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돌, 프로듀서형 아티스트 세계 열어
BTS, 스트레이 키즈로 이어진 빅뱅 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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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인조가 된 빅뱅 [YG엔터테인먼트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2006년 전에 없던 아이돌 그룹이 등장했다. 오차 없는 칼군무, 유니폼처럼 맞춰 입은 의상, 딱 떨어진 인형 같은 외형이 아니었다. ‘아이돌’의 미덕으로 여겨졌던 ‘완벽주의’와 자본의 ‘기획력’에 들어맞는 모습도 아니었다. 그룹 빅뱅(BIGBANG)은 가요계의 오랜 ‘관습’을 해체한 그룹이었다.
“지용아, 6년 연습하고 집에 갈래?”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가 연습생 시절 지드래곤에게 한 말)
그룹의 탄생 과정은 살벌했다. 연습생 서바이벌이라는 용어조차 없던 시절, 빅뱅은 데뷔조의 분투기를 투명하게 공개하며 등장했다. 데뷔 서바이벌 다큐멘터리의 시초였다. 정형화된 미소년 이미지를 탈피하고, 스트리트 힙합 문화와 자작곡 역량을 전면에 내세우며 승부수를 던졌다.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수 겸 글로벌 K-센터장은 “1세대 아이돌인 H.O.T.나 젝스키스가 통일된 의상과 일체화된 군무로 대변되는 정형화된 문법을 따랐다면, 빅뱅은 기존 아이돌의 이미지와는 확실히 달랐다”며 “데뷔 초부터 멤버 각자의 개성을 살린 스타일과 무대 위 자유로운 퍼포먼스로 아이돌의 전형에서 완전히 벗어난 차별성을 보여줬다”고 진단했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당시 K-팝 보이밴드는 예쁘장한 비주얼에 칼군무와 콘셉트 의상을 맞추는 H.O.T.와 동방신기(TVXQ!)의 계보에서 벗어난 팀이 거의 없었다”며 “빅뱅은 기획부터 비주얼, 랩 중심의 힙합 스타일까지 완전히 다른 방향성을 제시하며 K-팝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확립한 팀”이라고 분석했다.
빅뱅의 등장은 K-팝 역사의 결정적 장면이자 분기점이었다.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는 “빅뱅의 데뷔는 K-팝 역사의 중요한 변곡점”이라며 “매체와 플랫폼의 변화가 급변이 밀려오기 직전의 끝자락, 전 세대에게 음악이 전달될 수 있는 마지막 시점에 등장해 친근하면서도 가요적인 K-팝으로 대중을 통합한 그룹이었다”고 되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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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뱅 [YG엔터테인먼트 제공] |
빅뱅은 소위 ‘프로듀서형 아이돌’의 선두 주자다. 리더 지드래곤(G-DRAGON)을 중심으로 멤버들이 작사·작곡·프로듀싱의 전권을 행사하는 창작 구조는 K-팝 산업의 주도권을 기획사에서 창작자가 가져오는 분수령이었다. 물론 빅뱅 이전에도 스스로 곡을 만드는 아이돌 그룹은 존재했다. 그러나 출발선의 무게가 달랐다.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는 “빅뱅 전에는 데뷔 때부터 주요 곡의 공동 작사·작곡가로 비중 있게 멤버들이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규탁 교수 역시 당시 아이돌과 빅뱅의 차이를 ‘제작 주체’에서 찾았다. 이 교수는 “그전까지 아이돌이라고 하면 뛰어난 프로듀서나 작곡가가 붙어서 음악을 만들어주고, 그것을 무대에서 구현하는 가수로서의 이미지가 강했다”며 “빅뱅은 셀프 프로듀싱(Self-producing)과 작곡을 하는 싱어송라이터형 아이돌이라는 것을 각인시켰다”고 봤다.
2007년 미니 1집 ‘올웨이즈(Always)’의 타이틀곡 ‘거짓말’은 대중음악계를 뒤흔드는 파급력을 보여줬다. 이 곡은 ‘아이돌 자작곡’이 음악계 최고 정점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임희윤 평론가는 “당시 가요계에선 지드래곤을 두고 ‘천재의 탄생’이라는 평가가 쏟아졌고, 음악계가 인정하는 싱어송라이터들이 먼저 실력을 인정하며 빅뱅 신드롬에 불이 붙었다”며 “불가사의할 정도로 전 세대가 이 음악에 열광했다. 이 정도의 수준과 파급력을 가진 곡은 빅뱅 이후 어떤 K-팝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짚었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도 “빅뱅은 데뷔 초기부터 지드래곤이 메인 프로듀서로 음악을 직접 생산해 낸 그룹이라는 독창성을 지녔다”며 “세계적으로 가장 유행하는 트렌디한 사운드를 자신들만의 코드로 재해석해 대중적 팝으로 완성해 낸 점이 빅뱅의 핵심 동력”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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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은 빅뱅 [[YG엔터테인먼트 제공] |
빅뱅의 등장으로 아이돌에 대한 편견도 깨졌다. 아이돌 그룹을 ‘기획사가 만든 상품’으로 보던 시기를 지나 ‘자신의 서사’를 음악으로 증명하는 ‘창작자’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이후 3~4세대 보이그룹이 ‘자체 프로듀싱 역량’을 필수 덕목으로 내세우게 한 궤도 수정을 끌어낸 그룹이 바로 빅뱅이다. 이 교수는 “BTS, 세븐틴을 비롯해 싱어송라이터가 그룹에 한 명씩 있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며 창작하는 아이돌이 일반화됐다”고 봤다.
빅뱅의 특이점은 멤버의 개성이 도드라진다는 점이었다. 누가 하나 닮은꼴이 없다. 각자의 캐릭터가 음악적 개성으로 연결된다는 것은 다섯 멤버로 출발했던 빅뱅이 가진 특별함이었다.
임희윤 평론가는 “보통 멤버들마다 개성이 있어도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야 자기 성격이 드러났다”며 “그것이 음악적인 개성으로까지 이어지진 않았다”고 짚었다. 이규탁 교수는 “프로듀서와 트렌드를 주도하는 시대의 아이콘 같은 존재 지드래곤, 발라드부터 R&B, 소울, 댄스 음악까지 다 부를 수 있는 태양이라는 훌륭한 보컬리스트, 예능에서 친숙한 이미지와 가창 능력도 출중한 대성, 독특한 음색과 랩으로 자기 영역을 만든 탑이 있었다”며 “각자의 개성이 그룹에서 굉장히 잘 맞았다”고 설명했다.
빅뱅은 명실상부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그룹의 영향력은 음악을 넘어섰다. 패션, 시각 예술, 팬덤 응원 문화, 음반 유통 매체의 법적 정의까지 전면 재편했다.
빅뱅이 가는 길마다 트렌드를 만들었다. 스트리트 패션, 하이탑 운동화, 뱅헤어, 화려한 스카프와 선글래스 등 지드래곤과 멤버들이 시도한 파격적인 스타일링은 스트리트 문화의 중심이 됐다. 웹툰 작가 기안84는 자신의 대표작인 웹툰 ‘패션왕’이 지드래곤(G-DRAGON)을 오마주한 작품이라고 공공연히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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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팝 최초의 입체 응원봉으로 지드래곤이 디자인한 ‘뱅봉’ [YG엔터테인먼트 제공] |
스트리트 패션을 넘어 글로벌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와 협업의 기반을 마련한 것도 빅뱅이다. 샤넬의 오랜 ‘뮤즈’로 활약하는 지드래곤이 걸어온 길은 현재 K-팝 그룹이 이어가고 있는 유산이다. 패션 브랜드의 앰배서더가 되는 것은 물론 그룹의 음악과 패션, 라이프스타일이 하나의 ‘스타 브랜드’로 묶여 그룹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가 됐다.
김도헌 평론가는 “빅뱅은 아이돌이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고 사랑받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패션이나 취향, 트렌드까지 선도할 수 있는 문화적 아이콘으로 기능하는 모델로 만들었다”고 봤다.
빅뱅과 함께 K-팝의 응원 문화 지형도 달라졌다. 기존 팬덤이 무색 풍선이나 단색 스틱 야광봉으로 영역을 표시하며 색깔 전쟁을 벌일 때 YG에선 2008년경 세븐과 빅뱅의 응원봉을 선보였다. 빅뱅 응원봉에 ‘최초’ 수사가 따라오는 것은 이 응원봉은 독특한 차별점이 있기 때문이다. 지드래곤이 그룹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왕관 모양을 직접 디자인한 ‘뱅봉(Bang Bong)’은 K-팝 최초의 ‘입체 응원봉’이다.
임희윤 평론가는 “뱅봉은 응원봉 역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사례”라며 “그룹과 팬덤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상징물로 지금의 응원봉 문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뱅봉’의 출현은 LED 조명을 무선 중앙 원격 제어 시스템과 결합해 관객석의 빛을 무대 연출의 하나로 만드는 K-팝 스타디움 콘서트의 핵심이 됐다.
빅뱅은 음악 매체 패러다임의 진화와 제도의 혁신도 끌어냈다. 2017년 지드래곤의 솔로 앨범 ‘권지용’은 CD가 아닌 USB 형태로 발매됐다. 당시 공인 음악차트인 가온차트(현 써클차트)는 “음이 유형물에 고정된 것만 음반”이라는 저작권법을 근거로 지드래곤의 앨범 판매량 집계를 거부해 격렬한 산업적 논쟁이 일었다. 그러나 가온차트는 2018년 1월 1일 자로 ‘디지털 복합 매체(묶음 단위 디지털 상품)’까지 음반으로 공식 인정했다. 그렇게 지드래곤은 음악 유통과 매체 규정의 틀까지 모두 바꿔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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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뱅 [YG엔터테인먼트 제공] |
빅뱅이라는 그룹의 ‘최고의 혁신’은 이들 자체가 멀티 ‘슈퍼 IP(지식 재산권)’라는 데에 있다. 개인 역량이 뛰어난 멤버들의 ‘집결’이다 보니, 솔로 활동에서도 강력한 존재감을 보여줬다. 그룹의 성공이 멤버 개개인의 스타성을 키우는 구조였던 것이다. 이는 지금의 K-팝 공식으로 이어졌다. 대다수 아이돌이 그룹과 솔로 활동을 병행하는 흔한 풍경의 시작점에 빅뱅이 있었다.
이규탁 교수는 “이전엔 그룹 활동을 하면서 솔로를 하는 일이 잘 없었다”며 “모든 멤버가 각자의 솔로 활동을 통해 성공하는 것은 물론 앨범 색깔 역시 멤버마다 각기 다른 재미있는 구성을 보여줬다. 지디앤탑(GD&TOP), 지디앤태양과 같은 유닛으로도 대중을 사로잡은 사례는 빅뱅이 최초”라고 평가했다.
빅뱅은 아이돌은 창작자이면서 스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했다. 빅뱅이 보여준 ‘창작돌’과 ‘독자적 IP’ 문법은 3~5세대 후배 그룹들에 ‘보편적 표준’으로 자리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K-팝 보이그룹 중 빅뱅의 영향을 받지 않은 그룹은 찾아볼 수 없다”고 단언한다.
빅뱅의 위대한 유산은 K-팝의 현재에 있다. 빅뱅의 영향력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그룹은 단연 방탄소년단(BTS)이다.
정민재 평론가 또한 “빅뱅의 등장 이후 K-팝 보이그룹 시장은 ‘동방신기 계열’과 ‘빅뱅 계열’로 뚜렷하게 양분됐다”며 “비스트(BEAST), 엠블랙(MBLAQ)을 비롯해 랩 중심의 힙합을 표방한 보이그룹들은 모두 빅뱅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특히 방탄소년단은 초기 스타일링부터 음악적 태도까지 빅뱅에 대한 존경심을 숨기지 않았다”며 “그룹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음악과 가사로 전달할 수 있다는 ‘표현의 주체성’을 방탄소년단이 고스란히 이어받았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초창기 ‘제2의 빅뱅’을 표방하며 홍보 문구로 활용했던 방탄소년단(BTS)은 물론, 강렬한 힙합 사운드와 자체 프로듀싱을 앞세운 스트레이 키즈(Stray Kids), 세븐틴(SEVENTEEN)에 이르기까지 3세대 이후 남성 그룹 중 빅뱅의 영향권에서 자유로운 팀은 찾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임희윤 평론가 역시 “방탄소년단은 빅뱅이 없었다면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김도헌 평론가 또한 “투애니원(2NE1), 블랙핑크, 트레저, 베이비몬스터로 이어진 YG 특유의 팝 문법 또한 빅뱅이 완성한 결정적 유산“이라며 “스스로 음악을 창작하고 개성을 표방하는 현대의 수많은 K-팝 그룹은 모두 빅뱅의 유산 위에 서 있다”고 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