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40명 숨지는 한국…자살예방법이 놓친 ‘빈곤·실업·고립’

지난해 자살률 29.1명…2011년 이후 최고
30~50대 자살률 두자릿수 증가…경제문제 29.6%
입법조사처 “개인 아닌 사회적 재난 관점 법제화해야”


[헤럴드경제 DB]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우리나라에서 하루 평균 40명 넘게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지만 현행 자살예방정책은 여전히 개인의 심리·정신건강 문제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빈곤과 실업, 사회적 고립 등 자살 위험을 높이는 사회구조적 요인까지 국가가 책임지고 관리하도록 법적 기반을 보완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22일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자살예방법」은 자살위험 대응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자살자는 1만4872명으로 전년보다 894명(6.4%) 증가했다.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29.1명으로 201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하루 평균으로 환산하면 40.7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셈이다.

한국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서도 높은 수준이다. 2023년 기준 한국의 자살사망률은 인구 10만명당 24.8명으로 OECD 평균 10.9명의 2배를 웃돌았다. 입법조사처는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기구가 빈곤과 실업, 교육 수준, 주거환경, 사회적 고립 등 사회적 결정요인을 자살위험을 높이는 주요 요인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 자살률 상승은 경제활동의 중심에 있는 30~50대에서 두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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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0대 자살률은 전년보다 14.9% 증가했고 40대와 50대도 각각 14.7%, 12.2% 늘었다. 반면 70대는 8.7%, 80세 이상은 10.3% 감소했다.

자살 원인을 살펴봐도 사회·경제적 요인이 적지 않다. 경찰청의 2024년 변사자 통계를 보면 자살 동기 가운데 정신적·정신과적 문제가 35.4%로 가장 많았지만 경제생활 문제도 29.6%에 달했다. 이어 육체적 질병 문제 15.2%, 가정 문제 4.7%, 직장 또는 업무상의 문제 3.3% 등이었다.

특히 남성은 경제생활 문제가 35.7%로 정신적·정신과적 문제(27.7%)보다 비중이 높았다. 경제적 불안과 고용 문제 등이 자살위험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현행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은 이 같은 사회구조적 위험에 대한 대응을 충분히 담지 못하고 있다는 게 입법조사처의 지적이다.

현행법은 자살예방을 ‘국가적 차원의 책무’로 규정하고 범정부적인 사전예방대책을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정책의 기본방향은 생명윤리의식과 생명존중문화 확산, 건강한 정신과 가치관 함양 등 사회문화적 인식 개선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에 따라 실제 법체계도 개인 단위로 자살위험자를 파악하거나 자살수단 접근을 막고, 자살유발정보를 차단하거나 예방교육을 실시하는 등 개인적·심리적 접근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진옥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자살을 개인의 심리적 문제를 넘어 사회·경제·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사회적 재난’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행 자살예방법에는 사회구조적 위험요인에 대한 대응을 국가의 책무로 명확히 하고 관계부처의 역할과 협력체계를 구체화하는 법적 기반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일본은 이미 자살을 사회 전체가 대응해야 하는 문제로 법제화했다. 일본은 2006년 ‘자살대책기본법’을 제정하면서 자살이 개인적 문제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요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기본이념에 담았다. 자살대책 역시 보건·의료뿐 아니라 복지·교육·노동 등 관련 정책과 연계해 종합적으로 추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옥상이나 고층건물, 교량 등 반복적으로 사고가 발생하는 장소에 대한 관리도 현행법의 사각지대로 꼽혔다.

2023년 전체 자살사망자의 19.0%가 추락으로 숨졌다. 특히 9~24세 청소년·청년층에서는 추락이 전체 자살수단의 46.8%를 차지했다. 하지만 현행 자살예방법은 물건이나 온라인상의 자살유발정보 등에 대한 관리체계와 달리 옥상·고층건물·교량 등 물리적 환경을 관리할 법적 근거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국내에서는 주택단지 옥상 출입문 등에 비상문 자동개폐장치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지만 기존 건물에는 적용되지 않는 등 한계가 있다. 보건복지부가 교량·고층건물 추락방지를 포함한 ‘자살수단 차단사업’을 지원하고 있지만 추락방지 분야 사업을 추진하는 시·도 역시 서울·대구·세종·전남 등 4곳에 불과하다. 지역의 관심도와 재정 여건에 따라 안전시설 수준에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입법조사처는 이에 따라 자살예방법을 개정해 사회구조적 위험요인에 대한 국가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우선 자살예방사업의 정의에 ‘자살예방을 위한 사회구조적 요인 파악과 개선’을 포함해 빈곤·실업·관계단절 등에 대한 대응을 법적 책무로 구체화하는 방안이다. 국회에서도 이달 자살을 사회구조적 문제로 접근하고 범정부 협력체계와 자살수단 차단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의 자살예방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반복적으로 사고가 발생하는 장소와 시설에 대해서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실태조사와 모니터링, 재정지원 등을 할 수 있도록 ‘자살수단 차단체계 구축’ 조항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건축법과 도로법에는 옥상이나 교량 등에 안전시설을 설치하고 국가와 지자체가 비용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한 조사관은 “자살고위험군은 정신건강 문제뿐 아니라 경제·고용·주거·법률 문제를 함께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며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을 구체화하고 관계기관 간 협력과 사회복지서비스 연계를 강화하는 실행체계도 함께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