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했던 서교동 ‘윤형근의 집’ 공개
1970~2000년대 주요 작품 30점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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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형근의 집’ 1층 작업실. [윤형근 에스테이트, PKM갤러리 제공] |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사실 그림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떤 자세로 살아가느냐가 문제이지. 예술이란 생활의 흔적일 뿐이라고 생각된다.”
한국 단색화 거목 윤형근(1928~2007)의 개인전 ‘윤형근을 다시 상상하다(reimagine Yun Hyong-keun)’가 오는 26일부터 10월 3일까지 PKM갤러리에서 개최된다. 작가가 살았던 ‘윤형근의 집(Yun Hyong-keun House)’ 개관을 기념해 열리는 전시로,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시기별 주요 작품 3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대형 ‘천지문(天地門)’ 연작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윤형근은 1970년대 청색(Blue)과 다색(Umber)만을 사용한 ‘천지문’ 회화를 도입하며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그는 “내 그림의 명제를 천지문이라고 해 본다”며 “블루는 하늘이요 엄버는 땅의 빛깔이다. 그래서 천지라 했고 구도는 문이다”라고 선언했다. 화면에서 좌우로 솟아오른 청색의 기둥은 하늘과 땅을 잇는 동시에 그사이의 여백을 통해 문이 된다.
화려한 색 대신 절제된 회화는 삶의 굴곡을 거치며 도달한 지점이다. 그는 1947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했으나 국립 서울대학교 설립안(국대안) 반대운동으로 투옥·제적됐고, 1950년 6·25 전쟁 당시 보도연맹 사건을 겪으며 생사의 기로에 섰다. 이후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숙명여고 교사로 일하던 1973년 부정 입학 사건에 항의하다 구속됐다. 1974년에는 장인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김환기가 작고하면서 스승의 유산과 자신의 길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맞는다.
1980년대에는 작업 방향에 대한 확신을 갖기 위해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자신이 추구해 온 예술 세계를 깊이 다진다. 귀국 후 1980년대 중반부터는 색면이 대지처럼 화면 전체를 뒤덮는 대형 올오버 회화, 형상의 가장자리와 캔버스 옆면으로 번지는 물감의 층위를 실험하는 회화 등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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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형근을 다시 상상하다’ 전시 전경. [PKM갤러리 제공] |
1990년 이후에는 순수한 검정과 구조적 형태로 환원된 후기 회화와 한지 작업을 선보인다. 작가는 1991년 도널드 저드와 미국 미니멀리즘 조합을 만난 이후 국제적 교류를 확장하며 극단적인 단순함을 추구하게 된다.
2000년대 세례를 받은 작가는 존재에 대한 사유를 한층 심화하며 절제된 색채와 구조로 표현한다. 그는 세상을 떠난 2007년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윤형근이 평생 견지한 ‘삶이 곧 예술이고 예술이 곧 삶’이라는 신념은 그가 직접 짓고 거주하며 작업했던 서교동 주택에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윤형근 에스테이트는 윤형근이 타계하기 전까지 머물렀던 서교동 주택을 ‘윤형근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개관, 오는 9월 1일부터 일반에 최초 공개한다. 생전의 모습을 최대한 보존하며 복원한 공간에서 윤형근의 시간과 철학을 경험할 수 있다.
이 집은 1963년 김환기가 국민주택으로 분양받은 뒤 윤형근이 1967년부터 살았던 곳이다. 이후 1983년 기존 주택을 철거해 새로운 집을 지었고, 작고할 때까지 기거했다.
윤형근은 신축 당시 동생 윤도근 홍익대학교 건축과 교수에게 설계를 맡기고, 각 공간의 기능과 형태, 재료 선정 등 건축 전반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베란다가 있는 다층 주택과 높은 층고, 노출 배관, 전면 유리 등 서구 모더니즘 건축과 목재 천장, 문창살 등 한국적 요소가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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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4년 서교동 자택 작업실에서 윤형근 작가. [윤성렬, PKM갤러리 제공] |
그는 자연광 아래서 작업하기 위해 집의 1층에 한쪽 벽면을 유리창으로 튼 작업실을 만들었다. 캔버스를 눕혀 두고 작업해 바닥에 물감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작업실에는 그가 사용했던 미술 도구와 작품이 전시돼 있다.
드로잉, 전시 자료, 작가 노트, 서신, 사진 등을 아카이빙한 자료실에서는 윤형근의 일대기를 살펴볼 수 있다. 가족사진이나 김환기가 보낸 편지 등 보기 드문 자료도 공개된다.
주거 공간이었던 2층에선 ‘인간’ 윤형근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거실과 부엌, 내실, 안방 등에 놓인 고가구와 도자기, 오디오, 추사 김정희의 현판, 도널드 저드의 조각 등은 그의 취향과 인연의 흔적을 드러낸다. 특히 내실은 아내 김영숙을 기리는 공간으로 꾸몄다.
집안 곳곳을 따라가다 보면 삶과 예술을 같은 선상에 둔 그가 어떻게 생활했는지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윤형근의 집’은 10월 17일까지 공개된 후 내년부터 봄(4~6월), 가을(9~11월) 시즌제로 운영할 예정이다.
국내 전시와 더불어 뉴욕 저드 파운데이션에서는 10월 8일~2027년 1월 9일 윤형근 초대전이 개최된다. 1993년 저드의 초대로 윤형근의 개인전이 열렸던 곳으로, 두 사람의 국제 교류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다. 저드의 아들이자 파운데이션 디렉터인 플래빈 저드가 당시 전시에 출품됐던 작품 6점을 한자리에 선보이며 윤형근을 기념하는 의미를 더할 전망이다.
윤형근은 1969년과 197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2000년 광주 비엔날레 등 주요 국제전에 참여했다. 2018년에는 단색화 작가 중 처음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개최했으며, 해당 전시는 이후 베니스로 순회하며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영국 테이트모던, 미국 치나티 파운데이션,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일본 도쿄도 현대미술관 등에 영구 소장돼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