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란과 거래 ‘제3국 제재’·가상화폐 등 ‘돈줄’ 원천차단

美, 이란 경제 고립작전 개시
가상화폐·금·기술·항공·해운 제재
핵·석유 연계 단체·개인 60곳 포함
中금융기관 빠졌지만 “예외국 없다”

이란 “완전 대비…2년 대응계획 있다”
韓장금상선 등 46척 호르무즈 제재
내달 미중정상회담에 ‘회의론’…유가 2%↓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24일(현지시간) 워싱턴DC 재무부에서 이란의 전 세계 금융·경제 연결망을 차단하는 대규모 제재 작전인 ‘경제적 추방 작전(Operation Economic Outcast)’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왼쪽 사진) 이에 이란 협상단장이자 의회의장인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는 “미국인들도 아무도 그들의 허풍을 안 믿는다는 걸 안다”고 조롱했다. 사진은 이란 테헤란의 한 건물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목을 조르는 모습의 광고가 그려져 있는 모습. [로이터·AP]


미국은 24일(현지시간) 이란과 거래하는 제3국까지 제재 대상으로 삼겠다며 ‘이란 경제 고사 작전’을 공표했지만, 이를 두고 시작부터 회의론이 일고 있다. 이란과의 교역·금융 거래가 가장 활발한 곳이 중국인데, 지난해 중국과의 무역 갈등으로 곤욕을 치렀던 미국이 ‘원칙대로’ 중국에 2차 제재를 가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 같은 회의론을 의식하듯 이란은 “미국의 제재에 완전히 대비돼 있다”며 오히려 선박 제재 명단을 발표하며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강화하는 행보를 보였다. 국제유가도 이날 2% 하락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이날 이란과 디지털 자산, 기술, 금, 항공, 해운과 관련한 거래를 하는 다른 국가들에도 2차 제재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2차 제재는 특정 제재 대상과 거래한 제3국에 대해서 관세 등 제재를 부과하는 것이다.

디지털 자산은 이란이 최근 제재를 피하기 위해 결제 수단으로 가상화폐를 많이 사용한다는 점을 감안해 제재 품목에 올렸다. 금 역시 이란의 화폐 가치가 붕괴하면서 인플레이션 대비를 위해 주목하는 품목으로 제재 대상이 됐다. 이란과의 기술 거래 제재는 무기 제조 프로그램 발전을 막기 위한 시도다. 항공은 이란의 “전투원 수송, 무기 및 민감한 기술 운송, 대리세력에 금·현금 제공” 등을 막기 위해 제재하겠다는 게 재무부의 설명이다. 해운 역시 “민감한 무기 부품과 미사일 전구체 수송, 불법적인 석유 운반”을 막기 위해 제재한다고 전해졌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적 왕따 작전’은 시작부터 회의론이 일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베선트 장관은 앞으로 더 많은 제재가 발표될 것이라고 했지만,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중단시키고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이번 제재가 이란 경제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불분명하다”고 전했다.

CNN 방송은 “미국은 이란과의 경제적 관계를 단절하기를 거부하는 국가들에 대해 치명적인 새로운 제재를 가하겠다고 위협했으나, 실제로 대규모의 신규 제재를 부과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았다”고 짚었다.

무엇보다 미국의 원칙대로라면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될 중국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경제 압박 작전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은 이란의 원유 수출 물량의 90%를 싼값에 들여와 자국 내 ‘티팟 정유소’라 불리는 소규모 독립 정유사들에 공급해 왔다. 미 재무부는 중국의 소규모 정유소와 해운회사 등 몇 곳은 이미 제재 명단에 올려놨다.


그럼에도 미국은 이날 60여곳의 신규 제재 기관을 발표하면서 중국 은행이나 금융기관 등은 한 곳도 추가하지 않았다. 미국이 중국 은행에 신규 제재를 가할지를 묻는 질문에 베선트 장관은 “누구도 미국의 제재 손길을 벗어날 수 없다”고 답했지만, 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회견 내내 베선트 장관이 ‘중국’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중국 금융사나 기관을 제재하는 것은 미국에도 큰 부담이다. 특히 다음달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이 백악관에서 열린다. 이 와중에 중국의 대형 은행이나 기업을 겨냥하는 것은 중국의 ‘보복’을 촉발, 회담에서의 외교적 성과를 위협할 수 있다.

국제위기그룹의 알리 바에즈 이란 프로젝트 디렉터는 “발표 자체는 속 빈 강정(nothing burger)이었다”며 “현 단계에서 차이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미국이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위협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 싱크탱크인 민주주의수호재단의 크레이그 싱글턴 중국 선임 연구원은 “중국은 미국이 정상회담 전에 주요 중국 기관을 겨냥해 현재의 역학 관계를 위태롭게 하는 것을 꺼릴 것이라고 베팅하고 있다”며 “이날 베센트 장관이 한 어떤 말도 그러한 계산을 바꿀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을 감안한듯 이란은 미국의 제재를 ‘허풍’이라 조롱했다. 이란측 협상단장이자 의회의장인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는 이날 엑스에 “미국인들도 아무도 그들의 허풍을 안 믿는다는 걸 안다. 경제적으로 미국은 다른 나라와의 거래를 더 제한할 만한 위치가 아니다”라고 게시했다. 그는 “이란의 무역 상대국들은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그리고 우리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미국의 이런 말들에 개의치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란은 이날 호르무즈 해협 통과 프로토콜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46척의 선박을 제재 대상에 올리며, 호르무즈 통제권을 과시하는 행보도 보였다. 여기에 한국의 장금상선 소유 선박 5척도 포함됐다. 이란이 설립한 페르시아만 해협 당국은 제재 대상 선박들이 “벌금, 구금 또는 압수를 포함해 향후 통항에 제한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미국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풀이된다.

도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