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나 죽어!”…폭염 찢은 20년 에너지, 빅뱅은 ‘청춘의 동의어’ [고승희의 리와인드]

지난 21~23일까지, 빅뱅 20주년 투어
명불허전 빅뱅 스웨그, 청춘의 동의어
10만 관객 울리고 웃긴 국민 아이돌
“88세까지 팔팔하게 활동하겠다”
빅뱅 20주년 월드투어 [YG엔터테인먼트 제공]

[헤럴드경제(고양)=고승희 기자] “왓츠 업! 세이 왓? 와우, 판타스틱 베이비(FANTASTIC BABY)!”

지축을 흔드는 함성이었다. ‘몸풀기’도 필요치 않았다. 첫 곡부터 그야말로 글로벌 ‘빅 히트곡’을 불러주는 패기는 명실상부 K-팝 레전드이기에 가능했다. 2012년 전 세계 음악신을 강타했던 일레트로닉 훅(Electronic Hook) 전주가 터져 나오자 고양종합운동장은 3만 5000여 명의 함성으로 뒤덮였다. 8년 8개월간 응축된 갈증과 기다림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무수히 많은 K-팝 스타들이 고양 스타디움 무대에 섰지만, 고양을 뒤흔드는 메아리치는 함성은 이례적이었다. 첫 곡부터 실내 공연장에서 들리는 데시벨 높은 떼창과 고함이 스타디움을 집어삼켰다.

10대 시절 ‘노란 왕관’의 응원봉인 일명 ‘뱅봉’을 흔들던 열혈 VIP(빅뱅 팬덤명)는 어느덧 30대가 돼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으로 콘서트 티켓과 신형 ‘뱅봉’을 마음껏 결제하는 의젓한 어른이 돼 객석을 가득 메웠다. 시계태엽이 거꾸로 감기자, 고양의 저녁하늘은 순식간에 시공간을 초월한 음악 여행의 우주로 빨려 들어갔다.

K-팝의 패러다임을 바꾼 ‘현재진행형 레전드’ 빅뱅(BIGBANG)이 마침내 돌아왔다. 스무 살 생일(데뷔일 8월 19일) 이틀 뒤인 지난 21일부터 23일까지 사흘간 고양종합운동장에서 펼쳐진 ‘빅뱅 20주년 월드투어 : 코스모스(BIGBANG 20th ANNIVERSARY WORLD TOUR : COSMOS)’는 총 10만여 명의 관객과 함께 K-팝 역사상 가장 뜨겁고 찬란한 성인식을 완성했다.

빅뱅 20주년 월드투어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첫 곡부터 ‘판타스틱 베이비’…‘슈퍼 IP’의 위용


기존 공연보다 30분 앞당겨 시작된 23일 마지막 날 무대는 시작부터 파격이었다. K-팝의 영토 확장을 이끌었던 역사적 트랙인 ‘판타스틱 베이비’로 20주년 축제의 포문을 연 것이다.

빅뱅의 20년 궤적에서 중대한 의의를 지닌 ‘판타스틱 베이비’는 동아시아를 넘어 서구 팝 시장에서 빅뱅의 이름을 알린 대표곡이다. 화려한 영상과 함께 무대에 등장한 세 멤버는 전성기 시절보다 한층 더 단단해진 라이브 가창력과 여유로운 무대 매너로 객석을 집어삼켰다. 연이어 ‘핸즈 업(HANDS UP)’과 ‘투나잇(TONIGHT)’으로 내달리자, 스타디움의 열기는 불과 세 곡만에 단숨에 임계점으로 향했다. 세 곡만에 폭죽은 터졌고, 지드래곤의 전매특허인 ‘기타 부수기’ 퍼포먼스까지 나왔다.

리더 지드래곤(G-DRAGON)은 관객을 향해 “2006년에 시작해 2026년에 와 있다”며 첫인사를 건네자, 객석의 VIP들은 20년치 함성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K-팝 업계에 진정한 ‘월드투어’를 시작한 선구자”(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수)답게 빅뱅은 말 그대로 조련사였다. 4인조 라이브 밴드의 풍성한 연주 위로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왔다”는 ‘블루(BLUE)’를 한여름의 감성으로 되새겼고, 지드래곤이 “힘들다”는 말을 달고 살던 시절 태어났다는 ‘이프 유(If you)’로 빅뱅 감성의 정점을 찍었다.

1막부터 빅뱅 시절의 히트곡이 줄줄이 이어졌다. ‘루저(LOSER)’, ‘배드 보이(BAD BOY)’, ‘베베(BAE BAE)’에 이어 밴드 셋으로 편곡된 어쿠스틱 버전의 ‘하루하루(Haru Haru)’, ‘거짓말’까지 단숨에 40~50분을 내달렸다. 특히 빅뱅을 국민 그룹 반열에 올려둔 ‘거짓말’에선 전주의 첫 소절이 울리자마자 VIP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리가 해온 것의 집대성”이라는 지드래곤의 말처럼 등장부터 정형화된 기존 K-팝 그룹과 완전히 달랐던 자유분방하고 개성 강한 빅뱅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빅뱅 20주년 월드투어 [YG엔터테인먼트 제공]


2017년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라스트 댄스’(LAST DANCE) 투어 서울 공연 이후 처음 갖는 이번 공연은 다시 뭉친 ‘스무살’ 빅뱅의 월드투어 출발점이다. 함께 하는 빅뱅의 역사를 보여주면서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여전한 명성을 누려온 세 사람이 솔로 가수로 걸어온 길도 보여주는 자리였다.

“우린 같이 따로 놀지”(빅뱅 20주년 신곡 ‘빅’)라던 세 사람의 현재를 보여주는 자리가 이어졌다. 2막 ‘카오스(CHAOS)’에서다. 지난 20년간 멤버 각자가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며 성장해 온 ‘슈퍼 IP’의 위용을 증명하는 자리였다.

포문은 막내 대성이 열었다. 미국 코첼라 페스티벌을 발칵 뒤집어 놓은 그 장면들도 재현됐다. 대형 스크린에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대성입니다’라는 문구를 띄운 그는 매일 받는 보컬 트레이닝으로 다져진 20년 사상 최고의 폭발적 성량으로 무대를 장악하여 놓았다. 솔로곡 ‘한도 초과’에 이어 전 국민적 히트곡 ‘날 봐, 귀순’을 열창할 땐 스타디움 전체가 거대한 트로트 페스티벌로 변모했다. 최고급 세련미를 자랑하는 빅의 무대에 B급 감성을 거침없이 뿌려 넣는 대성의 ‘유쾌함’은 공연의 백미였다.

이어 등장한 태양은 한여름 폭염의 날씨에도 시그니처인 퍼 재킷을 걸치고 나와 독보적인 알앤비(R&B) 그루브와 명품 라이브, 녹슬지 않은 윈드밀 댄스를 선보이며 ‘보컬의 정석’을 증명했다. 마지막 솔로 주자로 나선 지드래곤은 레드 수트와 독창적인 스타일링으로 무대에 올라 ‘파워’, ‘크레용’, ‘삐딱하게’ 등을 통해 대체 불가능한 ‘시대의 아이콘’임을 재확인해 줬다.

빅뱅 20주년 월드투어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세대 초월 ‘국민 그룹’의 귀환....“형, 나 죽어!”


따로 뛰어논 뒤엔 다시 뭉칠 차례. ‘뱅뱅뱅(BANG BANG BANG)’과 ‘맨정신(SOBER)’을 연달아 터뜨리며 스타디움을 광란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빅뱅은 8년 8개월 전 그 모습 그대로였다. 매끈한 군무로는 담아낼 수 없는 광적인 에너지가 무대를 휘감았다. 야생적 에너지와 스웨그, 몸을 사리지 않는 멤버들의 움직임은 VIP를 미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빅뱅 세 멤버는 데뷔 20주년을 맞아 공개한 ‘빅(BiiiG)’의 첫 라이브 무대도 보여줬다. 음원과 뮤직비디오에서 담지 못한 순간들이 신곡에서 고스란히 발산됐다. 도입부터 시작되는 지드래곤의 강렬한 랩 사위와 대성과 태양의 보컬, 총을 쏘는 안무까지 대형 스타디움에서 안성맞춤이었다. 세 사람이 함께 한 길, 각자 걸어온 길, 다시 함께 뭉쳐 나가는 길을 담아낸 무대였다.

세 사람은 공연 내내 20주년 프로젝트에 대한 ‘떡밥’을 끊임없이 던졌다. 특히 또 다른 신곡들이 예정돼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무대 위에는 시한폭탄 카운트다운 그래픽이 떠올랐고, 대성은 “4년 4개월 만의 컴백, 8년 8개월 만의 투어 등 숫자 ‘8’(지드래곤의 생일 1988년 8월 18일)과 연결되는 ‘용사마의 숫자 유니버스’가 숨겨져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빅뱅의 20주년에선 모두가 빅뱅이고, 모두가 VIP였다. 빅뱅의 생일은 VIP의 생일이었고, 그 시절을 지나온 모든 이들의 추억과 기억이었다. K-팝 사상 전무후무한 ‘국민 그룹’이었던 덕에 빅뱅은 이름만으로도 모두의 시간이자 찬란한 청춘의 동의어였다.

빅뱅 20주년 월드투어 [YG엔터테인먼트 제공]


공연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위 라이크 투 파티(WE LIKE 2 PARTY)’, 3인조로 돌아와 새로운 내일을 약속한 상징적 트랙 ‘홈 스위트 홈(HOME SWEET HOME)’으로 모든 공연은 마쳤지만, 세 멤버는 VIP를 집으로 보낼 생각이 없었다. 3만 5000여 관객이 “너를 사랑해, 너를 부르네, 너를 기억해, 너를 기다리네”라며 ‘천국’을 무한반복 하자, 빅뱅은 무대로 나와 다시 ‘천국’으로 화답했다. 빅뱅에게 그 시절 4050세대 팬들까지 만들어준 ‘붉은 노을’이 나올 때 객석은 이미 전석 스탠딩으로 변모했다. 밤 9시를 훌쩍 넘긴 시간, 체감온도는 33도였지만 공연장의 기온은 이보다 10도 이상은 높았다.

공연 말미, 객석에서 “우리는 여전히 빅뱅의 VIP입니다”라는 노란색 슬로건이 나오자 멤버들은 “우리는 VIP의 빅뱅”이라고 화답하며 팬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세 손가락에 VIP 네일을 하고 투어를 시작한 지드래곤 역시 “작년에 복귀를 준비하며 오늘 이 무대에 서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았다. 정말 숨 가쁘고, 기쁘고, 벅차오른다”라며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태양 역시 “20년 전부터 저희를 사랑해 주신 여러분이 성장해 가는 모습을 함께 지켜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세상 어떤 아름다움보다 감동적”이라며 “팔팔하게 88세까지 활동할 수 있게 여러분이 도와달라”고 말해 힘찬 박수를 받았다. 막내 대성은 “20년 통틀어 지금이 가장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갖고 있다. 좋은 것은 시간이 지나야 알게 되는데,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에 앞으로의 활동이 더 기대된다”며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말해 감동을 자아냈다.

빅뱅 20주년 월드투어 [YG엔터테인먼트 제공]


보이그룹으로는 유일무이하게 어마어마한 남성팬을 거느리기도 한 빅뱅의 공연장엔 이날도 남성 관객이 적지 않았다. 친구와 함께 공연장을 찾은 남성 팬 안성민(32) 씨는 “학창 시절 빅뱅(BIGBANG) 노래 한 번 안 따라 부르고 빅뱅 옷 한 번 안 입어본 남학생은 없었다”며 “남자 팬들이 ‘형 나 죽어!’를 외치며 진심으로 열광할 수 있는 대한민국 가요계의 마지막 국민 보이그룹”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대구에서 올라왔다는 여성팬인 김연재(33) 씨는 “데뷔 때부터 VIP가 돼 지금가지 한 눈 한 번 판 적 없는데 신곡을 내도 여전히 그 때처럼 바로 1위를 하고 트렌드를 이끄는 빅뱅의 팬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며 “마침내 내가 번 돈으로 공연을 볼 수 있게 됐는데 벌써 마지막이라 너무 아쉬워 오늘은 잠을 못 잘 것 같다”고 했다.

이번 고양 콘서트는 멤버들의 사법적 리스크와 탈퇴, 긴 군백기라는 거센 풍파를 겪고 3인 체제로 재정비된 빅뱅의 브랜드 복원력을 여실히 입증한 역사적 현장이었다. 3시간에 달하는 성인식은 무사히 막을 내렸지만, 빅뱅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세 사람은 이제 북미,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 18개 도시 31회 스타디움 월드투어의 대장정으로 향한다. 박제된 추억이 아닌 여전히 외연을 넓혀가는 빅뱅의 찬란한 우주(COSMOS)는 여전히 팽창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