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한방울도 못 나간다”…미국 ‘경제 D-데이’에 이란, 걸프 봉쇄 맞불

미국, 이란 돈줄 막고 제3국까지 제재…24일 추가 제재 발표
이란 “미국 경제전쟁 가담국은 적” 호르무즈 넘어 대체 수송로까지 위협
UAE·이라크 등 주변국 압박 카드…군사충돌 잦아들어도 유가·세계경제 불안

지난 10일(현지시간) 이란 남부 반다르아바스 인근에서 선박들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고 있다. [AFP]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미국이 이란을 군사적으로 압박하는 대신 돈줄을 끊는 ‘경제 D-데이’에 나서자 이란이 걸프 산유국의 원유 수출까지 틀어막을 수 있다며 맞불을 놨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 협조하는 주변국을 ‘적’으로 간주하고 호르무즈 해협뿐 아니라 대체 원유 수송로까지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미·이란 간 군사적 충돌이 다소 잦아들더라도 에너지 시장을 둘러싼 긴장은 오히려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3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모흐센 레자에이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 사무총장은 국영방송에 출연해 미국이 추가 조치에 나설 경우 “단 한 방울의 석유조차 나가지 못하게 막겠다”고 밝혔다.

레자에이 총장은 “미국이 벌이는 ‘경제 전쟁’에 가담하지 말라”며 “경제 제재 부과에 참여하는 어떤 국가도 적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추진하는 이른바 ‘이란 경제 D-데이’에 대한 정면 대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을 상대로 전례 없는 규모의 경제 전쟁에 나서겠다며 이란과 금융·상업 관계를 유지하는 제3국에도 막대한 경제적 대가를 물리겠다고 예고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24일 추가 대이란 경제 제재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베선트 장관은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를 통해 이란을 지원하는 국가를 ‘국제적 왕따’로 만들겠다며 이란의 경제적 생명선을 차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란의 대응 카드는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길목인 페르시아만이다. 레자에이 총장은 미국의 제재에 동참하려는 국가들과 우선 협상을 시도하되 실패할 경우 호르무즈 해협을 넘어 페르시아만 전체에서 원유 수출을 차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현재 이란이 건드리지 않고 있는 호르무즈 해협 외 대체 수송로까지 표적으로 삼을 가능성을 내비쳤다. 중동 산유국들은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차질에 대응해 최근 수개월간 수십억달러를 들여 우회 송유관과 수출 인프라를 확충해왔다. 이란이 이들 시설까지 압박할 경우 원유 공급 불안이 다시 확대될 수 있다.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교전은 최근 감소했지만 협상은 사실상 동력을 잃은 상태다.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과 핵 개발 포기 등을 요구하는 반면 이란은 역내 미군 철수와 대이란 제재 중단, 동결자산 해제 등을 선결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미국의 해상봉쇄와 제재 강화로 이란 경제가 타격을 받으면서 UAE와 이라크 등 주변국을 향한 압박도 거세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란의 주요 금융·무역 거점 역할을 해온 UAE는 최근 이란과의 모든 무역 및 금융 거래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이란이 미국의 경제적 고립 전략에 맞서 주변국 역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부각하는 이른바 ‘공동 운명’ 전략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 싱크탱크 부르스 앤 바자 재단의 에스판디아르 바트망겔리드 최고경영자는 “이란은 경제적 고립 때문에 UAE나 이라크 등 주변국에 더 의존하게 됐다”며 레자에이 총장의 발언은 “이란 주변국들의 운명 역시 이란과 엮여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테헤란의 외교 전문가 모하마드 가데리도 이란 지도부가 위협에 대응하는 방식을 단순 방어에서 경제를 포함한 전방위적인 공격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과 이란의 대결 중심축이 군사에서 경제로 옮겨가고 있지만, 원유 수송망을 둘러싼 충돌 가능성이 남아 있는 만큼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도 쉽게 해소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