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지 알아? 하나는 청첩장 주는 모임이고,
또 하나는 청첩장 설마 주려고 부르나? 싶은 모임.
청모와 청설모인 셈이지. 으하하!
아무도 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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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김효민·ChatGP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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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으로 향하는 광역버스는 삼포세대의 분노처럼 붉다. 시뻘건 버스에 몸을 구겨 넣고 유튜브를 훑는데 뉴스 제목이 눈에 띈다.
“다시 결혼하는 한국... 혼인율 반등, 2026년에도 이어져”
눈 부신 기사다. 과장이 아니다. 햇볕 드는 창가에 앉았더니 진짜 눈이 부시다. 핸드폰 밝기를 최대로 올렸다. 가뜩이나 청담대교의 회전 구간 위에서 차량이 핑핑 도는데 눈까지 부셔 오니 간밤의 숙취가 밀려들어 미칠 지경이다. 지난밤에는 대학 동기의 청모에서 조금 거칠게 술을 마셨다. 신부 되는 친구가 환골탈태를 앞두고 3차까지 쐈던 거 같은데 리쥬란 시술을 받은 피부가 홍옥처럼 빛났다. 필름이 끊겼는데 그나마 기억에 남는 거라곤 이런 순간이었다. 바짝 졸아든 나베니 전골이니 하는 걸 앞에 두고 내가 떠들고 있었다. 요새 내가 갖는 모임이 딱 두 종류야. 뭔지 알아? 하나는 청첩장 주는 모임이고, 또 하나는 청첩장 설마 주려고 부르나? 싶은 모임. 청모와 청설모인 셈이지. 으하하! 아무도 웃지 않았다.
눈을 뜨니 양말도 벗지 않고서 침대에 자빠져 있었다. 술주정에 쪽팔려 할 틈도 없이 머리에 물만 묻힌 채 집을 나섰다. 주말이었다. 승강의 결혼식에 가야 했다. 승강은 군대 후임이었는데 제대하고서 먹고 살 길이 없다고 눈물을 찔찔 짜던 게 엊그제 같았으나 어느새 결혼 선임이 됐다. 위치는 청담. 좋은 데서 하네. 처가 덕을 봤나? 속이 쓰리다. 해장할 틈도 없다. 뷔페에 갈비탕 국물이 있어야 할 텐데.
모쪼록 뉴스 기사가 과장은 아닌 것 같다. 주말 스케줄이 결혼식으로 꽉 찼다. 친구니 선후배니 사촌이니 다들 무슨 재주로 결혼을 척척해내는지 알 길이 없다. 결혼 소식을 들고 오는 녀석 중 십중팔구는 묻는다. 너는 뭐 좋은 소식 없고? 내가 답한다. 무소식이 희소식이지 뭐. 상대는 웃는다. 좋은 소식 있으면 꼭 알려주고. 나도 빙긋이 웃으며 입꼬리로 생각한다. 그럼 안 하겠냐? 내가 지금껏 퍼다 나른 축의금이 얼만데.
좋은 소식이 싫다. 언제부턴가 남들 입에서 나오는 좋은 소식이 내게 타격을 입히기 시작했다. 나로 말하자면 연애는 하고 있다만 연애 이상의 그 무엇 앞에 가로막혀 기약 없이 9년째 연애만 하고 있는 그런 실정이다. 9년은 추억을 쌓기에 더없이 충분한 시간이다. 데이트는 할 만큼 했고 여행도 다닐 만큼 다녔다(유럽은 아껴뒀다. 바르셀로나행 비행깃값을 검색했다가 유럽은 신혼여행을 위해 남겨두자고 합의했다.) 아무렴 참 뭘 많이 했다. 향수를 조향했고 요가를 배우다가 연탄을 나르며 자원봉사도 했고 사격장에서 실탄까지 갈겼다. 그리고 마침내 할 일이 바닥 난 요즘엔…… 플스방을 간다. 커플석에 앉아 2인용 협동 게임을 한다. 우리는 고수다. 말하지 않아도 척척 손 내밀어 로프를 당겨주고 눈앞의 장애물을 치워주고 함께 퍼즐을 푼다. 그리고 헤어진다. 잘 가. 다음에 또 하자. 다툴 일도 막히는 일도 없다. 고수니까.
하지만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언젠가 둘 중 누군가 조이스틱을 집어던지며, 나 이거 질려. 안 할래. 말하는 순간을. 언젠가부터 우리는 같은 스테이지를 맴돌고 있다. 지금까지는 함정을 뛰어넘고 보스를 물리친 뒤 보물 상자를 열며 난관을 극복해왔다. 그런데 어째선지 다음 스테이지를 열기 위해서 필요한 열쇠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헤매는 동안 결혼에 골인한 친구들은 신혼을 즐긴다. 뭐랄까 좀 더 근사한 취미를 한다. 주말에 유모차를 끌며 교외 아울렛에서 쇼핑을 하고, 부자들이 자식에게 물려준다는 대형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휴가를 내서 바르셀로나로 날아간다. 그곳에서 또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기 위한 공동의 목표를 찾는다.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한 조건을 찾는다. 그게 뭘까?
9년간 연애를 하는 동안 나는 9년 차 대학원생이 됐고 여자친구는 9년 차 연극배우가 됐다. 랩실과 연습실에서 마음대로 배달음식을 고를 수 있는 정도의 위치에 올랐다. 며칠 전에는 3000일 선물을 주고받았다. 연애가 길어지며 자연스레 100일 단위 기념일 같은 건 챙기지 않게 되었는데 그래도 3000이라는 숫자에는 무게감이 있었다. 우리는 고민 끝에 서로에게 간소한 선물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내 어째선가 데면데면해졌고, 며칠 뒤 실은 갖고 싶은 것이 없다는 데 공감했다. 그간 우리는 너무 많은 걸 주고받았다. 몇 년째 틀지 않는 LP 턴테이블과 닌텐도 스위치가 있었다. 다이슨 헤어드라이기가 있었고 입생로랑 립스틱과 르라보 향수도 있었다. 젓가락을 바들바들 떨면서 오마카세도 먹었다. 작년 생일에는 서로 침대 매트리스를 주고받았다. 언제부턴가 네 돈이 내 돈이고 내 돈이 네 돈이라 비싼 선물을 하는 쪽이 빈축을 샀다. 결국 우린 기분만 내자며 10만 원 내외의 선물을 고르기로 결정했다. 5만 원은 너무 적고 20만 원은 너무 많은 것 같아서.
나는 닌텐도 게임 <동물의 숲> 스페셜 패키지를 선물했다. <동물의 숲>에는 클리어가 없다. 엔딩을 보지 않은 채 벌레를 잡고 낚시를 하며 영영 같은 스테이지에 머물러도 즐겁다. 우리만의 작은 숲 속에 있으면 남들의 좋은 소식 같은 건 들려오지 않는다. 반면 여자친구가 건넨 선물은 뜻밖이었다. 흰 봉투 안에 10만 원어치 로또가 들어있었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거야.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 우리 앞에 놓인 무엇. 그것에 대한 두 응답.
어쩐지 결과를 맞춰볼 마음이 나질 않았다. 나는 로또 영수증을 그대로 봉투에 넣고 가방 한 구석에 고이 간직했다.
웨딩홀은 번지르르한 건물을 통째로 쓰고 있었다.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기 위한 던전의 입구처럼 보였다. 실내 로비에선 백화점 향기가 났다. 차려입은 남녀가 한가득이었다. 진정한 게임의 고수들이었다. 화장실에 들러 내 몰골을 확인했다. 퀭해 보여 립밤이라도 꺼내 바르려다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내 잔치도 아닌데. 하객이란 게 그런 거다. 이놈이 저놈이고 저놈이 그놈이고…. 어차피 방명록과 축의금 액수만 남는 게 결혼식 하객이다.
지하에 있는 ATM기로 향해 줄을 섰다. 나와 승강 사이 우정의 값을 머릿속에 달아보았다. 5만 원 축의 하는 건 반달리즘인 세상이었다. 그렇다면 10만 원인데…… 마침 다른 군대 동기들이 식은 못 가니 축의만 10만 원 보냈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렇담 나는 식사를 하고 가니 10만 원보다는 더 내야 할까 싶었지만 15는 애매한 숫자였다. 연인끼리도 150일은 챙기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20만 원인데…… 지난 주말에 20년 가까이 알고 지낸 중학교 친구에게 축의를 20만 원 했던 게 생각났다. 할머니 장례에도 와준 녀석이다. 둘의 우정을 같은 값에 매기는 건 나의 정의가 허락하지 않았다.
원하시는 거래를 선택해 주세요.
ATM이 채근했다. 어느새 내 차례였다. 잘 인식되지 않는 터치스크린을 꾹꾹 누르는데 문득 분했다. 가만 보니 결혼이란 게 소득 분위별로 차례를 맞이하고 있는데, 먹고살 만한 녀석들이 차례도 오지 않은, 어쩌면 영영 차례가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지갑을 수탈해가고 있었다. 이상했다. 원래 축하받는 사람이 쏘는 거 아닌가? 어째서 있는 놈들이 빈자의 고혈을 쪽쪽 빨고 있는 거지? 지금처럼 매주 10만 원에서 20만 원씩 축의 대신 적금을 넣었더라면 어쩌면 바르셀로나행 비행기쯤이야 애진작에 탔을 지도 모른다. 이 문제는 묵과할 수 없다. 나중에 수틀리면 비혼식이라도 치르리라.
저기요? 잡생각이 길어지자 이번엔 뒷사람이 재촉했다. 나는 아차 싶어 꾸벅 사과하고 서둘러 예금을 인출했다. 그래. 10만 원이면 충분하다.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니까. 나는 황급히 빳빳한 5만 원권 두 장을 챙겼다. 챙겨 온 봉투에 넣어 가방에 쑤셔 박았다.
이후부터는 빤했다. 울쎄라 맞은 얼굴로 축의대 앞을 떡 버티고 선 승강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고(형은 뭐 좋은 소식 없고?), 가방 속 봉투에 이름을 적고 축의대 문지기들에게 전했고, 아는 얼굴들 몇과 어슷비슷한 인사를 나눴다. 식은 대충 보다가 신부 얼굴만 확인하고 나와서 밥이나 먹었다. 백옥처럼 빛나는 얼굴이었다. 식사는 차림이 푸짐한 걸로 봐서 10만 원이면 신랑 입장에선 겨우 본전이나 될 듯했다. 갈비탕에 도가니도 수북해서 쭉쭉 들이켰다.
한 달쯤 지났을까. 그간에 나는 9년 하고 1개월 차 만년 대학원생이 됐고 여자친구는 9년 1개월 차 연극배우가 됐다. 교수들 간의 어른 사정으로 연구 주제가 뒤집혀버렸고, 나는 나이는 먹었다만 어른들 사정에 끼지는 못하는 이도 저도 아닌 징그러운 수염 난 무엇이었다. 여자친구는 작은 낭독극을 하고 있었는데 자꾸만 열의가 올라 온몸으로 연기를 펼쳐 주의를 받는다고 했다. 주말에는 데이트를 했다. 마지막 스테이지에서 번번이 클리어에 실패했다.
결혼식 뒤풀이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니 정확히는 전해 들은 것이었다. 자리에 초대 받은 친구 중 한 명이 내게 말해준 것이다. 연락 못 받았어? 그가 물었다. 나는 따로 연락 받은 일은 없었지만 정신이 없어서 그랬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뒤풀이 장소는 종로 근처의 허름한 노포였다. 새신랑은 신혼여행지에서 느끼한 것만 먹었더니 칼칼한 한식이 먹고 싶다고 했다. 낡은 포차의 할머니가 사나워서 안 그래도 매운 닭볶음탕 국물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어느 정도 술이 들어갔을 즈음 승강이 맞은편 친구를 나무라며 말했다.
야, 너는 축의를 왜 이렇게 많이 했어?
그러자 친구는 위악적으로 답했다.
나중에 다 돌려받을 건데 뭘. 조금 기다려 봐. 곧 좋은 소식 있을 것 같으니까.
일동이 환호하면서 박수 쳤다. 그런데 왜였을까. 그 사이 묘한 느낌으로 승강과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승강은 이어서 여행지에서 사 온 선물이라며 소포장된 봉투를 하나씩 꺼냈다. 바르셀로나에서 사 온 작은 도자기 접시들이었다.
이거 비싼 건데?
누군가 알아봤다.
아니야. 좋은 소식이 좀 있었어.
승강이 손사레쳤다. 결혼말고도 좋은 소식이 또 뭐가 있었다는 것일까. 내가 물었다.
좋은 소식?
승강은 대답 대신 그냥 씨익 웃고 말았다. 그리곤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로마에서 집시를 마주쳤던 해프닝이었다. 선심인듯 사진을 찍어주더니 갑자기 돈을 달라고 요구해서 난처했다고. 딱한 사정을 말하면서 매달려서 결국 잔돈 몇 푼을 주는 것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승강은 그때 찍은 사진이라며 보여줬다. 사진 속 승강과 아내는 쨍한 하늘과 콜로세움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윽고 대화 주제는 신혼집이나 2세 계획, 고민하고 있는 패밀리카 따위로 옮겨 갔다. 나로서는 자연스레 소외될 수 밖에 없는 주제여서 술만 열쩍게 홀짝였다. 어째선가 승강이 나와 대화를 꺼리고 싶어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목이 잠시 다른 친구들에게로 옮겨갔을 때였다. 그때 승강이 내게 몸을 숙이고 속삭였다. 형, 이따 잠깐 이야기 좀 할까? 그때부터 심란해졌다. 왜? 혹시…… 10만 원 축의가 문제였을까?
술잔이 몇 차례 더 오고 가며 마음이 점차 복잡해졌다. 많은 액수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터무니없는 액수도 아니었다. 그러자 부아가 치밀었다. 생각해 보면 원래 쪼잔한 녀석이긴 했다. 우정의 값을 머릿속에 달아보는 계산적인 녀석이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면전에서 표시할 일인가? 직접 발길 해서 축하해 준 사람의 사정을 헤아려주지는 못할망정? 승강이 신혼지 숙소에서 신부와 마주 앉아 지인들의 축의금을 비교해 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테라스가 있는 로맨틱한 부티크 호텔에서 바르셀로나산 까바를 홀짝이면서…….
지린내 나는 노포의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며 녀석이 선물로 돌린 도자기를 검색해 봤다. 생각보다 값이 나갔다. 3000일 선물로 <동물의 숲> 대신 이걸 줄 걸 그랬다. 그럼 여자친구는 언젠가 떠나게 될 바르셀로나에 대한 기약으로 그걸 간직했을 지도 몰랐다. 영영 끝나지 않는 지루한 스테이지 대신에 도자기 위의 코발트블루 유약을 바라보며 지중해 바다를 떠올렸을 지도 몰랐다.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여자친구에게 카톡이 와 있었다.
너무 늦지 말고 돌아와. 우리 내일 만나잖아.
술 생각이 가셨다. 우리가 있어야 할 스테이지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화장실을 빠져나와 일행 몰래 조용히 계산대로 향했다. 멀리서 그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계산이요. 카드를 내밀자 할머니는 현금만 받는다고 사납게 외쳤다. 있을까 싶어 가방을 뒤적였다. 흰 봉투 하나가 손에 걸렸다. 뭔가 싶어 안을 들여보자 빳빳한 오만 원권 두 장이 들어있었다. 이게 왜……?
왜 벌써 가려고, 잠깐만!
어느샌가 나를 발견하고 승강이 달려 나왔다. 나 형한테 할 말 있다니깐. 그게……. 그는 조금 머쓱한 표정으로 우물쭈물했다.
나, 형이 축의 한 것 보고 사실 조금 당황했어. 그런 축의는 처음이었거든……. 근데 뭐 사정이 있으려니 생각했어. 생각해 보니 재밌기도 했고. 그래서 호텔에서 와이프랑 같이 결과를 맞춰봤는데…….
결과라니? 혼란스러웠다. 이게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 좋은 소식 있었다고 했잖아. 이걸 말해야 하나 오늘까지도 고민 많이 했어…… 그런데 형한테만큼은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승강은 잠시 뜸 들이다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그가 점차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제서야 입을 틀어막았다. 여자친구가 보고 싶었다. 혼자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좋은 소식이 다가오고 있었다. 두 손 사이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니야…… 아니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