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일 일하고 현장 옮기면 ‘0일’?…건설 퇴직공제 시스템의 허점[나유정]

현장 옮겨 다니는 건설근로자 위해 근로일수 합산해 퇴직공제
1일 미만 소수점 공수 다음 달로 이월…근로 끊기면 소멸 가능
2년간 소멸 이월분 12.82억원…같은 시간 일해도 적립 결과 달라져


건설현장의 노동자들이 폭염에 얼음물을 끼얹고 있다. [헤럴드경제 DB]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건설현장에서 하루를 채우지 못한 ‘0.5일’ 같은 자투리 근로시간은 어떻게 처리될까.

건설근로자의 퇴직공제금을 쌓을 때는 실제 일한 근로일수가 중요하다. 하루 단위로 딱 떨어지지 않는 근로내역이 생기면 이를 다음 달로 넘겨 합산하는 방식으로 처리한다. 문제는 공사가 끝나거나 근로가 끊길 때다. 다음 달로 넘겨놓은 근로내역이 최종 근로일수에 반영되지 못하고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23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노동부가 건설근로자공제회를 감사한 결과 이처럼 근로가 단절될 때 이미 발생한 소수점 근로내역이 소멸할 수 있는 시스템상 허점이 확인됐다.

건설근로자공제회는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이런 퇴직공제사업을 비롯해 건설근로자의 복지 증진, 직업능력 개발 등을 수행하는 기타공공기관이다.

현장 옮겨 다녀도 ‘내 퇴직금’ 쌓이게 만든 제도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챗GPT를 활용해 제작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는지 이해하려면 먼저 건설근로자의 퇴직공제금이 어떻게 쌓이는지 알아야 한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일용·임시직 근로자는 한 회사에서 장기간 일하는 일반적인 상용근로자와 근무 형태가 다르다. 하나의 공사가 끝나면 다른 건설사나 다른 현장으로 옮겨 일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건설근로자를 위해 운영되는 것이 퇴직공제제도다.

건설사업주가 건설근로자의 신고된 근로일수에 따라 공제부금을 납부하면 건설근로자공제회가 이를 근로자별로 적립한다. 이후 근로자가 일정 요건을 갖춰 건설업에서 퇴직하면 그동안 쌓인 돈을 퇴직공제금으로 지급한다.

A건설사 현장에서 일하다 B건설사 현장으로 옮기고 다시 C건설사 현장에서 일하더라도 각각의 근로일수를 합산해 퇴직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여기서 퇴직공제금 적립의 기초가 되는 것이 ‘근로일수’다.

건설현장에서는 근로량을 흔히 ‘공수’라는 단위로 계산한다. 하루 일한 근로량을 1공수라고 할 때 근무 형태 등에 따라 1일에 미치지 않는 소수점 이하 공수가 생길 수 있다.

바로 이 ‘1일 미만의 공수’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이번 감사에서 문제가 됐다.

다음 달로 넘긴 ‘자투리 공수’…일 끊기면 사라졌다


건설근로자공제회의 전자카드시스템은 소수점 이하 공수를 다음 달로 넘겨 다른 근로내역과 합산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일정 범위의 소수점 근로내역은 일괄 조정 기능을 통해 함께 처리한다.

예를 들어 1일에 미치지 않는 공수가 발생하더라도 다음 달까지 근로가 이어진다면 이후 근로내역과 합산해 처리할 수 있는 구조다.

문제는 다음 달에도 근로가 계속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건설근로자는 공사가 끝나거나 일거리가 없어지면 다른 현장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소수점 공수를 다음 달로 넘겨놓은 상태에서 근로가 끊기면 이미 발생한 공수가 최종 근로일수에 반영되지 못할 수 있다.

노동부 감사관실의 ‘건설근로자공제회 감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공제회의 전자카드시스템은 소수점 이하 공수를 다음 달로 이월·합산하면서도 일정 범위의 소수점 근로내역은 일괄 조정 기능으로 병행 처리하고 있었다.

노동부는 이 과정에서 소수점 근로내역을 이월·합산·반영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근로가 단절되면 이미 다음 달로 넘긴 공수가 소멸하는 구조가 문제로 지적됐다.

결과적으로 똑같은 누적시간을 일했더라도 계속 같은 현장에서 근무했는지, 중간에 근로가 끊겼는지 등에 따라 최종 신고되는 근로일수와 퇴직공제금 적립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게 노동부의 판단이다.

규모도 작지 않았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종료된 공사를 기준으로 소멸되는 이월분 소수점 공수 금액은 2024년 9억9500만원이었다. 지난해에도 2억8700만원 수준으로 파악됐다. 2년간 총 12억8200만원이다.

같은 시간 일해도 적립액 달라질 수도…노동부 “시스템 개선”


그렇다면 12억8200만원은 건설근로자들이 실제로 받지 못한 퇴직공제금일까.

감사보고서만 놓고 보면 그렇게 단정할 수 없다.

노동부가 보고서에서 제시한 수치는 정확히 ‘종료된 공사를 기준으로 한 소멸되는 이월분 소수점 공수 금액’이다. 이를 건설근로자에게 실제로 적립되지 않은 퇴직공제금이라고 명시한 것은 아니다.

감사보고서에는 소수점 공수가 소멸한 근로자가 몇 명인지도 제시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실제 퇴직공제금이 얼마나 적게 적립됐는지 역시 보고서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시스템의 문제는 분명하다.

노동부는 근로가 단절될 경우 기존에 이월된 공수가 소멸하는 구조 때문에 ‘동일한 누적 근로시간에도 최종 신고일수와 퇴직공제금 적립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퇴직공제제도는 애초 한 현장에서 계속 일하기 어려운 건설근로자가 여러 현장에서 일한 근로일수를 합산해 퇴직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든 제도다. 그런데 현장을 옮기거나 근로가 끊기는 과정에서 이미 발생한 근로내역 일부가 사라질 수 있었던 셈이다.

노동부 역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노동부는 공제회에 소수점 근로내역의 처리 기준을 명확히 마련하고 근로단절이 발생하더라도 이미 발생한 소수점 공수가 누락되거나 소멸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요구했다.

결국 이번 감사에서 확인된 핵심은 ‘12억8200만원을 누가 못 받았느냐’에 그치지 않는다. 같은 시간을 일하고도 근로가 끊겼다는 이유로 최종 신고일수와 퇴직공제금 적립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구조 자체가 개선 대상으로 지적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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