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도 아닌데 재정적자 눈덩이”…미국 2차대전후 최대 ‘구조적 부채’

재정적자 GDP의 6%…‘구조적 문제’ 고착
고령화·감세에 정부 지출 줄이기도 어려워
30년 뒤 부채비율 GDP의 175% 상승 전망

외인 국채 비중 줄고 AI회사채와 자금 경쟁
적자확대→국채 증가→금리상승→이자부담↑
美 국채 ‘안전자산 프리미엄’ 본격 시험대

19일(현지시간) 미 재무부에 따르면 미국 국가부채가 사상 처음으로 40조달러를 돌파했다. 미국의 국가부채는 전날 기준 40조470억달러(한화 5경5645조원)를 기록했다. 사진은 이날 미국 수도 워싱턴DC의 한 거리 전자게시판에 국가 부채가 표출되는 모습. [AFP]

미국 재정의 더 큰 문제는 국가부채가 40조달러를 넘어섰다는 숫자 자체가 아니다. 경기침체도 아닌데 국내총생산(GDP)의 약 6%에 달하는 재정적자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위기 때 늘어난 빚이 경기 회복과 함께 줄어들던 공식이 깨지면서 미국의 재정적자가 ‘위기 대응형’에서 ‘구조적 적자’로 굳어지고 있다.

여기에 미국 국채를 사들이던 외국인 투자자의 비중은 장기적으로 낮아지고 인공지능(AI) 투자를 확대하는 빅테크까지 채권시장에서 대규모 자금 조달에 나서면서 미국 정부가 과거처럼 낮은 비용으로 막대한 빚을 조달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1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4년 연속 재정 흑자를 기록한 직후인 2001년 일반 대중이 보유한 연방정부 부채는 GDP의 31.5%에 불과했다. 현재는 약 100%까지 치솟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 미국의 GDP 대비 일반 대중 보유 연방부채 비율은 106%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문제는 부채가 늘어난 속도보다 앞으로 증가세를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2000년대 전쟁과 닷컴버블 붕괴,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 등을 거치며 미국 정부의 재정지출은 크게 늘었다. 과거에는 경기침체나 전쟁이 끝나면 재정적자가 축소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다르다.

미국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데도 최근 몇 년간 연간 재정적자는 GDP의 약 6%에 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전쟁이나 심각한 경기침체기에 주로 나타났던 적자 규모가 평시에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고령화도 적자를 구조화시키고 있다. 사회보장과 메디케어 등 의무지출은 인구 고령화와 함께 계속 늘어나는 반면 세입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반복적인 감세 정책까지 더해지면서 세입과 지출 간 격차를 좁히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정치적으로 지출 구조를 바꾸기도 쉽지 않다. 사회보장과 메디케어를 줄이려면 유권자들의 반발을 감수해야 하고 국방비를 비롯한 다른 대규모 지출 역시 삭감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현행법이 유지되더라도 일반 대중 보유 연방부채가 10년 뒤 GDP의 약 120%, 30년 뒤에는 175%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감세 조치가 추가로 연장될 경우 실제 부채 증가 속도는 더 빨라질 수 있다.

더 주목되는 변화는 미국의 빚을 떠받치는 투자자 구성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 규모의 국채시장을 바탕으로 막대한 재정적자를 감당해왔다. 달러가 기축통화이고 미 국채가 세계 금융시장의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만큼 세계 각국 중앙은행과 투자자들이 지속적으로 국채를 사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 미 국채의 핵심 매수자였던 외국인 투자자가 전체 국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장기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그 빈자리를 미국 내 투자자와 헤지펀드 등이 일부 메우고 있다.

특히 헤지펀드는 시장이 안정적일 때는 국채 수요를 떠받치지만 금융시장에 충격이 발생하면 레버리지를 줄이기 위해 보유 국채를 빠르게 처분할 수 있다.

지난해 4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규모 관세 발표 이후 국채시장에서 나타난 매도세가 이런 위험을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국채 가격이 떨어지면 수익률은 올라가고, 이는 미국 정부뿐 아니라 주택담보대출과 기업대출 등 미국 경제 전반의 자금 조달 비용으로 번진다.

최근에는 미국 정부가 투자자의 돈을 놓고 민간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까지 나타나고 있다. 아마존과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오라클 등 빅테크들이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투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규모 회사채 발행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신용등급이 높은 빅테크 회사채는 미 국채보다 높은 금리를 제공해 채권 투자자들에게 또 다른 선택지가 된다. 국채 공급은 계속 늘어나는데 이를 대체할 우량 회사채 공급까지 급증하면 미국 정부가 투자자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더 높은 금리를 지급해야 할 가능성이 커진다.

미국 재정의 핵심 변수도 ‘부채가 얼마나 커지느냐’에서 ‘늘어나는 부채를 얼마의 금리로 조달할 수 있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높아진 금리는 정부의 이자 부담을 키우고, 늘어난 이자 지출은 다시 재정적자를 확대한다. 이를 메우기 위해 국채를 추가 발행하면 공급 증가가 금리를 다시 밀어올리는 ‘적자 확대→국채 발행 증가→금리 상승→이자 부담 증가→적자 확대’의 고리가 형성될 수 있다.

당장 미 국채의 안전자산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미국 국채시장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크고 유동성이 풍부하며 금융시장에 충격이 발생할 때 자금이 몰리는 대표적인 피난처다. 다만 평시에도 대규모 재정적자가 지속되고 국채 공급이 늘어나는 동시에 기존 핵심 투자자의 비중까지 낮아지는 변화는 미국이 오랫동안 누려온 ‘안전자산 프리미엄’의 비용을 높일 수 있다.

피터슨재단의 마이클 피터슨 이사장은 “40조달러라는 큰 숫자를 넘은 것이 워싱턴에 경종을 울리길 바란다”며 “부채를 통제하지 못하면 미국 전역에서 일상생활의 비용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