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윌 올웨이즈 러브 유’ 등 음반 1억장 이상 판매·그래미 11회 수상
테네시 빈곤가정서 태어나 세계적 스타로
딱 맞는 드레스에 풍성한 금발 이미지
가수·배우·작곡가·자선사업가로 60년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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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2년 당시 돌리 파튼 [AP] |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미국 컨트리 음악의 ‘여왕’으로 불린 돌리 파튼이 25일(현지시간) 8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파튼의 조카 브라이언 시버는 이날 소셜미디어에 올린 영상을 통해 “돌리는 빛 속에서 살아왔고 이제 예수님의 품에 안겨 있다”며 별세 소식을 알렸다. 파튼은 고향인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평온하게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파튼은 지난해 라스베이거스 전속 공연을 연기한 뒤 결국 취소하면서 건강 이상설에 휩싸였다. 최근 몇 년간 면역계와 소화계 이상을 겪고 있다고 밝혀왔으며 지난해 가을에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난 아직 죽지 않았다”고 직접 건강 상태를 전하기도 했다. 올해 5월에는 치료에 잘 반응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결국 병세를 이기지 못했다.
AP통신은 파튼을 “솟구치는 비브라토 보컬과 가슴을 울리는 가사, 눈부신 의상으로 테네시 산속 통나무집에서 출발해 스타덤과 찬사의 정점에 오른 컨트리 음악의 아이콘”이라고 평가했다.
1946년 테네시주의 가난한 가정에서 12남매 중 한 명으로 태어난 파튼은 싱어송라이터이자 음반 제작자, 배우, 방송인, 작가, 자선사업가로 활동하며 세대와 지역, 정치 성향을 넘어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1973년 발표한 ‘졸린(Jolene)’이 컨트리 차트를 넘어 팝 차트에서도 성공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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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리 파튼이 2014년 5월 뉴욕에서 NBC의 “투데이” 쇼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AP] |
이듬해 직접 작사·작곡한 ‘아이 윌 올웨이스 러브 유(I Will Always Love You)’로 1975년부터 2년 연속 미국컨트리음악협회(CMA) 올해의 여성 보컬리스트상을 받았다.
이 곡은 휘트니 휴스턴이 리메이크해 1992년 영화 ‘보디가드’(The Bodyguard)의 주제가로 불러 전 세계적인 명곡으로 남았다.
이 밖에도 1980년 코미디영화 ‘9 to 5’의 동명 사운드트랙, 케니 로저스와 듀엣으로 부른 ‘아일랜드 인 더 스트림’(Islands in the Stream) 등도 세계적 인기를 얻은 곡들이다.
파튼은 평생 3000곡 이상을 작사·작곡했다. 그의 노래는 휴스턴뿐 아니라 티나 터너, 노라 존스, 더 화이트 스트라이프스, 멀 해거드, 마일리 사이러스, 비욘세, 올리비아 뉴턴존 등 다른 아티스트들이 리메이크했다.
총 49장의 앨범 속 그의 명곡들은 전 세계에서 1억장 이상의 음반 판매량을 기록했고, 10억회 이상 온라인 스트리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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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리 파튼이 2022년 1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참석하고 있다. [로이터] |
파튼은 평생공로상을 포함해 그래미상 11개를 받았다. 그의 노래 25곡이 빌보드 컨트리 차트 정상에 올랐다. 2001년 ‘송라이터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고 2007년에는 이 명예의 전당이 수여하는 최고 영예인 ‘조니 머서상’을 받았다. 2022년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렸다.
평생 몸에 딱 달라붙는 모조 다이아몬드를 붙인 화려하고 과감한 의상과 거대한 금발 헤어스타일, 진한 화장 등의 이미지를 보여줬지만, 자선 활동으로도 큰 명성을 얻었다.
테네시주의 어린이들에게 무료 도서를 보내기 위한 교육 비영리 단체인 ‘이매지네이션 라이브러리’(Imagination Library)를 설립했고, 미국 전역은 물론 캐나다, 영국, 호주, 아일랜드에서 미취학 아동을 위한 문해력 프로그램을 운영, 전 세계 어린이 독자들에게 3억권 이상의 무료 도서를 제공했다.
2016년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스 국립공원에서 발화한 산불이 테네시주에 큰 피해를 주자 산불 피해자 돕기 자선 TV 방송을 기획했고,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백신 연구에 써달라며 밴더빌트대에 100만 달러를 기부해 모더나 백신의 초기 후원자로 기록됐다.
로이터 통신은 “그녀에게 지속적 스타 파워를 안겨준 자질은 사람들과 교감하는 능력이었다”며 “자신이 ‘찢어지게 가난했다’(dirt-poor)고 표현한 가정에서 자란 파튼은 종종 미국 노동 계층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자신이 믿는 대의를 위해 명성과 재력을 쏟아부었다”고 평가했다.
파튼은 1960년대 중반 아스팔트 포장 도급업자인 칼 딘과 결혼했고, 지난해 딘이 먼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함께했다. 둘 사이에 자녀는 없었지만, 가수 마일리 사이러스가 파튼의 대녀(代女·goddauther)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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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워싱턴DC에서 돌리 파튼을 기리기 위해 조기가 계양돼 있다. [AP] |
파튼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 사회 각계에서도 추모가 이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 “최고의 컨트리 가수 가운데 한 명이자 그 이상이었던 돌리 파튼의 별세 소식을 전하게 돼 매우 슬프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수많은 사람에게 정말 큰 상실”이라며 “과거에도 그녀와 같은 사람은 없었고 앞으로도 결코 없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튼을 기리기 위해 미국 전역과 해외 공관 등에 조기를 게양하라고 지시했다. 백악관 포고령에 따르면 조기 게양은 9월1일 일몰까지 이어진다.
미국 주요 언론들도 파튼의 부고를 일제히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60년 동안 컨트리음악은 물론 대중문화의 상당 부분을 지배했다”며 “거대한 개성과 소박한 재치로 자신을 자리매김한 20세기 가장 사랑받는 미국인 중 한명”이라고 애도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파튼의 자리는 컨트리음악 세계의 추종자들, 수천개 자작곡 가사에서 자신의 삶을 발견한 애팔래치아 산맥의 가난한 주민들, 영화 ‘9 to 5’에서 그녀가 응원을 보낸 직장 여성, 문해력 프로그램을 통해 도움을 준 아이들까지 모두 담아낼 수 있을 만큼 거대했다”고 적었다.
이날 파튼의 엑스(X·옛 트위터)에도 부고글이 올라왔다. 게시글에는 “파튼이 남긴 유산은 사랑, 연민, 회복”이라며 “그녀의 노래는 모든 연령대 사람에게 계속 울릴 것이며, 그녀의 자선활동은 오래도록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적혔다.
장례식은 비공개로 치러진다. 직계 가족들이 참석하는 소박한 장례식이다.
유족은 조화 대신 파튼이 설립한 이매지네이션 라이브러리에 기부해줄 것을 요청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