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조각·설치·판화·사진·영상 등 150여 점 전시
화선지·먹 활용한 한국화 신작 최초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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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소:일어나고 사라지는’ 전시 전경. [롯데뮤지엄 제공] |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실재와 이미지, 생성과 소멸. 작품은 하나의 모습으로 고정되지 않고, 관람객과 만나는 순간 새로운 의미가 발생한다.
한국 현대미술 거장 이강소(83)의 개인전 ‘이강소:일어나고 사라지는(Emergence and Dissolution)이 21일부터 11월 1일까지 롯데뮤지엄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반 세기가 넘는 시간동안 다양한 실험을 이어온 이강소의 회화, 조각, 설치 작품 등 150여 점을 선보인다. 특히 조각과 판화 작품을 대거 소개하고, 한국화 신작을 최초 공개한다.
이강소는 작품을 완성된 결과가 아닌 행위와 시간, 공간, 관계가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확장해 왔다. 전시 제목 ‘일어나고 사라지는’은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마다 새로운 의미가 발생하고 변화하는 그의 작품 세계를 함축한다.
전시는 이강소의 회화 연작 ‘청명’을 기반으로 한 발광다이오드(LED) 신작으로 문을 연다. 원작과 동일한 크기로 제작된 작품은 맞은편에 놓인 거울을 통해 반사되며, 작가가 천착해 온 인지와 실재 사이의 실험을 새로운 매체 위에서 이어간다.
전시장 곳곳에 자리한 ‘던지기 조각’ 30여 점은 같은 과정이 반복되지만, 서로 다른 형태와 표정을 지닌다. 불규칙한 형상들은 우연과 중력이 빚어낸 순간을 품고 있다.
함께 전시된 드로잉은 붓질의 반복을 통해 화면이 형성되는 과정을 담은 작업들로, 이강소의 관찰과 실험의 흔적이자 회화가 시작되는 지점을 보여준다.
‘바람이 분다’ 회화 연작의 신작(2025)은 이번 전시에서 최초 공개된다. 그간 캔버스와 아크릴 물감을 중심으로 작업해 온 작가가 화선지, 먹 등으로 한국화 형식을 실험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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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소 ‘바람이 분다’(2025). [롯데뮤지엄 제공] |
전시 중반부에서는 ‘청명’, ‘무제’, ‘섬에서’ 등 대표 연작 11점을 만날 수 있다. 이들 회화는 작가의 의도보다 앞서 작용하는 붓질과 완성되지 않은 여백을 통해 다양한 이미지와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1970년대 실험미술을 대표하는 작품도 함께 소개한다. 전시장 사이에 위치한 ‘여백’은 낙동강변의 갈대를 전시장으로 옮겨온 설치 작업으로, 양쪽의 거울을 통해 갈대가 실제 공간 너머로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풍경을 만들어 새로운 공간적 경험을 일으킨다.
1975년 파리 비엔날레에서 선보였던 ‘무제-75031’, 제갈공명의 여덟 가지 전술 배치에서 영감을 얻은 ‘팔진도’ 등도 전시된다.
판화 연작에서는 반복과 복제라는 매체의 특성을 활용해 이미지와 실제의 관계를 탐구한 작업을 소개한다. 사진과 영상 작업에서는 현실을 그대로 기록하기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를 바라보는 이강소의 시선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 후반부에는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작품을 둘러싼 관계에 주목한다. 대형 붓 등 이강소가 실제 사용하는 다양한 작업 도구와 사진, 기록물 등을 작업실에서 그대로 옮겨왔다. 특히 아직 공개되지 않은 조각 작품 20여 점을 천으로 덮인 상태로 선보인다. ‘유령조각’이라 명명된 이 작품들은 천 사이로 일부 형상만을 드러내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경계를 경험하도록 한다.
1973년 작가의 첫 개인전에서 선보였던 ‘소멸’의 재현도 만나볼 수 있다. 당시 이강소는 ‘명동화랑’에 실제 선술집의 탁자와 의자, 술잔 등을 들여놓고 일주일 동안 운영하며 사람과 공간, 시간과 관계가 만나는 과정 자체를 작품으로 확장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의 평상 구조물을 새롭게 마련해 관객이 자유롭게 머물고 대화할 수 있도록 했다.
이강소 작가는 “돌아보면 나의 작업을 관통하는 질문은 결국 ‘예상하지 못한 것을 어떻게 만나는가’였다”며 “이번 전시에서도 관객들이 자신의 경험과 감정에 따라 작품을 자유롭게 바라보고, 저마다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강소는 1970년대 한국 실험미술의 흐름 속에서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회화, 조각을 비롯해 설치, 퍼포먼스, 판화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 세계를 확장해 왔다. 1980년대 이후에는 회화를 중심으로 작업을 이어가면서도 초기 실험미술에서 탐구했던 문제의식을 일관되게 발전시켜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