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가 취급 시 유보분 한도 조기 소진 우려
은행엔 감정가로 잔금대출 취급 민원 쇄도
![]() |
| 서울 시내 한 은행. [연합] |
[헤럴드경제=서상혁·박혜림 기자] 정부의 8·13 부동산 대책 후속조치에 나선 은행권이 잔금대출 취급 기준을 감정가가 아닌 분양가로 정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금융권 전체의 대출 한도가 정해져 있는 만큼, 최대한 많은 차주에게 대출을 고르게 공급하려면 분양가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예비 입주자들이 받을 수 있는 잔금대출 한도도 당초 예상보다 줄어들 전망이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과 은행권은 8·13 부동산 대책에 따른 후속조치를 논의하고 있다. 올해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를 기존 1.5%에서 3.0%로 상향해 예비 입주자 등 실수요자와 청년층을 대상으로 최대 30조원의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 줄기다.
금융당국이 8월부터 취급된 잔금대출·중도금대출 등 집단대출을 금융회사 자체 총량이 아닌 금융권 전체 총량에 별도로 편성된 유보분으로 관리하기로 하면서, 은행권은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집단대출을 취급할 수 있게 됐다.
신한은행의 경우 8·13 부동산 대책에 따라 디에이치방배에 배정한 잔금대출 한도를 1500억원에서 4000억원으로, 하나은행은 1000억원에서 3500억원, KB국민은행은 1000억원에서 3000억원으로 확대했다. 이밖에도 올해 입주가 예정된 사업장에 대해 순차적으로 잔금대출 한도를 배정할 예정이다.
다만 은행들은 통상적인 기준인 ‘감정가’가 아닌 ‘분양가’를 기준으로 잔금대출을 취급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현재 입주 예정인 대다수 사업장은 분양가와 입주 시점의 감정가 간 격차가 벌어진 상황인데, 감정가를 기준으로 삼으면 대출액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경우 금융당국이 유보분으로 편성한 대출 한도가 빠르게 소진돼 잔금대출을 받지 못하는 입주 예정자가 속출할 수 있다.
현재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디에이치방배에 대해 분양가의 60% 또는 감정가의 50% 중 낮은 가격을 기준으로 잔금대출을 공급하고 있다. 분양가와 감정가의 격차가 큰 만큼 사실상 분양가를 기준으로 대출 한도가 산정되고 있는 셈이다. 다른 사업장에서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대출이 공급될 전망이다.
모 시중은행 관계자는 “감정가를 기준으로 삼으면 가진 자금에 비해 과도하게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고 “분양 당시의 가격을 보고 자금 계획을 세웠을 테니, 그에 맞춰 대출을 내어주는 게 합리적이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일부 입주 예정자의 경우 분양가 기준으로 잔금대출이 이뤄지면 한도가 부족해질 수 있다. 디에이치방배 전용면적 84㎡의 분양가는 22억원으로 분양가 60% 기준을 적용하면 대출 한도는 13억2000만원이 된다. 반면 현 시세인 40억원을 감정가로 가정 시 대출 한도는 20억원이다. 감정가와 분양가에 따라 대출 한도가 크게 차이 나는 만큼, 각 은행엔 감정가로 잔금대출을 취급해 달라는 민원이 쇄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은행들은 지난 19일 금융당국과의 회의에서 잔금대출 취급 기준에 대한 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디에이치방배처럼 서울 강남권의 고가 주택에 대해서는 별도의 지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금융당국은 뚜렷한 기준을 밝히지 않았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특정 방향을 정하는 것은 어렵다”며 “업계와 협의하며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9월 중 중도금과 잔금대출 등 집단대출 취급 현황을 집중적으로 점검할 계획이다. 대출이 적정하게 나갔는지,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집행되지는 않았는지 등을 들여다 볼 예정이다. 모 시중은행 여신 담당자는 “집단대출 현황을 점검하겠다는 건 결국 은행이 알아서 합리적으로 대출을 공급하라는 뜻 아니겠나”라며 “금융당국이 일단 은행 자체 총량에는 반영하지 않겠다고는 했지만, 규제를 받는 은행 입장에선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한도 제한이 없을 경우 상호금융 등 2금융권과의 치열한 대출 경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이달 말 통지를 목표로 은행 대출 총량 배분 작업을 진행 중이다. 8·13 부동산 대책 발표 전까지 모범적으로 관리한 은행에 더 많은 한도를 부여할 방침이다.
은행권은 추가 대출 한도를 받더라도 수요 관리 차원에서 모기지 보험(MCI·MCG) 가입 제한 등 개인별 한도 제한 조치는 당분간 유지할 계획이다. 금융당국이 ‘오픈런’ 해소를 당부한 만큼, 일별 한도 제한 등 채널 규제는 일부 완화할 생각이다.
금융당국은 중금리 대출에 대한 가계대출 총량 제외 비중을 높일 예정이다. 현재는 공급액의 30%만 총량에서 제외되는데, 이를 50%대까지 상향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총량에서 제외되는 금액은 유보분에서 차감하는 식이다. 청년층에 취급되는 대출에 대해서도 일부 총량에서 제외하는 인센티브를 부여해, 적극적인 공급을 유도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자체 중금리 상품 출시를 준비 중이다. 신한은행은 지난 20일 신용평점 하위 50% 중저신용자에 연 5~6%대 금리로 최대 2000만원까지 빌려주는 ‘슈퍼SOL중금리대출’을 내놨다. 총 공급 규모는 6000억원으로 책정했다. 우리은행도 자체 상품 출시를 검토 중이다. 농협은행의 경우 이달 4일 ‘NH올원더풀 행복동행 중금리대출’을 출시했다.
금융당국은 8·13 대책에 따라 상호금융·여전사·저축은행 등 2금융권에 대해서도 추가 한도를 부여할 예정이다. 은행권과 마찬가지로 모범적으로 총량을 관리한 금융회사에 더 많은 한도를 부여할 방침이다.
금융당국은 2금융권의 중금리 대출에 대해서는 자체 총량에서 차감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8월 1일부터 취급되는 2금융권 중금리 대출은 금융권 유보분에서 차감될 예정이다. 이밖에 상호금융과 저축은행의 집단대출은 은행권과 동일한 기준으로 취급하기로 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취약차주에게 더 적극적으로 자금을 공급해 달라는 취지”라며 “중금리 외에 다른 정책 대출도 활발하게 공급해달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