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값 또 오르겠네”…러·우 ‘흑해 난타전’에 곡물가 급등

이탈리아 로마의 한 레스토랑에서 요리사가 빵을 자르고 있다. [게티이미지]

[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 국제 곡물가 특히 밀 가격이 급등하면서 올해 빵 등 세계 주요 식량 가격이 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4년 넘게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서로 흑해 항구와 상선을 공격하는 등 사실상의 ‘해상 봉쇄’를 이어오면서, 이 지역에서 곡물 수출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 밀 선물 가격의 벤치마크인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의 연질 적색 겨울밀(Soft Red Winter Wheat, SRW) 선물 가격은 12월물 기준으로 1부셸당 6달러99센트에서 최고 7달러2센트까지 거래됐다. 지난주 6달러80센트 선을 돌파하며, 한 달여 만에 최고치를 경신한 이후 계속 강세를 보이고 있다.

제빵용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밀의 벤치마크인 캔자스시티 상품거래소(KCBT)의 경질 적색 겨울밀(HRW)은 연질밀 가격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갔다. 올해 12월물 기준으로 1부셸당 7달러76센트에서 7달러70센트 부근에서 거래되고 있다. 거의 3년 만에 최고치로 상승했다.

밀 선물 시장에서는 이런 가격 상승세를 ‘흑해 리스크 프리미엄’이라고 부른다.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서로 흑해를 봉쇄하면서 밀 수출이 급감했기 때문에 생긴 가격 변동이란 뜻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 2주 동안 우크라이나 최대의 다뉴브강 항구와 러시아의 노보로시스크 흑해 터미널 등 흑해의 항구들이 집중 공격을 받았다. 러시아의 공습으로 우크라이나 최대 해항인 오데사 등 흑해를 통과하는 해운 운송이 중단됐다.

우크라이나 역시 흑해 항구 공격으로 러시아에 맞대응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주 노보로시스크의 곡물 터미널을 공격해, 러시아가 주요 곡물 터미널 3곳의 운영을 모두 중단하기까지 했다. 양국의 흑해 항구 집중 공격으로 흑해를 통한 수출은 사실상 마비됐다.

지난 3일 러시아의 흑해 연안 노보로시스크 항구 인근에서 화물선 ‘나데즈다 호’가 드론 공격을 받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최근 흑해 항구와 상선들을 무차별 공격하며 흑해를 통한 상대국의 수출을 가로막고 있다. [로이터]


러시아는 세계 최대의 밀 수출국이며, 우크라이나도 밀 수출 규모로 세계 5위를 차지한다. 두 국가가 공급하는 밀의 규모는 전 세계 수요의 약 30%에 달한다.

글로벌 경제 연구기관인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아조우해 및 흑해 유역에 있는 두 국가 항구의 운영 차질로 인해 올해 전 세계 곡물 공급량은 8600만t 감소할 전망이다. 이는 글로벌 곡물 수출의 약 17%를 차지한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러시아에서의 곡물 수출이 5200만t, 우크라이나에서의 수출은 3400만t 감소할 것이라 예상했다. 우크라이나가 철도와 다뉴브강을 지나는 대체 경로를 활용하더라도, 약 1700만t 수출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예상된다.

흑해 농산물 시장을 전문으로 하는 연구 기관인 소브에콘의 안드레이 시조프 전무이사는 “이것은 원유 시장에 있어 호르무즈 봉쇄 사태보다 밀 시장에 더 최악의 상황”이라면서 러·우 전쟁이 종전으로 접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가 보게 될 파장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곡물 가격은 지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최고치로 치솟았지만, 유엔(UN)이 식량만큼은 지켜야 한다며 중재에 나서 ‘흑해 곡물 협정(Black Sea grain initiative)’을 체결한 이후 하락했다. 식량을 나르는 선박의 자유로운 통행을 허용했던 이 협정은 전쟁이 계속되던 지난 2023년 7월 결렬됐고, 이후 우크라이나는 흑해 연안을 따라 루마니아 항구인 콘스탄차로 향하는 길과 다뉴브강을 따라가는 수출로 등 우회로를 개발했다.

그러나 전쟁이 격화하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흑해의 항구들과 이를 오가는 상선을 집중 공격하는 등 식량 안보를 걸고 전면전을 펼치고 있다. 가뜩이나 슈퍼 엘니뇨의 영향과 가뭄, 이란 전쟁으로 인한 비료 수급 부족 등으로 곡물 가격이 상방 압력을 받는 와중에, 최근의 확전이 밀 가격 상승을 더욱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타티아나 오를로바는 “최근 아조우해와 흑해 유역의 전투 격화는 더 심각한 글로벌 식량 가격 충격을 초래할 수 있다”라며 “글로벌 식량 가격은 올해 11.8% 상승하고, 내년에는 4.8%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