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주재관’ 24개국… 해외 치안외교, 1인 대기체제 손봐야

윤상구 머니투데이 인천취재본부장, 동국대 경찰학 박사학위
해외주재관 100명 실증조사

윤상구 본부장


[헤럴드경제(인천)=이홍석 기자]국제범죄가 갈수록 지능화·초국경화하고 해외에서 발생하는 우리 국민 대상 사건·사고도 늘고 있지만, 정작 현지에서 재외국민 보호와 국제범죄 대응을 담당하는 경찰 해외주재관 상당수가 ‘나홀로 근무’에 놓여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특히 경찰 해외주재관이 파견된 31개국 가운데 24개국에는 단 한 명만 배치돼 있어 납치·테러·강력범죄 등 긴급 상황 발생 시 신속한 대응에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해외 치안외교의 최일선에 배치된 경찰관에게 사실상 24시간 대기체제를 요구하는 현재의 파견 시스템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전망이다.

윤상구 머니투데이 인천취재본부장은 지난 20일 동국대학교 서울캠퍼스 남산홀에서 열린 2026학년도 학위수여식에서 일반대학원 경찰행정학과 박사학위를 받았다.

윤 본부장이 최응렬 교수의 지도로 작성한 박사학위 논문은 ‘경찰 해외주재관의 직무만족 결정요인 연구’다.

경찰 해외주재관의 업무환경과 직무만족도를 실증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해외 치안공조 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31개국 49개 공관에 58명… 24개국은 ‘1인 체제’

논문이 주목한 가장 큰 문제는 해외주재관의 배치 구조다.

현재 경찰 해외주재관은 31개국 49개 재외공관에 모두 58명이 파견돼 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 24개국은 주재관이 단 한 명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주재관은 현지 경찰·사법기관과의 수사공조를 비롯해 국외 도피사범 송환, 국제범죄 정보수집, 인터폴 공조, 재외국민 대상 범죄 대응 등의 업무를 맡는다.

사실상 대한민국의 해외 치안외교를 현장에서 수행하는 역할이다.

문제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다. 1인 주재관이 근무하는 국가에서 야간이나 휴일에 긴급 사건이 발생할 경우 현장 대응과 현지 기관 협의, 국내 보고 등 여러 업무를 동시에 처리해야 한다.

납치나 테러 등 긴급성이 높은 사건이 발생하면 ‘혼자서 모든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윤 본부장은 교민이 밀집한 국가나 국외 도피사범의 주요 거점국가 등 치안 수요가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기능별 복수 주재관 배치를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주재관 만족도 좌우한 것은 ‘업무 강도’ 아닌 경찰청 지원

이번 연구에서 더욱 눈길을 끄는 부분은 해외주재관들의 직무만족도를 결정하는 요인이다.

윤 본부장은 지난해 9월 경찰청 국제협력관실의 협조를 받아 전·현직 해외주재관과 코리안데스크 근무자 등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직무만족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경찰청의 예산·활동비 지원과 인사평가, 귀임 후 보직관리 등을 포함한 조직적 지원이었다.

조직특성의 표준화계수는 0.307로 조사 대상 요인 가운데 가장 높았으며 현지어 구사능력과 문화적응력, 현지 기관과의 관계 형성 능력 등 개인특성이 0.284로 뒤를 이었다.

반면 업무 강도와 불규칙성 등 직무 자체의 특성이나 현지 공관장의 리더십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영향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해외주재관들이 업무 자체가 힘들어서 만족도가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힘든 업무를 수행한 만큼 경찰청 차원의 지원과 평가, 귀임 이후 경력관리 등이 제대로 뒷받침되는지가 중요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실제 조사 대상자의 91%는 주당 40시간을 초과해 근무한다고 응답했다.

41~50시간 근무자가 39%, 51~60시간이 33%, 61시간 이상도 19%에 달했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주당 50시간을 넘겨 근무한 셈이다.

그럼에도 직무에 대한 보람과 열정, 전반적인 만족도는 5점 만점에 평균 4점 이상으로 비교적 높았다.

국가를 대표해 치안외교를 수행한다는 자부심과 업무의 중요성은 높게 평가하면서도, 귀임 후 승진이나 주요 보직 경쟁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근무 성과, 귀임 후 인사에 반영돼야”

논문은 해외주재관 제도의 개선 방향으로 단순한 인원 확대를 넘어 선발-파견-근무-귀임 이후까지 연결되는 관리체계 구축을 제시했다.

우선 교민이 많거나 국제범죄·도피사범 발생 가능성이 높은 국가에는 복수의 주재관을 배치하고 국가별 물가와 치안 위험도를 반영해 체재비와 수당, 자녀 교육비 등 재정적 지원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해외에서 수행한 범죄인 송환과 국제수사 공조, 치안정보 수집 등의 성과가 경찰청 인사평가와 승진에 합리적으로 반영돼야 하며 귀임 이후에도 국제협력·외사 관련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는 보직을 부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해외주재관 선발과 교육 과정도 개선 대상으로 꼽았다. 현재 주재관 지원에 필요한 어학능력이나 주재국 치안환경, 면접 관련 정보 등이 공식 교육보다는 선후배 관계나 내부 정보망을 통해 공유되는 경향이 있는 만큼 경찰청 차원의 체계적인 교육과 공식 멘토링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치안 외교관’에 걸맞은 제도적 뒷받침 필요

이번 연구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해외주재관은 단순히 해외에 파견된 경찰관이 아니라 재외국민 보호와 국제범죄 대응, 범죄인 송환, 국제 경찰공조를 담당하는 대한민국 치안외교의 현장 거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1인 주재관 체제에서는 업무량이 늘어나고 국제범죄가 복잡해질수록 개인에게 책임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특히 재외국민보호를 위한 영사조력법 시행 이후 해외 사건·사고 발생 시 국가의 적극적인 보호 책임이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장 대응 인력과 지원체계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한다면 제도의 취지가 퇴색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윤 본부장은 “해외주재관은 국경 없는 범죄에 맞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치안 외교의 전초기지 역할을 맡고 있음에도 관련 연구나 정책적 관심은 충분하지 않았다”며 이번 연구가 치안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주재관 제도를 내실화하는 기초자료로 활용되기를 기대했다.

결국 해외주재관 제도의 핵심 과제는 ‘몇 명을 더 보낼 것인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한 명을 보내더라도 제대로 지원하고 필요한 곳에는 두 명 이상을 배치하며 현지에서 거둔 성과가 귀임 후 경력으로 이어지게 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진정한 해외 치안외교 강화의 출발점이라는 분석이다.

이번 연구를 계기로 ‘나홀로 주재관’이라는 구조적 문제와 함께 해외주재관의 처우·인사·교육·배치체계를 종합적으로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