이에 따라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의 전체 설비투자(CapEx)에서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47%에서 내년 68%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AI 가속기 한 개에 들어가는 HBM 양은 상당하다. 오픈AI가 최근 ‘핫칩스 2026’에서 공개한 자체 AI 가속기 ‘할라페뇨(Jalapeño)’에는 가속기당 216GB의 HBM4가 탑재된다. HBM4 12단 제품 기준 6개에 해당한다. 랙 하나에 가속기 128개가 탑재되는 만큼 랙당 HBM 용량은 27TB를 넘어선다. HBM4 12단 제품으로 환산하면 768개가 필요하다.

유례없는 메모리 호황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도 내년까지 수백조원대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증권사 컨센서스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내년 약 545조원을, SK하이닉스는 392조원을 벌어들일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보다 영업이익이 약 50%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내년엔 양사 합산 1000조까지도 바라보고 있다.

폭발적인 메모리 수요를 맞추기 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메모리 3사도 생산능력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트렌드포스는 증설 효과 등이 본격화되면서 2027년 하반기에는 DRAM과 HBM 공급량이 27%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메모리 가격 상승은 AI 서버와 가속기를 만드는 업체에는 고스란히 원가 부담으로 돌아온다. 이는 엔비디아와 같은 AI칩·서버 업체가 제품 가격을 추가로 올릴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 엔비디아는 내년 초 출하되는 AI 서버 시스템부터 가격을 15% 이상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더 큰 문제는 지나친 메모리 가격 상승이 오히려 HBM 수요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트렌드포스는 “복수의 클라우드서비스사업자(CSP)가 차세대 자체 AI ASIC에 탑재하는 HBM 용량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1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컴퓨텍스 박람회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베라루빈의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최근 반도체주가 연일 하락세를 보이는 가운데, 엔비디아에 대해서는 상승 여력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


엔비디아 역시 차세대 AI 가속기 ‘루빈 울트라’의 메모리 사양을 낮추는 방안을 시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12단 HBM4E를 적용하는 방안이 거론됐지만 올해 3분기부터 8단 HBM4E를 적용하거나, 한 단계 낮은 HBM4를 사용하는 시제품까지 테스트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급 부족과 가격 상승이 장기화할 경우 AI 가속기 업체들이 HBM 탑재량 자체를 줄이는 ‘수요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결국 메모리 업체로서는 가격 급등이 고객사의 HBM 사용량 축소로 이어지기 전에 생산능력을 빠르게 확대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앞서 향후 5년 안에 전체 생산능력을 현재의 두 배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도, 고객들이 요구하는 물량을 맞추려면 현재의 5~6배 수준의 공급능력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설명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