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관객 이탈 막을 ‘보호책’ vs 시장 ‘족쇄’
협의체서 빠진 소비자들 “선택권 제한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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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한 영화관이 관람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윤창빈 기자 |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극장 관객 이탈을 막기 위한 ‘홀드백(Holdback)’ 제도가 150일로 가닥이 잡힌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제도 도입을 반대하던 영화 제작 및 유통,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업계는 물론, 제도가 보호하려 했던 극장 업계도 난색을 보이면서 누구도 원하지 않은 규제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졌다. 홀드백이란 극장 개봉 이후 영화를 일정 기간 OTT 등 다른 플랫폼에 공개하지 않는 제도다.
김영수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은 이달 초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홀드백을 일정한 조건 하에 도입하는 데까지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8월 안에 결과를 발표하고, 이후 논의를 이어가며 보완할 것”이라고 밝혔다.
발표가 임박했지만, 홀드백 도입을 둘러싼 제작·배급·유료방송·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계의 입장 차는 여전히 크다. 정작 논의 테이블에 영화 소비자가 배제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협의체가 자율적 홀드백을 선언하더라도 진통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앞서 협의체는 8월 ‘한국 영화 상생을 위한 홀드백 자율 협약’ 체결을 목표로 두 달여 동안 업계 의견을 모아왔다. 협의체는 문체부·영진위 관계자 4인, 제작업계 3인, 배급업계 5인, 극장업계 3인, 유료방송(TVOD) 업계 4인, OTT 업계 3인 등 총 22인으로 구성됐다.
홀드백 제도 정립을 비롯해 한국 영화 수익 구조 정상화, 극장·OTT 간 상생 생태계 조성 방안을 영화계 내부 자율 합의로 도출하겠다는 것이 협의체 출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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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서울 한 영화관의 영화 시간표. 5월 말 개봉한 연상호 감독의 영화 ‘군체’는 개봉 2달여 만에 TVOD로 공개됐다. [연합] |
현재로선 애초 논의에 불을 지핀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의안의 6개월보다는 완화된 수준에서 협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는 “영화산업의 건전한 상생발전을 도모하려는 개정안 취지에는 공감하나, OTT 서비스를 극장 상영 후 6개월 이후까지 제한하는 것은 경쟁 제한 우려가 크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다만 협의체가 업계 모두를 만족시킬 협의안을 내놓을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현재 극장업계는 관객 이탈과 생태계 보호를 위해 홀드백 강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반면, 제작사·배급사는 유통 시기가 제한되면 시장이 왜곡되고 투자금 회수도 어려워진다며 규제에 반대 중이다. OTT 업계 역시 홀드백이 의무화되면 개봉작 확보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20일 헤럴드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가 협의체에 제안한 홀드백 기간은 150일이다. 정부안이 그대로 받아들여지면 영화는 극장 개봉 후 약 5개월이 지나야 OTT 등 다른 플랫폼에서 공개될 수 있다. 제작사·배급사·OTT 업계로서는 달갑지 않은 수치다.
한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흥행이 저조한 작품일수록 부가 시장에서 빨리 손해를 만회해야 다음 작품을 준비할 여력이 생긴다. 관객이 찾지 않는 영화를 극장에 묶어둘 이유가 없다”며 “투자금 회수와 재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콘텐츠 경쟁력 저하도 불가피하다. 상생이 목적이라면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150일은 기존 발의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쪽 목소리만 지나치게 반영된 결과”라며 날을 세웠다. 홀드백 논의 자체가 최근 영화 유통 시장의 흐름과 반대로 가고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지난해 개봉한 ‘휴민트’와 올해 개봉한 ‘와일드 씽’은 개봉 약 두 달여 만에 OTT에 공개됐다. 두 작품 모두 흥행 성적은 기대에 못 미쳤지만, 빠르게 OTT로 전환하며 손해를 만회했다. 59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한 ‘군체’도 개봉 두 달여 만에 TVOD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영화진흥위원회는 지난 4월 ‘한국영화 수익극대화를 위한 홀드백 분석 연구’ 보고서를 통해 “홀드백이 극장 관객에 미치는 영향은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 현재 시장 조건에서 홀드백 조정만으로 극장 관객을 유의미하게 늘리기는 어렵다”며 영화 유형별 최적 홀드백을 45~105일로 제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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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한 영화관의 모습. [연합] |
더 목소리를 높이는 쪽은 소비자다. 정작 영화를 소비하는 당사자인 소비자가 협의체 논의에서 배제되면서, 선택권이 일방적으로 제한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지난 18일 “영화 관람료 부담과 OTT 이용 제한, 홀드백 정책 재검토해야”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일률적인 6개월 홀드백 의무화에 반대하며, 소비자의 선택권과 편익을 중심에 둔 영화산업 대책과 구조 개선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문체부가 ‘6개월 홀드백’이 아닌 소비자 중심 대책을 마련하고, 관람료 부담이 큰 상황에서 선택권 제한은 부당하다며, 문체부·영진위의 ‘밀실 합의’ 중단을 요구했다.
같은 날 컨슈머워치도 “홀드백이 소비자의 기다림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논평을 내고 “산업을 살리는 가장 지속가능한 방법은 소비자를 기다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기꺼이 선택할 상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는 홀드백을 새로운 유통 규제로 만들기보다 사업자들의 자율적 선택과 플랫폼 간 경쟁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8월 결론’을 못 박고 시작한 협의체 운영 방식에 대한 불만도 나온다. 제도 도입이 곧 업계 경쟁력과 직결되는 만큼, 더 충분한 선행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 영화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추진 중인 일률적인 홀드백 의무화가 실제로 콘텐츠 산업 개선에 도움이 되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며 “영화를 선택하는 것은 결국 관객의 몫인 만큼, 소비자의 선택권과 편익을 중심에 둔 대책과 구조적 문제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