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곽지역 소규모 개발·사업성 저하로 지연 우려
2000년대 초 서울 ‘나홀로아파트’ 난립 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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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내 신속통합기획이 수립된 빌라 밀집 지역 모습. [헤럴드경제DB] |
[헤럴드경제=윤성현 기자]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서울의 500가구 이하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대한 정비구역 지정 권한을 자치구에 넘기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소규모 정비사업이 난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업 속도를 높이기 위한 권한 이양이 오히려 ‘500가구’라는 새로운 규제 경계를 만들어 사업지를 잘게 나누거나 주변 지역과 연계되지 않은 개발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25일 정치권에 따르면 당정은 전날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서 500가구 이하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정비구역 지정 권한을 서울시에서 각 자치구로 이관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서울시는 정비사업 관련 주요 인허가 9개 가운데 조합설립과 관리처분 등 7개는 이미 자치구가 맡고 있고, 시가 담당하는 구역 지정 심의와 사업시행 통합심의 기간도 약 4개월에 불과해 권한 이양에 따른 기간 단축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보고 있다.
정비구역 지정 권한 이양이 현실화되면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건 정비구역 지정 이전 사업지들이다. 25일 서울시 정비사업 정보몽땅의 공개 추진현황에 따르면 정비구역 미지정 신속통합기획 재개발·재건축 사업 132곳, 16만555가구 가운데 500가구 이하 사업은 18곳, 6087가구다. 재개발이 13곳(4294가구), 재건축이 5곳(1793가구)으로, 서울 외곽지역의 중소 규모 사업지가 다수 포함돼 있다.
구로구 온수동 62 일대는 약 1만927㎡ 부지에 218가구 규모로 정비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곳은 후보지 선정 당시 주민 반대 의견을 고려해 구역계 제척 등 적정 구역계를 검토하는 조건이 붙었고, 구로구는 최근 주민 의견조사를 거쳐 구역계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정비구역 지정 권한이 자치구로 넘어가면 구역 설정 과정에서 자치구별 판단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천구 시흥4동 1 일대 재개발은 계획 세대수가 498가구로 500가구 기준선 바로 아래에 놓인 사업지다. 권한 이양이 현실화할 경우 이처럼 기준선에 근접한 사업지를 중심으로 사업 규모를 500가구 이하로 유지하려는 유인이 생기면서, 인접 지역과의 통합 개발보다 개별 사업 추진이 우선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종로구 금강하이츠빌라도 299가구 규모로 정비계획이 추진 중이며, 제1종일반주거지역을 제2종일반주거지역으로 상향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정비구역 지정 권한이 자치구로 넘어가더라도 용도지역 변경 등 주요 도시계획 사항은 서울시 심의를 거쳐야 하는 만큼 권한 이원화에 따른 추가 협의 가능성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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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용 서울시정비사업연합회 회장은 “정비사업에서는 정책의 일관성이 중요한데 구역 지정 권한이 이양되면 자치구마다 다른 판단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며 “권한 주체를 두고 다투기보다는 사업성을 높이거나 사업 추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지원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500가구 이하라는 기준 역시 명확한 근거가 필요하다”며 “경우에 따라서는 소규모 개발이 늘어나 난개발로 이어질 가능성도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특히 대규모 사업에 비해 사업성이 떨어지는 외곽지역에서는 개별 사업장이 주변 지역과 통합되지 않은 채 소규모로 추진되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비구역을 넓게 묶으면 도로와 공원, 주차장 등 기반시설을 함께 정비할 수 있지만 사업지가 잘게 나뉘면 개별 단지 중심의 개발에 그쳐 기반시설 확보와 공공기여 측면에서 한계가 생길 수 있다.
과거 서울에서는 1~2개 동 규모의 이른바 ‘나홀로아파트’가 급증하면서 난개발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2000년 서울 동시분양을 통해 공급된 135개 아파트 단지 가운데 나홀로아파트는 53곳으로 39.2%를 차지했고, 2001년에는 202개 단지 중 95곳으로 비중이 47%까지 높아졌다.
이는 당시 서울 내 대규모 택지가 줄어든 가운데 외환위기 이후 소규모 연립주택 재건축 관련 규제가 완화되면서 사업자들이 상대적으로 절차가 간단한 소규모 개발에 나선 영향이 컸다. 대규모 사업보다 짧은 기간에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저층 주거지 사이에 고층 아파트가 개별적으로 들어서면서 일조·조망권 침해와 주차난, 도로·공원 등 기반시설 부족 문제가 잇따라 제기됐다.
이에 서울시는 2000년 저층 주거지역의 ‘나홀로아파트’ 난립을 막기 위해 아파트 건축예정부지 경계에서 200m 이내 주거지역의 4층 이하 건축물이 전체의 70% 이상인 경우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지정해 관리하도록 했다. 주변 저층 주거지와 도로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고층 아파트 건립을 억제하고 용적률과 높이 등을 도시계획 차원에서 관리하기 위한 조치였다.
전문가들은 정비구역 지정 권한을 자치구에 넘길 경우 이 같은 과거 사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광역 차원의 조정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권한이 기초자치단체로 내려갈 경우 지역의 토착 세력이나 이해관계자와 결합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며 “이 같은 이해충돌을 막기 위해 정비구역 지정 권한을 시·도 단위에서 행사해온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업 주체가 구청장의 구역 지정 권한을 활용하기 위해 대규모 정비구역을 의도적으로 500가구 이하로 쪼개 사업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며 “사업 규모가 작아지면 사업성이 떨어져 정비사업이 지연될 수 있고, 공공기여나 도로·공원 등 기반시설을 체계적으로 확보하는 데도 한계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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