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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라리] |
[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이탈리아 슈퍼카 브랜드 페라리의 첫 전기차 ‘루체’ 자선용 모델이 신차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공개 직후 디자인 혹평과 주가 급락을 겪었던 모델이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가격에 낙찰되면서 페라리 전동화 전략에도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1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CNBC 등에 따르면 지난 1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에서 열린 연례 ‘몬터레이 자동차 주간’ 소더비 경매에서 자선 목적으로 제작된 단 한 대뿐인 루체가 4000만달러, 한화 약 567억원에 낙찰됐다.
이번 경매는 페라리가 지난 5월 첫 전기차 루체를 ‘회사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제품’이라고 소개한 뒤 미온적인 시장 반응을 얻은 상황에서 관심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마련됐다.
낙찰가는 당초 예상가였던 110만달러의 36배를 넘겼다. 루체의 공식 판매 가격인 55만유로, 약 9억원과 비교하면 63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루체는 공개 직후 디자인을 두고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 페라리 특유의 날렵한 인상 대신 둥글고 단단한 외형을 택하면서 컴퓨터 마우스를 닮았다는 조롱까지 나왔다. 루체의 디자인은 애플 최고디자인책임자(CDO) 출신 조니 아이브가 맡았다.
실제 공개 다음 날 밀라노증시에 상장된 페라리 주가는 8% 넘게 급락했다. 첫 전기차에 대한 시장의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반영된 결과로 풀이됐다.
그러나 이번 경매에서 페라리 맞춤 제작 부서와 디자인 센터가 만든 ‘섀시 0’ 모델이 예상을 크게 웃도는 가격에 팔리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페라리 측은 이번 낙찰이 잠재 구매자들의 관심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매 수익금은 페라리 재단을 통해 미국과 기타 지역의 교육 프로젝트 지원에 사용될 예정이다.
루체 ‘섀시 0’의 낙찰자도 주목받고 있다. 구매자는 광학렌즈 기술기업 ‘브레인파워’ 창업자이자 검안사, 발명가인 허버트 A 워트하임으로 알려졌다. 포브스 프로필 기준 그의 자산은 49억달러, 약 6조9400억원으로 평가된다.
워트하임은 이미 페라리 자선 경매의 주요 인물로 이름을 알린 바 있다. 1년 전 같은 몬터레이 자동차 주간 경매에서 자선용 ‘페라리 데이토나 SP3’가 2600만달러에 낙찰되며 당시 신차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세웠는데, 이때의 낙찰자도 워트하임이었다.
이번 낙찰이 더 화제가 된 데에는 워트하임과 애플의 오랜 인연도 있다. 그는 1980년 애플 기업공개 당시부터 주식을 매입했고, 1990년대 주가가 10달러 안팎일 때 추가 매수로 지분을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기준으로는 1억9500만달러, 약 2760억원 상당의 애플 주식 125만주를 보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워트하임은 193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이후 플로리다주로 이주했다. 1969년 자외선이 백내장을 유발하고 눈을 손상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한 뒤, 자외선 차단 렌즈 착색제를 개발하며 사업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 그가 설립한 브레인파워는 안과용 화학제품 분야의 세계적 제조업체로 성장했다. 워트하임은 100개 이상의 특허와 저작권을 보유한 발명가이기도 하다.
루체는 페라리 역사상 첫 4도어 5인승 모델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기존 페라리 차량은 구조상 실내 바닥을 낮고 평평하게 설계하는 데 한계가 있어 뒷좌석 중앙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반면 전기차인 루체는 배터리를 차체 바닥에 배치해 페라리 최초의 5인승 구조를 구현했다.
성능도 슈퍼카 브랜드에 걸맞게 설계됐다. 페라리는 모터레이싱 기술을 활용해 루체의 빈차 무게를 2.26t까지 낮췄고, 이를 통해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2.5초 만에 도달하는 가속 성능을 확보했다. 최고속도는 310㎞/h 이상이며, 1회 완충 시 주행거리는 530㎞를 웃돈다.
초기 혹평에도 판매 흐름은 나쁘지 않다. 페라리는 올해 루체 신차 500대 가까이를 판매하겠다는 목표를 지난달 초 이미 달성했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중국에서 수요가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페라리는 2030년까지 루체 누적 판매량 2500대, 연평균 약 600대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경매 결과는 루체를 둘러싼 논란을 단숨에 잠재웠다기보다, 페라리라는 브랜드의 희소성과 자선 경매의 상징성이 결합된 결과로 볼 수 있다. 다만 디자인 혹평과 주가 급락에도 실제 구매 수요가 확인된 만큼, 루체가 향후 페라리의 전동화 전환에서 어떤 성적표를 받아들지가 시장의 다음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