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보유국’ 인정 후 동결·제재완화…트럼프, 대북정책 급선회 나설까

북미대화 목표 ‘비핵화’서 한발 뺀 모양새
核 역량 부족한 이란과 ‘이중잣대’ 접근법
[AP]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취재진에 북한의 57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발언하면서,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 추구에서 벗어나 ‘거래적인 대북 정책’으로 선회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후 ‘핵 동결→제재 완화’의 순으로 협상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연내 만날 계획이라 전하며 “그(김 위원장)는 57개의 매우 강력한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한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대화를 재개하려는 목표가 여전히 비핵화인지, 이번에는 왜 (비핵화에)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묻는 말에는 “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답을 피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여러 차례 내놓으면서도, 대북 정책의 목표는 ‘완전한 비핵화’라는 점을 강조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 취임일인 지난해 1월 20일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이라 지칭했고, 같은해 3월 13일 백악관에서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과의 회담에서는 “김정은은 핵무기를 많이(a lot) 갖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참석차 아시아로 떠나는 길에도 기자들에게 북한을 ‘일종의 핵보유국’이라고 언급했다.

그럼에도 대북 정책의 목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점을 강조해 왔다. 지난 5월 베이징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 결과 팩트시트(설명자료)에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북한을 비핵화한다는 공유된 목표를 확인했다”고 소개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회견은 북한의 핵 보유 현황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는 점, 북미 대화의 목표가 비핵화인지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태도 변화가 엿보인다. 대화 목표가 비핵화인지 명시하는 것을 피한 것은 향후 김 위원장과의 대화에서 문턱을 낮추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전제로 미국과 대화하겠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때문에 미국이 비핵화를 협상의 전제나 최종 목표로 못 박을 경우 북미 대화 재개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으로 미국의 대북 정책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후 핵 동결, 이에 따른 제재 완화 순으로 변화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이는 북한 정권의 숙원이다. 이 경우 북한의 비핵화를 이루지 못하는 결과를 낳겠지만,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외교 성과가 절실한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형태로건 북한과의 핵 협상을 이뤘다며 이를 성과로 내세울 수 있다는 게 외교가의 관측이다.

이란에 대해서는 핵무기 개발을 용납할 수 없다며 전쟁까지 치르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저자세’를 보이는 모순을 두고 전문가들도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 석좌는 이날 워싱턴포스트(WP)에 보낸 기고문에서 이란과 북한의 핵 문제에 서로 다른 접근법을 취하는 것을 단순히 ‘이중잣대’라고 평가할 수 없다고 옹호했다.

차 석좌는 이란과 북한이 보유한 핵 프로그램의 역량과 발전 단계가 현저히 다른 만큼 서로 다른 접근법을 취하는 데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이란의 핵 프로그램은 초기 단계에 있었고 핵시설의 위치도 알려져, 선제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반면 북한은 약 60기의 핵무기와 추가로 30기를 만들 수 있는 핵분열 물질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투발 수단까지 다양하게 갖추고 있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비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차 석좌는 이란에 대해서는 경제 제재에 대한 국제적 지지가 여전히 강한 편이지만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 속에 국제 사회의 제재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고도 평가했다. 차 석좌는 주변국의 대응에 대해서도 “진보 성향의 이재명 대통령은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대치를 원하지 않고 트럼프의 대북 외교를 환영하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란에 CVID를 요구하도록 촉구해 왔다”고 주장했다. 도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